고통 속 펜 놓지 않았던 시인의 마지막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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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병으로 최근 별세한 고 왕은범 교사의 유고문집이 세상에 나왔다.
스승의날이었던 지난 15일 출간된 '아픈 시인의 이야기'는 말기암으로 투병하는 고통 속에서도 펜을 놓지 않은 시인의 마지막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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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기간 연작시·성장소설 수록
"생의 끝자락 무명시인이라 다행"
지병으로 최근 별세한 고 왕은범 교사의 유고문집이 세상에 나왔다.
스승의날이었던 지난 15일 출간된 ‘아픈 시인의 이야기’는 말기암으로 투병하는 고통 속에서도 펜을 놓지 않은 시인의 마지막 기록이다.
제1부 ‘주말&시’는 아내에게 보내는 깊은 사랑이 연작시 곳곳에 스며 있다. 첫 시 ‘슬픈 안(內)나를 위해 눈물로 쓴 시’에서 시인은 “새벽 4시 / 난, / 귀신이 되어 / 안(內)/ 나와의 접신(接神)을 위해 / 방울을 딸랑인다// 새벽이 하얗게 갈라지고 / 마침내 요란한 통증(痛症)이 시작되고 / 귀신 안(內)/ 나는 내가 되어 / 아직은 푸른 수의를 입고 공지천 둑길을 걷고 / 안개는 다시 요란하고 詩는 눈물 되어 흐르고 / 난, /안(內)나가 된 나를 위해 기도문 같은 詩를 쓴다”고 고백한다.
또 ‘때가 되어 지는 것들은 아름답다’, ‘아픈 날은 밤도 길다’, ‘내 꽃이 아니어도 좋다’, ‘인연은 다하면 강으로 간다’, ‘죽는 그날까지 부디 꽃이어라’ 등의 시 제목만 보아도 병마와 싸우며 하얗게 지샌 새벽의 시간과, 그 가운데에서도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도하는 시인의 심정을 절절히 느낄 수 있다.
제2부는 예순 살이 되어 열 세살 은범이에 대해 쓴 성장소설이다. 그의 고향 춘천 스무숲은 “여전히 엄마, 아부지가 늙지도 않은 채 살아 계시”는 곳이다. 예순이 되었지만 여전히 어린 아들의 마음으로 쓴 글은 더욱 마음을 울린다. 이제는 하늘에서 ‘엄마 아부지’를 만났을 시인의 편지는 유고의 글이 되어 독자들을 찾게 됐다. 그 일부를 같이 읽어보자.
“엄마! 생각나요? 장맛비 내리던 날이었어요. 그 날 석유곤로 심지 한껏 올려놓고, 호박부침개 부쳐 주시던 날. 부엌 빗소리. 부침개 부치는 소리. 그 소리에 묻혀 부침개 대 여섯 장 부쳐지도록 엄마 빈 뱃속에서 들려오던 꼬르륵 소리. 아무도 듣지 못하고…! 열세 살 은범이는 엄마 뱃속을 몰랐어요. 그 허한 뱃속을 파란 병의 하얀 위장약으로 채울지를…!”
시인은 춘천교대를 졸업하고 춘천, 홍천, 인제지역 초등학교에서 평생 교직생활을 했다. 2019년 ‘문학세계’로 등단 후 여러 권의 시집을 내고 ‘시와창작문학상’ 대상을 받는 등 활발히 활동해 왔다.
생전 기록한 시인의 말에서 “생의 끝자락에 선 무명시인인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잠 못 이루는 하얀 밤마다 한 마리 신음새 되어 부러진 부리로 적바림 해두었던 어설픈 이야기들을 세상에 내 놓는다”고 했다.
김여진 beatle@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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