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m 훌쩍 넘는 상록수.. 한껏 들이마시는 초록의 활기

박경일 기자 2022. 5. 19.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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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양 일월산 자락 대티골 마을의 숲길 탐방로. 숲의 청량한 초록이 터널을 이룬 이 길은 지금 가면 딱 좋다.
전남 진도 첨찰산 정상의 봉수대에서 내려다본 바다 풍경. 해무 너머 뒤로 보이는 곳이 해남 땅이다.

피톤치드향 물씬나는 초여름 숲길

허련 말년 함께한 ‘진도 첨찰산’ 물·바람 소리 어우러져 ‘힐링’

생태의 보물창고 ‘인제 곰배령’ 동자꽃·범꼬리 하나둘 피어나

일제 광물운반로 ‘영양 대티골’ 계곡물 마실 만큼 오염 안 돼

미륵산 밑 ‘통영 미래사 편백숲’ 삼림욕 즐기고 바다 볼 수 있어

어느새 5월 중순을 넘어서면서 계절은 초여름으로 향하고 있다. 초여름 여행의 최고 목적지는 숲이다. 피톤치드향으로 가득한 숲에서 보내는 초여름의 한나절은 온몸에 생기를 불어 넣어준다. 초여름 이른 더위를 씻을 수 있는 깊은 숲이 있는 여행지를 골라 봤다.

# 가장 짙은 숲 그늘…진도 첨찰산 숲길

소치 허련이 그림을 그리며 말년을 보냈다는 진도의 운림산방 뒤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이 첨찰산(485m)이다. 첨찰산의 상록수림은 그늘이 짙고 두텁기로 이름났다. 10m 훌쩍 넘는 상록수가 하늘을 덮고, 그 아래로 작은 나무들까지 진초록 잎사귀로 그늘을 드리우고 있으니 대낮에도 어두컴컴할 정도다. 나무 그늘에 앉아 쉬노라면 곧 땀이 식고, 물소리와 새소리, 바람 소리에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첨찰산 탐방코스 중 가장 인기 있는 게 운림산방 주차장에 차를 두고 쌍계사에서 출발해 진도아리랑비 쪽으로 내려오는 길이다.

오르는 길의 거리가 3㎞, 내려가는 길이 1.8㎞ 정도라 빠른 걸음이라면 2시간, 천천히 걸어도 3시간이면 충분하다. 정상 부근을 제외하면 길 전체가 빽빽한 상록수와 울창한 숲이 짙은 그늘 속으로 이어진다. 첨찰산 정상인 봉수대에 오르면 진도의 진청색 바다가 시야 가득 펼쳐진다. 운림산방은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이 49세 때 고향으로 돌아와 말년을 보내기 위해 마련한 거처이자 화실. 집 앞에 오각형 연못을 파고 직접 심었다는 배롱나무가 여름이면 붉은 꽃을 피운다.

# 천상 화원의 초록…인제 곰배령 숲길

점봉산은 한계령을 사이에 두고 설악산과 마주한 산이다. 설악의 명소에다 대면 점봉산은 밋밋하기 짝이 없지만, 점봉산에서 봐야 할 건 기암의 경치가 아니라 수수한 아름다움과 잘 지켜진 자연 생태다. 1982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 핵심 지역으로 지정된 점봉산은 ‘생태환경의 보물창고’라는 이유로 2006년부터 오는 2026년까지 산행이 제한됐다. 점봉산 정상은 디딜 수 없지만, 점봉산 자락을 넘어가는 낮은 목의 고개인 곰배령까지는 다녀올 수 있다. 곰배령도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이라 사전 예약을 해야만 산에 들어설 수 있다. 곰배령은 계절별로 야생화가 만발해 천상의 화원이라 불린다. 가장 화려한 건 봄꽃이 필 때지만, 여름으로 건너가는 이즈음부터는 동자꽃과 노루오줌, 물봉선, 범꼬리 등 여름 야생화들이 하나둘 피기 시작한다. 곰배령 탐방은 진동리 강선마을 쪽에서 오르는 코스와 귀둔리에서 오르는 코스 두 가지가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코스가 산림청에서 관리하는 강선마을 쪽에서 오르는 코스다.

귀둔리 쪽 다른 코스는 설악산국립공원 사무소에서 관리한다. 두 코스의 종점은 곰배령으로 같지만, 강선마을에서 올라왔으면 강선마을로, 귀둔리에서 올라왔으면 귀둔리로 내려가야 한다. 진동리 강선마을에서 곰배령까지는 5.1㎞ 남짓으로 거리가 긴 대신 길이 부드럽고 순하다. 귀둔리에서 곰배령까지는 3.7㎞ 남짓으로 짧지만 오르막이 가파르다.

# 느리게 걷는 치유의 길…영양 대티골 숲길

경북 영양 일월산 자락의 ‘대티골 아름다운 숲길’은 경북 청송에서 영양, 봉화, 강원 영월을 잇는 외씨버선길 구간의 일부다. 외씨버선길이라는 이름은 지도 위에 그린 길이 조지훈의 시 ‘승무’에 나오는 외씨버선의 형태와 닮았다고 해서 붙인 것. 외씨버선길은 총연장 240㎞, 13개 구간으로 나뉘는데 대티골 숲길은 7구간 치유의 길(8.3㎞)과 대부분 겹친다.

대티골 숲길 탐방로는 일월면 용화리 윗대티골에서 시작하는 옛 국도길(3.5㎞)과 칠밭목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칠밭길(0.9㎞), 옛마을길(0.8㎞), 댓골길(1.2㎞) 등 4코스로 구성된다. 옛 국도길은 본래 영양군 일월면과 봉화군 재산면을 잇는 31번 국도로 일제강점기 일월산 광산에서 캐낸 광물을 실어 나르기 위해 마을 주민을 강제 동원해서 닦았다. 해방 뒤에는 벌목한 나무를 옮기는 임도로 사용했다. 그러다가 새 국도가 생기면서 버려지고 잊힌 것을 최근 대티골 주민이 정비해 치유의 길로 거듭났다. 일월산 허리를 가로지르는 칠밭길에는 신갈나무, 생강나무, 상수리나무, 개옻나무가 즐비하고 각종 들꽃이 지천으로 핀다.

옛길을 복원하면서 대티골 사람들이 원한 것은 보존이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돌 하나도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다. 이런 노력 덕에 대티골 숲길은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숲길 부문 어울림상을 받았다. 대티골은 28가구, 40여 명이 어울려 사는 생태마을. 계곡물을 식수로 쓸 만큼 자연환경이 오염되지 않았고 곰취와 두릅, 산마늘, 참나물, 취나물 등이 많이 난다.

# 편백향과 푸른 바다…통영 미래사 편백 숲길

경남 통영시 미륵산에 자리한 미래사 편백 숲은 고즈넉한 숲길 산책과 푸른 바다의 정취를 한 번에 누리는 일거양득 여행지다. 미래사 앞까지 차로 이동이 가능한 데다, 주차장 뒤편에 산책로가 이어져 찾기도 쉽다. 미래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초대 종정인 효봉 스님의 상좌인 구산 스님이 1951년 세운 암자에서 시작했다. 중창을 거듭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됐다. 사찰이 작고 아담해서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미래사로 이어지는 편백나무 숲길은 70여 년 전 일본인이 심은 것을 해방 뒤 사찰에서 매입해 산책로를 꾸몄다. 하늘 위로 쭉쭉 뻗은 편백 숲 사이로 오솔길을 내, 편히 오가며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편백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는 항균·살균 작용은 물론, 아토피나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길 중간에 잠시 멈춰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폐부 깊숙한 곳까지 상쾌함과 청량한 기운이 스미는 기분이다.

박경일 전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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