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준의 그래도 진보정치] 수도권 탈성장론

한겨레 2022. 5. 1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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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의 그래도 진보정치]

김병준 20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지역 균형발전 특별위원장이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5차 전체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석준 |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요즘 전세계에서 뜨거운 쟁점 가운데 하나는 ‘탈성장’이다. 물론 경제성장 강박에서 벗어나자는 주장은 등장한 지 이미 오래됐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극소수 이상주의자들만의 논의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한데 ‘녹색성장’을 내세우는 주류 정치세력들의 기후위기 대응이 지지부진하기만 하자 점차 판도가 바뀌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기존 자본주의 성장 경로에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여기서 예외다. 대통령선거에서도 양대 정당은 모두 ‘경제성장’을 목 놓아 외쳤다. 특히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성장’, 그것도 ‘빠른 성장’을 부르짖는다. 2주 뒤로 다가온 지방선거 분위기 역시 마찬가지다. 늘 그랬듯이 광역단체장 후보부터 기초의원 후보까지 예외 없이 지역발전 공약을 강조한다. 그 ‘발전’이란 결국 우리 고장을 최대한 서울과 닮도록, 과장하면 ‘강남’을 뒤따르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나라 밖 세상과 국내 분위기가 이렇게 다르다. 한국에서도 기후정의운동 등이 탈성장을 모색하고는 있지만, 당장 현실에 적용하기는 힘겨워하는 것 같다. 더구나 수도권과 다른 지역 사이의 커다란 격차가 지방선거나 지역정치의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할수록 더 커다란 벽을 느끼는 것 같다. 비수도권 지역에서 그나마 뜻있는 이들은 어떻게 하면 수도권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에 빨려들어가지 않을지 고민하고 있다. 상대적 박탈감을 넘어 소멸을 감수해야 하는 운명에서 벗어나는 것이 너무도 절박한 당면 과제다. 이 과제 앞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이들에게 ‘탈성장’ 이야기를 꺼내고 동의를 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이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이게 현실의 전부는 아니다. 수도권과 다른 지역의 격차 문제는 접근하기에 따라서는 오히려 탈성장 지향과 밀접하게 결합할 수도 있다. 어떻게 말인가? 바로 수도권 과잉성장에 물음을 던지고 지금이라도 급격히 방향을 선회하자는 주장을 통해 가능하다. 비수도권이 수도권을 닮아가는 ‘성장’이 아니라 수도권의 ‘탈성장’을 통해 수도권과 다른 지역의 격차를 좁히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수도권 탈성장론이다.

가령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기본전제 중 하나인 에너지 자립 문제를 보자. 수도권은 인근 충청남도에서 전력을 대량 생산해 공급하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다. 또 수도권 안에서는 인천에서 전력을 집중 생산하지 않으면 서울, 경기의 2400만 인구가 삶을 이어갈 수 없다. 석탄을 태워 전기를 만드는 시대에는 이게 통했지만, 당장 탄소 배출을 줄이자고 하면 답을 찾기 힘들어진다. 단지 태양광·풍력발전 기술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너무나 과밀한 도시를 위해 에너지를 대량 공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수도권부터 전력 사용을 줄여나가야 하고, 인구가 더 늘지 않도록 조절해야 한다. 이제껏 성장의 최대 수혜지가 수도권이었다면, 탈성장 실험이 시작돼야 할 곳 역시 수도권이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에서 아직 이런 발상이나 고민이 낯설게만 느껴지는 것은 정치 탓이다. 양대 정당이 수도권에는 더 많은 성장을, 비수도권에는 수도권을 뒤쫓는 성장을 약속하며 선출직 공직 임기를 끝없이 이어가는 게 대한민국 제6공화국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까지는 양대 정당에 도전한다는 정치세력들 역시 이러한 한국식 성장 정치-경제 경로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 경로가 안락하게 유지될 수 있었던 시대는 이제 저물고 있다. 서울에서부터 성장지상주의의 꼬인 매듭을 풀기 시작하는 정치세력만이 새로운 시대의 안내자가 될 수 있다. 과연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런 지향을 과감히 제시하고 시민들을 설득하는 미래의 싹을 찾아낼 수 있을까? 이것이 문제의 그 수도권에 거주하는 시민으로서 내가 지방선거에서 판단 기준으로 삼고자 하고, 또한 동료 시민들에게 권하고 싶은 잣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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