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익 칼럼] 벌거벗은 임금님

한겨레 2022. 5. 1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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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익 칼럼]개인적으로는 개심이, 사회적으로는 개혁이, 국가적으로는 혁명이 폭발적인 힘으로 현상을 타파할 수 있는 것은 이 기억들의 집합으로 쌓인 돌파의 힘일 것이다. 작은 것이 쌓이고 하찮은 것들이 뭉쳐 커다란 덩치로 자라난 기억들이 끝내 변혁적인 역사의 힘이 된 것이리라. 1789년, 프랑스혁명으로 열린 바스티유 감옥에서 풀려난 죄수는 7명이었다던가. 민중은 바스티유만이 아니라 그것의 자잘한 악독의 기억들로 축적된 역사를 깨트린 것이다.

김병익 | 문학평론가

“옛날 옛날에”로 시작하는 그 책을 다시 펼쳤다. 김서정이 옮긴 글보다 소윤경의 그림이 더 화려한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이다. 나는 지난 4월 말 문득 생각에 떠서 대학 선생이면서도 어린이책을 좋아하는 셋째에게 부탁해 구입한 이 책을 세번째 읽는 중이다. 소년 시절에도 읽었겠지만 내게는 초등학생 시절 학예회에서 본 연극의 한 장면으로 인화돼 있기도 하다. 내용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교단을 2단으로 높여 만든 무대에서 웃통을 벗은 상급생이 목마를 타고 빙 둘러싼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나아가는데 한 소년이 “임금님이 벌거벗었잖아!” 소리치던 앳된 목소리가 지금도 들려오는 듯하다.

왜 내가 75년 전쯤의 한 장면을 회상하며 그 동화책을 읽어야 했는지 때아닌 사태가 새삼스러웠다. 지난봄 어른들 세상에서 새 나온 이야기들이 내 오랜 기억을 문득 소환한 듯하다. 매우 소박한 안데르센의 이야기를 다시 읽는다.

옛날 옛날에 새 옷을 너무 좋아하는 임금님이 있었다. 새 옷으로 몸치장하는 데 정신이 팔려 나랏일은 하나도 신경 쓰지 않고 백성을 돌보지 않았다. 그런 왕에게 마땅한 사기꾼 둘이 나타난다. 아름다울 뿐 아니라 바보에게는 절대로 보이지 않는 가장 신기한 옷감으로 짠 최고급 옷을 만들어 올리겠다는 것이다. 임금님은 가장 멋진 옷일 뿐 아니라 이 옷으로 바보 신하를 가려낼 수 있다는 데 기뻐, 그 옷을 주문했다. “당장 그 옷을 만들어라.” 얼마 뒤 한 신하가 옷집에 가보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대로 보고하면 자기가 바보가 될 것이어서, 정말 아름다운 옷이구나 하고 탄성을 지르며 돌아섰다. 재봉사들은 옷감 짜는 데 필요하다며 비단실과 금실과 돈을 더 달라고 했고, 임금님은 모두가 정직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텅 빈 베틀 앞에 재물을 안긴다. 마침내 다 된 옷을 받고 임금님은 신하의 조력을 받으며 조심스레 챙겨 입고 거리에 시위하러 나선다. 백성들이 모두 탄성을 올리며 정말 훌륭하다고 찬탄했다. “그때 한 어린아이가 외쳤어요. ‘어! 임금님이 아무것도 안 입었어!’ 임금님은 어쩔 줄 몰랐지만 몸을 더 꼿꼿이 곧추세우고 아무렇지 않은 척 행진을 계속했답니다. 시종들은 있지도 않은 망토 자락을 더 치켜들었어요.”

동화는 여기서 끝나지만 한가로이 공원 벤치에 앉은 나는 속이야기를 더 계속하고 싶었다. 스마트폰에서 ‘사사오입 개헌’을 찾아보았다. 내가 고1 때 신문에서 본 이 사건은 사람은 반올림으로 줄일 수 없다는 사사오입의 적용 원칙을 배운 지 얼마 안 돼 일어났다. 스마트폰의 ‘지식백과’에서 찾아 읽으니, 이 말의 ‘정의’는 “1954년 제1공화국의 제3대 국회에서 대통령 이승만에 대한 3선 제한의 철폐를 핵심으로 하는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제2차 헌법 개정”으로 설명되고 있었다. 그 경과에서, 장기집권을 위한 개헌을 주도한 자유당은 대통령 3선 금지 조항 삭제, 부통령에게 대통령 지위 승계권 부여 등등의 개헌안을 상정했다. 재적의원 203명 중 202명이 투표에 참여했는데, 개표 결과 반대 60표, 기권 7표, 찬성 135표였다. 국회 통과에 필요한 표는 재적의원 3분의 2인 135.333…이어서 136표를 얻어야만 했다. 부결을 선언했던 국회부의장은 다음날 ‘사사오입론’을 들여와 0.5 미만의 소수점은 버림으로써 135표로 가결되었다고, 전날의 부결을 뒤집고 통과를 선언했다. 이로써 이승만 대통령은 임기를 한번 더 늘릴 수 있었지만 4년 뒤에는 4·19 혁명이 일어나 하야했고 부통령이 된 이기붕 일가는 집단 자결의 운명을 취한다.

동화와 실화의 이 두 에피소드는 함께 다가오며 나를 아련한 사유로 적셔놓았다. 우선 사람들의 기억은 의외로 집요하다는 것이었다. 기억력에서 젬병인 나를 봐도 그렇다. 그 아동극을 보았고 수학 공부를 했던 것은 어린 소년 시절의 일인데, 그 아득한 두세대 전의 일이 불현듯 생생하게 떠오른 것이다. 평소에는 무심하다가 불편한 일을 만나거나 그 일과는 관계없는 엉뚱한 심기가 돋아나면 때 없이 뜻밖의 기억들이 문득 떠오르며 그 의외의 사태에 달려든다. 그걸 바꿔 읽으면, 개인적으로는 개심이, 사회적으로는 개혁이, 국가적으로는 혁명이 폭발적인 힘으로 현상을 타파할 수 있는 것은 이 기억들의 집합으로 쌓인 돌파의 힘일 것이다. 작은 것이 쌓이고 하찮은 것들이 뭉쳐 커다란 덩치로 자라난 기억들이 끝내 변혁적인 역사의 힘이 된 것이리라. 1789년, 프랑스혁명으로 열린 바스티유 감옥에서 풀려난 죄수는 7명이었다던가. 민중은 바스티유만이 아니라 그것의 자잘한 악독의 기억들로 축적된 역사를 깨트린 것이다.

기억은 또 변덕스럽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모아 내게 편한 대로 엮는다. 옛날 영화를 오랜만에 보면 깨닫듯이, 영화 속 사건은 내 기억대로 흐르지 않고 혹은 의외의 진실을 제시한다. 내가 연상한 ‘벌거벗은 임금님’ 추억과 사사오입의 규정은 아무 관련 없이 동시에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따져보니, 그 둘은 제멋대로인 권력과 그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함, 그것을 감추려는 꼼수에 연관돼 있었다. 왕은 권력의 허영 앞에서, 백성은 그 허영의 광포 앞에서 무력했고, 사사오입은 권력의 힘으로 잘못된 꼼수의 억지를 강제했던 것이다. 그렇게, 허영, 광기라는 권력 앞의 나약함과 꼼수는 그럼에도 시간의 바른 나아감 속에서 끝내 옳은 맺음으로 매듭짓게 된다는 것을 다행히, 역사는 보여준다. 그 나아감과 맺음들이 사초(史草)로 이어져 진실을 향해 걸음하고 지난 잘못과 이제의 비틀어짐을 고쳐 쓰게 하는 것이다. 옷감 없이 옷을 만든 사기꾼들이 소리 없이 도망치듯이 권력이 구긴 사사오입 규정도 그렇게 슬그머니 사라졌다. 감춤이 벗겨짐을 가져오는 이 폭로의 역설 과정을 지식인들은 역사의 심판, 옛사람들은 ‘사필귀정’으로 불렀다. 진실의 그런 조리 있는 진행 덕분에 사람들은 지혜로워지고 사회는 밝아져 왔다. 반성하는 데 수고가 많고 그 수정의 시간이 길고 그 확정의 과정이 까다롭지만, 종교에 대항한 과학의 역사에서 보듯이, 결국 진리가 이기고 오류가 후회하게 되는 것은 분명 진실이다. 더구나 오늘날의 숱한 정보와 언론들 사이에 낀 맑고 순진한 어린 눈들은 허영과 허상에 빠진 임금님의 벌거벗은 가장(假裝)을 밝히 바라보고 있다. 귀엽게 뛰어노는 어린이들을 바라보며 벤치에서 일어나는데 문득 ‘검수완박’을 제목으로 한 신문 한 조각이 바람결에 호숫가로 날려간다.

※고 김지하 시인은 벌거벗은 임금님의 진상을 폭로함으로써 그 시대의 진실로 스스로를 체현했다. 삼가 간곡한 조위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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