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벽 허문 '사랑 쪽지'[지역아동센터 쌤들의 기분 좋은 상상]

이미영(현장교사) 2022. 5. 19.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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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너와 날 사랑 쪽지에 다 담아서~’

오늘도 어김없이 내가 좋아하는 노랫말을 속으로 흥얼거리면서 아이들의 사물함을 지나 임시로 지정해 둔 선생님 칸을 열어본다. 오늘은 색종이로 고이 접은 하트 하나와 두 장의 쪽지가 들어 있다. 어제 아파서 오지 못했다는 소식을 아이들이 들었나 보다.

‘아프지 마세요’ ‘보고 싶어요’….

쪽지를 받은 나는 답신을 적은 쪽지를 다시 아이들의 사물함에 넣어둔다.

우리의 사랑 쪽지는 4월 따뜻한 봄날에 한 아이로부터 시작됐다. 그 아이는 어느 날부터인가 수업 중 자신의 책을 구기거나 센터 프로그램 참여를 거부하는 일이 잦아졌다. 워낙 온순한 아이라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는 등 반항적인 행동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 눈물을 흘리거나 온몸으로 ‘저 기분 나빠요. 화가 났어요’ 하고 표현하곤 했다. 원인을 모르는 터라 답답했다. 평소의 나라면 아이를 앉혀 놓고 상담을 하거나 꾸짖거나 타일렀을 텐데 그날따라 예쁜 종이가 눈에 띄었다. 지금 어떤 기분인지, 왜 화가 났는지, 선생님한테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아이가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짧게 끄적거린 종이 한 장을 아이에게 건넨 것이 시작이었다.

다음 날, 출근해 짐을 두기 위해 선생님 칸을 열어보니 보라색 색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선생님 미안해요. 그냥 배가 고파서 저도 모르게 짜증이 나서 그랬어요. 선생님이 다른 친구하고 공부하니까 저를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저는 선생님을 제일 좋아해요.’ 서툰 표현만큼 삐뚤빼뚤한 글씨가 적힌 쪽지였다. 그날 이후로 아이는 슬프거나 화가 날 때, 그 외에도 말로 하기 힘든 이야기가 있을 때 말 대신 종이에 꾹꾹 눌러 쓴 글로 혼자서 삼켰던 속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문제 상황이 생겼을 때 어른보다 상황을 인식하는 것이 더디며 해결 방법이 바로 생각나지 않고 대처 방법도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아이에게 작은 쪽지를 써서 선생님에게 전달하는 것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모양이다.

아이는 선생님이 쪽지를 보고 답을 해주는 모습까지 상상하고 기대하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들어 있는 이야기를 쪽지에 솔직하게 담아낸다. 오로지 아이 자신과 선생님 둘만 비밀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과 선생님이 자신에게만 주는 답 쪽지를 통해 선생님의 사랑을 오롯이 받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그 아이뿐만 아니라 함께 공부하는 다른 아이들도 가벼운 일상 얘기부터 혼자 끙끙 앓으며 깊이 삼켜 놨던 속이야기까지 쪽지에 담아 선생님 칸에 넣어둔다. 때로는 평소에 말로 하기 힘든 간지러운 말부터 서로 오해를 풀기 위해서 대화해야 하는 아픈 말까지도 말이다.

‘이 쪽지에 차곡차곡, 너와 내가, 우리 얘길 써내려 가려 해~’. 아이들에게 답으로 쪽지를 쓸 때면 늘 흥얼거리는 이 노랫말처럼 차곡차곡 모아둔 쪽지는 아이들과 나에게 추억이 되고 사랑으로 남을 것이다.

이미영(현장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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