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백일홍, 나도 부처다

2022. 5. 1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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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백일홍은 학술적으로는 ‘목백일홍’이라 부르고 한해살이 국화과 꽃인 백일홍과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배롱나무 백일홍은 초여름에 피기 시작해 가을까지 그 색과 향기를 유지한다 해서 백일홍이라고 부른다. 그 매력적 인 붉은 색과 당장 동양화를 그리고 싶어지는 매끈한 나뭇가지의 아름다운 선은 저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만든다.

배롱나무처럼 별명이 많은 나무가 또 있을까. 백일동안 피어 있다고 백일홍, 중부 지역 위에서 겨울에 살아남으면 기적이라 할 정도로 추위에 약해 유약한 사대부에 빗대어 양반나무라고도 한다. 또한 나뭇가지를 손톱으로 긁으면 온 나뭇가지들이 부르르 떨며 간지러워 한다고 간지럼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별명은 역시 백일홍이다. 학술적 공식명이 배롱나무이고, 국화과 백일홍과 같은 이름으로 불리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배롱나무 백일홍을 백일홍이라 부른다. 배롱나무 백일홍은 부처꽃과 30여 종 중에 하나이다. 부처꽃과의 특징이 연꽃이 사는 연못 근처 등 물가에 주로 서식하고, 배롱나무 백일홍이 주로 농가주택, 심산유곡의 오래된 사찰, 고택 등에서 살아가는 것을 보면 비록 사는 환경은 달라도 부처와 닮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백일홍의 특징은 여섯 개의 꽃잎, 30~40개의 수술, 해마다 껍질을 벗어버린다는 점, 꽃을 떨군 뒤에는 피부마저 벗어버린 채 완벽한 벌거숭이 즉, 사찰의 ‘무무문’에서 빌려온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의 무무목’이 된다는 점도 있다. 헐벗은 채 그 추운 겨울을 보내고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정열적인 꽃과 잎을 피운 뒤, 어느날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는 점에서 백일홍과 인간이 지향하는 삶과 너무도 닮아있다. 꽃을 피우는 기간에도 한꺼번에 활짝 열었다 어느날 모두 사라지는 게 아니라, 피었다 지었다 하는 탄생과 소멸의 윤회를 보여준다. 백일홍의 삶이야말로 부처의 가르침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배롱나무 백일홍은 화분으로 만나 식재를 하든 다 자란 나무를 심든 50여 년을 함께 할 수 있는 꽃나무이다. 화분 상태이든 정원수이든 볕이 잘 드는 곳에 놓거나 심어야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고 꽃도 잘 피어난다. 배롱나무는 최대 약 5m까지 자라니 훗날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사는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라면 정원의 나무로 백일홍이 활짝 피는 배롱나무를 심어볼 것을 권한다. 필자가 마당 있는 집에 살 때 배롱나무를 직접 심어 함께 지냈었는데, 초여름날 붉은 꽃이 활짝 피면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돌아온 백일홍을 환영했고, 늦가을, 그야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나목이 되어버린 백일홍 앞에 서서 뜨거웠던 여름을 돌아보며 성찰의 시간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며칠 전, 3년 만에 다시 열린 석가탄신일 때 전국의 사찰에는 온갖 꽃들이 만발했고 그 꽃처럼 아름다운 연등 또한 절간을 찾는 불자와 여행자들의 마음을 밤낮없이 들뜨게 만들곤 했다. 물론 지금까지 꽃과 연등의 향연은 계속되고 있으며 연등의 축제가 끝날 즈음 시작될 백일홍의 개화는 세속의 인간에게 또 하나의 기쁨을 선사하게 될 것이다.

배롱나무 백일홍은 주로 붉은색 꽃을 피우지만 수종에 따라 보라색, 연보라색, 하얀색을 띄기도 한다. 의미도 꽃 색깔에 따라 다르게 붉은 계열에는 부귀, 하양에는 말벗, 수다스러움이라는 꽃말이 붙었다. 올 여름, 배롱나무 백일홍과 인연을 맺을 수 있다면 그것은 종교를 떠나 부처와의 만남을 뜻하는 것이니, 생성과 소멸이라는 우주의 원리를 담고 있는 백일홍의 깊은 아름다움을 꼭 한번 만나 볼 것을 기원해 본다.

[글 아트만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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