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봇의 아버지가 말한다 "이것은 제3의 팔, 1000만대 시대 온다"
코봇 최초 상용화 덴마크 UR CEO
킴 포블슨이 말하는 협동로봇 미래
팬데믹 사태는 산업용 로봇 시장에 대변혁을 불러왔다. 팬데믹 이전에는 로봇이 인간과 분리된 공간에서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해주는 ‘초인적’ 기능을 수행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팬데믹을 거치면서 인간을 도와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조력자 역할이 주목받게 됐다. 협동 로봇(collaborative robot), 일명 ‘코봇’의 중요성이 한층 커진 것이다. 일상과 밀접한 요식업, 배달, 건축 등 업종이 구인난에 시달리면서 중소기업·소상공인들도 코봇의 도움을 받아 적은 인원으로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현대차증권에 따르면 팬데믹 사태가 터진 2020년 전 세계 코봇 판매 대수는 12만6000으로 전년 대비 90.5%나 증가했다. 2019년 증가율(8.6%)의 10배가 넘는다.
각종 분야에서 코봇 수요가 커지는 가운데 글로벌 코봇 시장 1위이자 2008년 코봇을 처음 상용화한 덴마크 유니버설로봇(UR)의 킴 포블슨 CEO(최고경영자)를 WEEKLY BIZ가 인터뷰했다. 포블슨 CEO는 “코봇은 인간을 돕는 ‘셋째 팔’”이라며 “앞으로 전 세계에 코봇 1000만대가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코봇의 무한 변신... ’단순함’이 무기
포블슨 CEO는 코봇의 강력함이 “단순함(simplicity)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코봇은 움직임과 형태가 사람 팔과 비슷하다. 평균 길이도 1~2m 정도로 크지 않다. 들 수 있는 최고 무게는 보통 20kg 미만이다. 하지만 몇 관절로 연결된 직선형 로봇 팔은 단순함을 무기로 수천 가지 일을 해낸다. 단순 조립이나 타공, 적재 등은 물론 요리·미용·실험 등 코봇의 진출 분야는 끝없이 확장되고 있다. 정교하고 복잡하게 만든 로봇일수록 용처가 제한적인 것과 대조적이다. 포블슨 CEO는 “코봇 팔 끝에 달린 손(엔드 이펙터)을 바꿔 끼우고, 코봇에 여러 애플리케이션을 적용해 동작을 다양하게 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며 “최근에는 건설 현장에서 벽에 회 반죽을 바르거나 콘크리트 천장에 구멍을 뚫을 때, 풍력발전기 표면을 타고 올라가 손상된 부분을 수리할 때도 코봇을 활용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 현장뿐 아니라 인간의 일상을 돕는 가정용 코봇도 조만간 상용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코봇의 다재다능 원천은 불필요한 것을 최대한 걷어낸 간결한 디자인이다. UR 역시 대규모 디자인 조직을 따로 둘 만큼 코봇 제작 시 기능적이면서 단순한 디자인을 구현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포블슨 CEO는 “무언가를 추가하는 것보다 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며 “디자인은 겉모습뿐 아니라 제품을 사용하는 느낌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단순함의 원칙은 하드웨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코봇은 어디에서나 누구든 쉽게 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조작법)도 간단해야 한다. UR 제품을 비롯해 대다수 코봇에는 팔을 원하는 대로 움직인 뒤 ‘정보 입력’ 버튼을 누르면 코봇이 그 동작을 순서대로 기억했다가 그대로 따라 하는 ‘동작 인식 및 저장’ 기능이 적용돼 있다. 포블슨 CEO는 “12~13세 아이들이 수업을 듣고 코봇을 프로그래밍해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쓰기 쉽게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봇의 4대 요소... ’디자인·신뢰도·생태계·안전성’
포블슨 CEO 말대로 코봇은 단순하기 때문에 기술 격차가 크지 않다. 국내에서는 두산, 한화 등이 6~7년 전부터 코봇을 만들고 있는데 UR 제품과 비교해 외관이나 작동 방식에 큰 차이가 없다. UR을 비롯해 스위스 ABB, 일본 화낙 등 메이저 기업들의 평균 코봇 가격(3000만~4000만원)의 절반도 안 되는 중국산 저가 제품들도 최근 판매량이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UR의 시장점유율은 50%를 넘고, 지난 10년간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이에 대해 포블슨 CEO는 “신뢰도와 코봇 생태계 측면에서 UR의 경쟁력이 확실한 우위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경쟁 업체들의 코봇 판매 대수가 아직 수천 대인데 반해 UR은 지난 10년간 5만대 이상을 팔았고, 그 기기들에서 피드백을 받아 수없이 많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해왔기에 제품 완성도가 높다”며 “다양한 코봇 부품 제조사 및 소프트웨어 개발사, 상업적 파트너 800여 곳이 UR을 중심으로 거대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도 업계 1위를 고수하는 비결”이라고 했다. 즉 코봇 기기만 사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구입하면 각종 앱을 내려받을 수 있고, 관련 액세서리를 쓸 수 있는 것처럼 UR 코봇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포블슨 CEO는 코봇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디자인과 신뢰도, 생태계와 함께 ‘안전성’을 꼽았다. 코봇은 인간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만큼 작업 중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UR에는 안전 기술 전담 팀이 꾸려져 있고, 안전 관련 특허 기술을 17건 보유하고 있다”며 “UR 코봇 애플리케이션의 80%는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구동이 가능하다”고 했다.
◇“코봇 시장, 저출산 고령화로 급성장할 것”
UR이 탄생한 덴마크 오덴세(Odense)는 세계 1위 해운사인 머스크의 조선소가 있던 곳으로 유명한 도시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한국 조선사들에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면서 쇠락의 길로 들어섰고, 2012년 결국 조선소는 문을 닫았다. 이후 오덴세는 실업률이 10% 가까이 치솟을 만큼 위기를 맞았으나 시(市) 정부와 대학, 기업들이 합심해 조선소에서 썼던 용접·도색 자동화 기술을 로봇 산업으로 전환하는 전략을 토대로 대반전을 일궈냈다. 오덴세를 중심으로 한 덴마크 로봇 산업이 벌어 들이는 돈은 작년 기준 28억유로(약 3조7700억원)에 이른다. 덴마크에는 400개 넘는 로봇 회사가 있고, 1만5000여 명이 일하고 있다. 포블슨 CEO는 “민관 합동으로 오덴세에 있는 덴마크남부대학(SDU)에 연구비 수백억원을 지원해 로봇 연구소를 설립했고, 이 연구소는 덴마크 로봇 산업의 산실이 되고 있다”며 “나 역시 SDU의 로봇공학과를 나왔고, UR의 창업자들 역시 우리 과 3년 선배들”이라고 말했다.
포블슨 CEO는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경제활동인구 감소로 코봇 시장은 앞으로 폭발적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 스태티스타는 글로벌 코봇 시장 규모가 팬데믹 이후 5년(2020~2025년)간 95.4% 증가(5억9050만달러→11억5380만달러)할 것으로 전망한다. 포블슨 CEO는 “현재 코봇의 침투율은 전체 수요의 2%밖에 되지 않고, 판매된 코봇 수는 12만~13만대 수준”이라며 “코봇이 전 세계에 최소 1000만대 필요할 것으로 보는데 이를 감안하면 앞으로 이 분야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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