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시에게 물어봐

한겨레 2022. 5. 1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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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가 간지럽네.

아까시꽃이 끝나는 곳까지만 가자고.

코네티컷대학에서 원예학을 배운 그는 황폐한 산과 가난한 주민들에게 눈이 갔고, 펜실베이니아주 묘목장에 부탁해 아까시 종자 4파운드를 받았다.

해방촌 보성여고 근처에서 만난 진한 향기의 주인은 아름드리급의 아까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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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창][삶의 창]
지난 18일 활짝 핀 아까시꽃에서 꿀벌이 꿀을 찾고 있다. 연합뉴스

[삶의 창] 이명석 | 문화비평가

코가 간지럽네. 스쿠터에 친구를 태우고 해방촌으로 가다 용산고 앞 횡단보도에 멈췄다. 마스크를 내리자 진한 향기에 마음이 울컥해졌다. 고개를 돌리니 미군부대 담벼락 안에 아까시꽃들이 만개하고 있었다. 급한 일 없지? 친구의 양해를 구하고 담을 넘어온 꽃그늘을 달려 게이트 앞 얕은 비탈에 섰다. 철조망 너머로 하얀 아까시가 구름처럼 부풀어 있었고 어떤 기억이 꿀벌떼처럼 몰려왔다.

자전거를 처음 배웠던 때다. 나는 아버지 가게의 짐 자전거를 끌고 큰길로 나갔다. 아직 커브 길도 익숙하지 않았고 다리도 짧아 멈추면 뛰어내려야 했다. 그래서 무작정 달렸다. 아까시꽃이 끝나는 곳까지만 가자고. 무모한 생각이었다. 고향의 산은 온통 아까시였다. 낙동강 전선의 한복판에서 포격으로 새빨갛게 벗겨진 산을 그 나무로 덮었기 때문이다. 지친 나는 키만한 자전거를 끌고 철조망 담벼락을 따라 돌아왔다. 거기엔 캠프 캐럴이라는 거대한 미군부대가 있었다.

몇해 전 나는 그 아까시에 얽힌 비밀을 알아냈다. 심심풀이로 고향에 얽힌 옛 기사들을 뒤지다 네잎클로버 깃발을 든 ‘브 소위’의 사진을 찾은 덕분이다. 에드워드 브로프 소위는 1962년 캠프 캐럴에 부임해 왔다. 코네티컷대학에서 원예학을 배운 그는 황폐한 산과 가난한 주민들에게 눈이 갔고, 펜실베이니아주 묘목장에 부탁해 아까시 종자 4파운드를 받았다. 그렇게 심은 아까시 90만그루의 잎은 가축사료, 가지는 땔감이 됐고 뿌리는 척박한 토양을 기름지게 만들었다. 그는 제대 귀국을 연기하면서 주민들에게 과일나무 접목법, 사료 저장법, 통조림 제조법을 가르쳤다. 밤에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영화를 틀어주기도 했다.

나는 용산기지의 담벼락을 따라가며 아까시를 찾아봤다. 남영동과 삼각지 부근엔 소박한 녀석들이 이어졌다.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이촌에는 담 안팎에서 굵직한 친척들이 안부를 묻고 있었다. 해방촌 보성여고 근처에서 만난 진한 향기의 주인은 아름드리급의 아까시였다. 그러다 이런 망상을 했다. 브 소위는 종돈용 돼지 두마리를 서울에서 가져온 적이 있다. 미군 열차에서 거절당해 일반 열차에서 차장 눈치를 보며 똥범벅인 돼지들을 껴안고 왔다 한다. 혹시 그때 용산기지에 들러 아까시 몇그루를 심었던 게 아닐까?

나는 망상의 증거를 찾다 정반대의 사실을 알게 된다. 이 땅에 처음 아까시를 들여온 건 합병 직후 일본 정부였다. 특히 철도 공사로 벗겨진 붉은 땅을 덮기 위해서였는데, 그때 처음 심은 곳이 일본 육군병영 울타리. 그곳이 해방 뒤 미군기지가 되었으니 브 소위는 부임 전에 용산에서 먼저 아까시를 보았을 수도 있다.

1980년대부터 아까시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한다. 외래종 주제에 번식력이 너무 강해 산을 망친다는 거다. 일제가 조선을 황폐화하려 일부러 심었다는 음모론도 나오고, 남산의 아까시를 소나무 수만그루로 대체하는 작업도 벌어졌다. 이런 괄시와 아파트 건설 붐에도 용산의 아까시는 살아남았다. 치외법권 지역인 미군들의 땅에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용산기지를 곧 개방할 거라고 한다. 그곳의 오랜 주민인 아까시는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도 문만 연다고 바로 공원이 될 수는 없다고 여길 거다. 나는 고향의 부대에 고엽제를 묻었다는 증언을 듣고 질겁한 적이 있다. 용산기지의 오염 지도에도 울긋불긋한 얼룩이 가득하다. 문을 열되 먼저 깨끗이 정화해야 한다.

요즘 벌들이 부쩍 줄었다. 이상기후와 환경오염도 원인이겠지만 양봉업자들은 꿀벌의 식량창고인 아까시나무가 급감해서라고 한다. 용산기지가 깨끗해지면 아까시와 꽃나무들이 활개를 펼 수 있지 않을까? 그때가 되면 나도 꿀벌 아파트를 관리하는 도시양봉에 도전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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