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기자생활] 어떤 선배

김혜윤 2022. 5. 1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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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기자생활]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티브이 화면 갈무리

김혜윤 | 사진뉴스팀 기자

다음달이면 회사에 들어온 지 꽉 채운 3년이 된다. 그래서인지 자주 듣는 질문이 “일은 재미있어?”, “할 만해?”에서 “후배 들어왔나요?” 혹은 “올해는 후배 뽑아준대?”로 바뀌었다. 질문 속 후배가 ‘회사 후배’를 뜻하는 줄 알고 “네!”라고 힘차게 답했다가, ‘부서 후배’라는 사실을 알고선 기어가는 목소리로 “아니요”라고 말하곤 한다. 실제 사진기자 신입 공채를 하지 않은 지 몇년 된 언론사가 여럿이다. 10년 정도 막내 생활을 하는 다른 회사 사진기자 선배도 봤다. 입사 뒤 사진기자 수습 공채 없이 한해, 두해 흐르자 ‘나도 그 선배처럼 되는 건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

상황은 회사 규모나 업종 상관없이 비슷하다. 규모가 큰 보험사에 다니면서 대리로 승진하며 막내에서 탈출했다가 부서를 옮겨 다시 막내가 된 친구가 있다. 대기업 해외영업부서에서 일하는 한 친구는 회사가 신입사원을 공개채용이 아닌 수시채용으로 뽑게 되면서 나보다 더 오래 막내 생활을 하는 중이다. 중견 제약회사에 다니는 사촌동생도 나와 비슷하게 회사 생활을 시작해 아직 후임이 없다. 다들 언제까지 막내 생활을 해야 하는 거냐며 착잡해한다.

막내 생활 탈출 뒤에도 걱정은 이어진다. 단체 채팅방에서 친구들이 토로하는 제일 큰 고민은 ‘후배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다. 꼰대가, 갑질이 되는 행동이 뭔지 너무 잘 알고 있어 후배에게 일을 가르쳐야 할 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친구들은 서로에게 조언을 구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다른 회사 사진기자 후배에게 밥을 사주고 싶은데, 연락하기 전 몇번이고 고민한다. ‘퇴근하고 바로 집에 가고 싶어 하면?’, ‘별로 먹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좋다고 한 거면?’. 후배와 식사를 하게 되면 말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이 질문이 식상하거나 실례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 하고.

우리가 고민하는 이유는 우리가 막내 시절 들었던 질문들 때문이다. ‘아직도 이 질문을?’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질문이 많았다. 당연히 이성애자라고 생각해 남자친구 있냐고 물어보고, 당연히 4년제 대학을 나왔을 거라 생각해 출신 대학을 궁금해한다. 사회가 변했고 사람은 다양해졌는데 질문은 그대로다. 내가 입사할 때 90년대생이 온다고 모두가 외쳤고, 그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바뀌어야 한다고 모두가 말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와 친구들이 받았던 질문은 10년 전 누군가가 들었던 질문과 다를 바 없었다.

막내 탈출을 (아마도) 목전에 둔 내가 요즘 하는 또 다른 고민은 ‘어떤 선배가 돼야 하는가’다. 부서에서, 현장에서 만나는 많은 선배가 후배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서 고민을 해결해보고 있다. 일단 명확하게 조언해주는 선배가 되고 싶다. 회사 규모나 업계와 상관없이 대안 없이 비난만 하는 선배들 때문에 힘들어한 경우가 주변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 부서 선배들은 내가 현장에서 찍어 온 사진을 보며 “이 부분을 더 부각했어야 오늘 기사와 더 잘 어울렸을 거야”, “보여주려는 주제가 사진 속에 3분의 1 이상은 차지해야 해”, “찍기 전에 사진에 제목을 붙여봐”라며 정확하게 짚어주곤 한다. 그런 조언들은 실제 사진을 찍을 때 도움이 된다. 나 또한 뭐는 좋고, 뭐는 아쉬워 어떻게 보완할지 명확하게 짚어줄 수 있는 선배가 되는 게 1차 목표다.

지난 월요일치 창간호 사진을 찍으러 서울 마포 하늘공원에 갔을 때도 많은 선배가 내 머릿속을 찾아오셨다. 그들은 ‘조리개값을 다르게 해봐’, ‘나중에 포토샵으로 만지기보다 처음부터 색온도를 조절해서 찍어봐’, ‘해에 딱 맞춘 거 말고 해가 좀 더 크게 나온 사진은 없어?’라고 조언했다. 이번에는 다양하게, 잘 찍었다고 생각하고 회사로 돌아오면서 다시 한번 마음먹었다. 언젠간 들어올 후배가 취재 현장에서 어떻게 하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가 고민할 때, 그 ‘어떻게’와 관련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선배가 되겠다고. 하늘공원에서 날 도와준 많은 분처럼.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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