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 내려놓은 '금단의 땅'.. 국민의 시선을 바꾸다

박경일 기자 입력 2022. 5. 19. 11:23 수정 2022. 5. 1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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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백악산(북악산)에 등을 딱 대고 부챗살 모양으로 펼쳐진 서울 도심을 한눈에 바라보는 자리에 있다. 늘 ‘남에서 북으로’ 보는 시선 방향이 익숙했는데, 청와대에 들어가면 서울을 거꾸로 ‘북에서 남으로’ 보게 된다. 시선의 방향이 바뀌니 늘 보던 것들이 반대쪽에 있다. 오른쪽에 있던 것이 왼쪽에, 왼쪽에 있던 것이 오른쪽에 있다. 이게 다스리는 자리에서 보는 서울의 풍경이었을까. 청와대 본관 너머로 경복궁과 광화문 네거리가 보인다.
드론으로 찍은 청와대 관저의 전경. 청와대 관저를 드론으로 찍는다는 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여민관 앞에 심은 소나무. 노태우 대통령이 관저의 인수문 앞에 심은 소나무.
김대중 대통령이 영빈관 앞에 심은 무궁화나무. 박근혜 대통령이 본관 옆 소정원중앙에 심은 이팝나무. 박정희대통령이 1978년 12월에 심은 향나무.
김대중 대통령이 청와대 뒤 북악정에 심은 느티나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식목일에 심은 모감주나무. 노무현 대통령이 북악정 김대중대통령 기념식수 옆에다 심은 서어나무.

■ ‘다스리던 자리’ 청와대를 들여다보다

‘남에서 북으로’ 보던 서울, 靑 안에선 ‘북에서 남으로’ 보게 돼

달라진 시선 방향에 좌우 반전된 ‘낯선 서울 풍경’ 들어와

이번 완전개방으로 열린 백악산 구간 … 산행로 따라 펼쳐진 경관 장쾌

대통령 기념식수 침엽수 많아 … ‘낙엽 우수수’ 활엽수는 꺼린 탓일 터

경주서 일제 거쳐 靑 옮겨진 석조여래좌상 등 유적도 눈길

글·사진 = 박경일 전임기자

대통령실이 청와대 국민 개방 기념행사 기간을 내달 11일까지 연장했을 정도로 청와대 방문 열기가 뜨겁습니다.

하지만 청와대 개방이 갑자기 결정되는 바람에 공개하는 쪽에서도 무엇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정리가 안 된 느낌이고, 관람객도 청와대에서 무엇을 어떻게 봐야 할지 아직 좀 혼란스러운 듯합니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사흘 동안 청와대의 나무를 세고, 백악산(북악산)과 인왕산을 이어 걷고, 옛 그림을 찾아 국립중앙박물관을 다녀왔습니다.

접근 불가 금단의 공간을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로웠고, 근현대사가 굵게 새겨진 현장에서의 감회도 있었지만, 청와대에서 가장 인상적인 경험은 ‘시선 방향의 변화’였습니다.

청와대에 가보고서야 비로소 깨달은 건, 그동안 서울을 봐 온 시선의 방향이 ‘남에서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청와대에서 보니 그동안의 시선과는 반대로 서울을 ‘북에서 남쪽으로’ 보게 됐습니다.

남에서 북쪽을 볼 때 오른쪽에 있던 것이, 북에서 남쪽을 보니 왼쪽에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왼쪽에 있던 것이, 시선을 바꾸니 오른쪽에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봐 온 서울이 참 생경하더군요.

보는 방향이 다르니 풍경은 좌우가 반전됩니다.

고려 때 이후로 줄곧 ‘다스리는 자리’였던 청와대 자리에서 경험한 시선 방향의 변화는, 어쩐지 상징처럼 느껴졌습니다.

다음은 청와대에서 시작해 백악산, 인왕산을 넘어가면서 느꼈던 감회와 시선, 그리고 청와대에 가면 꼭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은 역사의 자취 이야기입니다.

# ‘높이’로 몸을 숨기다…청와대 관저

대통령이 사는 집은 어떤 모습일까. 개방된 청와대에서 관람객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곳은 대통령 가족의 살림집, 그러니까 청와대 관저였다. 청와대 본관이나 영빈관은 직접 가보지 못했어도 사진이나 뉴스 영상으로 자주 접하는 곳이었다면, 관저는 밖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금단의 공간이었다. 관저에는 대통령 가족이나 극소수 관리 인원을 빼고는 아예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출입 기자들에게도 공개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관저에 가봤다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관저의 출입문인 인수문(仁壽門)을 본 사람마저도 드물었을 정도다.

누구도 감히 발을 디딜 수 없었던 청와대 사저 마당이 청와대 개방으로 양산을 들거나 반바지 차림을 한 관람객들의 기념사진 촬영 장소가 됐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상상할 수 없었던 게 어디 그것뿐인가. 청와대 본관과 상춘재, 영빈관 마당이 관람객들로 북적거리고, 녹지원과 대정원 마당에서는 다채로운 공연이 열리며, 상공에는 드론이 날아다닌다. 이어폰을 낀 채 굳은 표정으로 부동자세를 하고 있었던 경비 요원들은, 청와대 개방 이후 ‘기념사진 좀 찍어달라’며 건네는 관람객 휴대전화를 받아 드느라 바쁘다. 절대로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가능해졌다는 것이 잘 믿기지 않았다.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일’과 ‘해도 되는 일’과의 사이가 아득했다가, 하루아침에 경계가 허물어진 느낌이었다.

청와대 관저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있다. 청와대 본관 옆 숲길을 지나 언덕 위에 자리 잡은 관저는, 마치 단절된 다른 차원에 있는 공간처럼 느껴진다. 관저에 들어서는 관람객 열에 일고여덟은 어떤 대통령을 빗대서 하는 얘긴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구중궁궐’에서 살았으니…”라며 혀를 찼다. 관저는 앞이 탁 트인 개방적인 자리에 있다. 그럼에도 관저를 아홉 담을 쌓은 구중궁궐로 느끼게 되는 건 ‘높이’로 숨었기 때문이다. 관저를 ‘넘어다볼’ 수 없는 건 청와대 건물 중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관저에서 유심히 봤던 건 추녀마루에 얹은 ‘잡상(雜像)’이었다. 잡상은 무인상과 행자 등의 형상을 한 장식기와다. 보통 궁궐 등 최고의 격식을 갖춘 추녀마루에 줄 맞춰 주르륵 앉힌다. 잡상의 숫자가 드러내는 건 집의 서열이다. 중국에서는 자금성 태화전의 잡상이 11개로 가장 높은 등급이다. 우리도 경복궁 경회루의 잡상이 11개로 가장 많다. 청와대 본관의 잡상도 11개다. 청와대 관저 추녀마루의 잡상은 7개. 덕수궁 중화전의 10개와 창덕궁 인정전의 9개보다는 적지만, 왕의 침소였던 경복궁 강녕전이나 왕비 침소 교태전과 잡상 수가 같다.

# 역대 대통령이 남기고 간 딱 한 가지

대통령 입장에서 청와대는 5년짜리 전셋집이나 마찬가지다. 그것도 ‘재계약이 불가능한’ 전셋집이다. 청와대에 새로 들어온 세입자들은 이전 세입자의 흔적을 싹 다 지워버리게 마련이다. 대통령 퇴임 이후 권력 암투나 친인척 비리에 휘말려 불행한 시기를 보내는 경우가 잦았으니 더욱 그렇다. 청와대에서 역대 대통령의 흔적을 찾기 어려운 이유다.

그래도 딱 하나 역대 대통령이 남기고 간 것이 있으니, 청와대 경내에 손수 심은 나무들이다. 청와대에는 역대 대통령의 기념식수가 곳곳에 있다. 정리된 자료가 없어 보물찾기하듯 뒤져가며 찾아야 한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기념식수한 나무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대통령들은 대개 나무를 정원 한쪽에 심었다. 5년짜리 청와대 세입자에게는 그것이 마땅한 일이었으리라.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달랐다. 어디든 가장 잘 보이는 중심에다 나무를 심었다. 2013년 본관 옆의 아기자기한 소정원 한가운데 키 큰 이팝나무를 심었고, 2014년에는 경복궁을 지키던 병사들이 머물렀던 수궁(守宮)터 중앙에 정이품송 후계목을 심었다. 2015년에는 녹지원 뒤편에 무궁화를 심었다. 무궁화 세 그루씩 무더기를 사방에다 먼저 심어놓은 뒤 박근혜 대통령이 그 중심에다 무궁화 세 그루를 심는 방식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대통령에 당선돼 어린 시절을 보낸 청와대로 돌아왔으니 ‘세입자가 아니라 집주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란 해석도 있지만, 대통령이 직접 나무 심을 자리까지 정했을 턱이 있을까. 필시 ‘밑에서’ 미뤄 짐작해 결정한 일이 아니었을까.

과거 대통령들은 청와대 기념식수로 침엽수를 주로 심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향나무를, 전두환 대통령은 백송을, 최규하 대통령은 독일 가문비나무를, 노태우 대통령은 소나무를 심었다. 소나무는 노무현 대통령도, 문재인 대통령도, 박근혜 대통령도 심었다. 침엽수를 주로 심은 뜻은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활엽수를 심었다가는 가을에 무슨 소문이 날지 몰라서 그랬으리라.

대통령이 외부에 나가서 심는 나무는 거의 다 침엽수였지만, 청와대에는 가끔 활엽수도 심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느티나무를 심었고, 문재인 대통령은 모감주나무를 심었다. 그런데 김영삼 대통령이 심은 나무가 뜻밖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수궁터 안쪽에 산딸나무를 심었다. 청와대 개방 시기에 딱 맞춰서 김 대통령이 심은 산딸나무에 흰 꽃이 화려하게 피었다.

# 심기일전으로 심은 나무 두 그루

그런데 의아한 건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에 향나무를 심은 날이 1978년 12월 23일이라는 것이다. 보통 청와대의 기념식수는 식목일 즈음에 하는 게 보통인데 박 대통령은 왜 겨울의 한복판에 나무를 심었을까. 연표를 뒤적여 봤다. 나무 심기 하루 전날인 12월 22일에 박 대통령은 닷새 뒤로 다가온 제9대 대통령 취임식을 앞두고 11개 부처 장관을 경질하는 개각을 단행했다. 취임식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단행한 개각 이튿날에 심은 나무였으니 심기일전의 마음을 담은 것이었으리라.

청와대에는 박 대통령의 향나무처럼 심기일전의 마음으로 심은 또 한 그루의 나무가 있다. 백악산 중턱 청와대 담장 바로 바깥에 작은 쉼터 백악정이 있는데, 그 옆에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5월 16일 서어나무를 심었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64일 동안 직무가 정지됐던 노 대통령은, 나무 심기 이틀 전에 헌법재판소 탄핵안 기각으로 직무에 복귀했다. 직무에 복귀한 노 대통령은 나무를 심으면서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청와대에서 벌어진 일은 아니었지만, 고관대작이 심은 기념식수가 죽은 경우가 더러 있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는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부통령 재임 시절이던 1982년 한·미 수교 100주년을 기념해 내한했다가 심은 주목이 있었다. 국회의사당 제1호 기념식수였다. 부시 부통령이 심은 건 100년생 주목이었는데, 뭐가 잘못됐는지 나무를 심은 지 1년여 만에 죽었다. 그러자 국회 사무처는 그 자리에 주목이 아닌 화백나무를 심고서 시치미를 떼고 있다가 30년이 지난 뒤에 언론의 추궁을 받고 사실을 실토했다.

경북 안동의 도산서원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 앞에 있던 금송을 손수 도산서원에 옮겨 심었는데, 금송이 2년 만에 말라죽자 안동 군수가 몰래 일본에서 사들인 같은 수종의 나무를 그 자리에 심고 40년 넘게 이런 사실을 숨겨오다가 들통나기도 했다.

# 공간을 감상하는 세 가지 방법

공간을 누리고 감상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안에서 안을 보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바깥에서 안을 보는 방법이며, 세 번째는 안에서 바깥을 보는 방법이다. 청와대를 감상하는 요령도 마찬가지다.

청와대는 역사의 현장이란 의미를 다 지워버려도 경내의 유적과 주변의 자연경관만으로도 그 가치가 뛰어난 곳이다. 본래 경주 남산에 있었다가 일제강점기 총독부 박물관을 거쳐 1989년 노태우 대통령 재임 중 청와대로 옮겨온 관저 뒤편의 석조여래좌상도 그렇고, 비슷한 시기에 새로 지은 정자 오운정도 그렇고, 지금은 헐린 옛 청와대 본관의 지붕에 올렸다는 돌로 만든 장식기와인 ‘절병통’도 그렇다. 잔디가 깔린 녹지원의 노거수 반송도, 주변에 놓아둔 기이한 형상의 돌인 괴석도, 침류각 주변과 상춘재 아래 짙은 숲 그늘의 계곡도 인상적이다. 이게 안에서 안을 보는 얘기다.

이제 바깥에서 안을 보자. 청와대는 우뚝 솟은 백악산에 등을 대고 있다. 대부분 북악산이라고 알고 있지만, 조선 시대 내내 청와대 뒷산은 백악산으로 불렸다. 능선의 바위 형상이 얼굴을 닮았다고 해서 ‘낯 면(面)’ 자를 써서 면악산이라고도 했다.

국립중앙박물관 2층 서화관에는 백악산과 광화문, 경복궁이 장엄하게 어우러진 장면을 그린 그림 ‘백악춘효도’가 걸려 있다. 이 그림은 심전 안중식이 1915년에 그렸다. 그가 이 그림을 그렸을 때는 일제에 의해 경복궁이 크게 훼손된 후였다. 기껏해야 경회루와 근정전 등만 초라하게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림 속의 경복궁은 짙은 숲속에서 장중한 기와지붕이 겹쳐 장관을 이루고 있다. 안중식은 대한제국 시절의 백악산과 경복궁을,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고 그린 것이다. 그 그림을 보길 권한다. 그림이 먼저든 청와대가 먼저든 순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사실 청와대의 압권은, 안에서 바깥을 보는 경관이다. 청와대에는 백악산을 따라 담장 안쪽을 끼고 이어지는 산책로가 있다. 산책로에는 모두 4개의 전망대가 있다. 여기서는 경복궁과 광화문 네거리 일대가 환히 내려다보인다. 광우병 촛불 시위가 한창이던 2008년 6월 이명박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그 밤에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지는 촛불의 행렬을 바라보았다’고 했는데, 그때 아마도 광화문 네거리가 가장 잘 보이는 말바위 전망대에 있었으리라. 서쪽 끝 말바위 전망대에서 광화문이 가장 잘 보인다면, 가장 스케일이 큰 시야를 보여주는 곳은 동쪽 끝 남산 전망대다.

# 다스리는 이의 시점과 반전된 풍경

청와대에서 보는 바깥 경관은 낯설기 이를 데 없다. 보통 서울을 보는 시선의 방향은 ‘남에서 북’이다. 말하자면 남쪽의 광화문에서 북쪽의 청와대 방향으로 시선의 방향이 정해진다는 얘기다. 눈으로 볼 때도 그렇고, 지도를 볼 때도 그렇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백악산을 등지고 서울을 내다보는 시선 방향은 북쪽에서 남쪽이다.

시선 방향이 바뀌면 좌우가 반전된다. 남쪽에서 북쪽을 바라보는 익숙한 시선으로 보면 서울 잠실은 오른쪽에, 여의도는 늘 왼쪽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반대로 잠실은 왼쪽에, 여의도는 오른쪽에 있다. 그러니 청와대에서 보는 서울 풍경은 그동안 봐온 서울을 반전시킨 모습이다. 좌우가 바뀐 서울의 풍경은 낯설 수밖에….

청와대와 백악산을 통틀어 가장 장쾌한 경관은 청와대 담장 뒤편 백악산 기슭에 조성해놓은 청와대 전망대다. 청와대 담장 뒤로 백악정을 지나서 닿는 청와대 전망대에서는 서울의 전경을 한눈에 다 담을 수 있다. 여길 가보겠다면, 내친김에 해발 342m 높이의 백악산에 올랐다가 창의문으로 내려가서 다시 해발 338m의 인왕산을 넘어가는 종주 코스를 권한다.

1968년 북한의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한 1·21사태 이후 군사상 보안 문제 등으로 산 전체가 출입통제지역이 됐던 백악산은, 지금도 곳곳에 철조망과 감시카메라, 적외선 탐지센서 등이 촘촘하게 깔려 있어 긴장감이 느껴진다. 백악산은 2006년 홍련사∼숙정문∼촛대바위(1.1㎞) 구간 1차 부분 개방을 시작으로 그동안 꾸준히 개방 구간이 늘었다. 특히 이번 청와대 완전 개방으로 청와대에서 바로 백악산으로 올라붙은 구간까지 개방됐다. 백악산 탐방코스는 청와대 경비를 위해 만든 계단이 대부분이어서 산행 자체로는 매력이 거의 없지만, 그래도 장쾌하게 펼쳐지는 서울의 경관이 훌륭하다.

백악산은 야간산행을 할 수 없지만, 인왕산은 밤에도 오를 수 있다. 백악산에서 창의문 방면으로 내려가서 저녁 시간에 맞춰 인왕산에 오르면 서울의 야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 인왕산에는 세 곳의 야경 포인트가 있다. 자하문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정상 못미처 청와대 일대부터 남산, 여의도가 한눈에 다 들어오는 장소가 있다. 정상에서 펼쳐지는 야경도 좋지만, 정상 아래 범바위야말로 야경을 감상하기에 가장 적당한 거리다.

# 궁정동 안가는 어디에 있었을까

이번 청와대 완전 개방으로 그동안 제한적으로 개방됐던 청와대 주변의 알려지지 않은 곳까지 새삼 조명을 받고 있다. 그중 하나가 청와대 영빈관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둔 칠궁이다. 칠궁(七宮)이란 이름 그대로 ‘일곱 개 궁’이 있다고 해서 부르는 이름. 여기서 궁이란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청와대 영빈관 서쪽의 법정동은 궁정동이다. 궁정동이란 지명은 칠궁의 ‘궁’ 자와 한겨울에도 따뜻한 물이 솟는 우물이 있었다는 온정동(溫井洞)의 ‘정(井)’ 자를 더해 지어졌다. 궁정동이라면 누구에게나 떠오르는 역사적 사건이 있다. 1979년 10월 26일에 있었던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이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한 사건이 벌어진 곳이 바로 ‘궁정동 안가(안전가옥)’다. 그렇다면 10·26 사건이 벌어진 안가는 과연 어디였을까.

박정희 대통령 재임 당시 청와대 주변에는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비밀 유지를 위해 이용하는 일반 집인 ‘안가’ 12채가 있었다. 그중 궁정동에는 중앙정보부장 집무실을 포함해 구관과 신관, 그리고 가동, 나동, 다동 등 6채의 안가가 있었다. 유신체제의 종언을 고했던 10·26 사건은 궁정동의 2층짜리 양옥인 ‘나동’ 안가의 연회장에서 1979년 10월 26일 오후 7시 20분에 벌어졌다.

궁정동의 안가는 지금 없다. 1993년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정권은 출범과 함께 청와대 앞길과 인왕산을 개방하면서 안가를 모두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무궁화동산’이란 공원을 만들었다. 무궁화가 심어진 공원 어디쯤이 나동 안가의 연회장이 있던 자리였는지는 알 수 없다. 기록도, 표식도 없다. 공원의 가장 안쪽 자리 어디쯤으로 짐작만 될 뿐이다.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역사적인 사건 현장에 표식과 기록이 없는 이유는 짐작할 수 있다. 대통령 집무실과 사저가 있는 청와대 코앞에서 저격사건 이야기를 꺼내어 놓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그렇다면 대통령 집무실과 사저를 옮겨간 지금은 기록과 표식을 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청와대 앞에는 10·26 못지않은 굵직한 역사적 사건이 벌어진 현장이 또 한 곳 있다. 4·19 혁명 당시 경무대(지금의 청와대) 앞으로 몰려든 시위대를 향해 처음 총을 쏜 자리다. 최루탄과 공포탄을 쏘며 시위대를 저지하려던 경찰은 1960년 4월 19일 화요일 오후 1시 40분 경무대 앞에서 무차별 총격을 시작했다. 4·19 최초의 발포였다. 이날 발포로 시민 21명이 죽었고, 172명이 다쳤다. 사망자 중에는 초등학생도 있었다.

4·19 최초 발포 현장은 청와대 서쪽 광장 분수대 부근이다. 첫 총격이 있었던 자리에는 삼각형 모양의 바닥 동판을 박아 놓았다.

■ 靑 영빈관 돌기둥

청와대 영빈관은 건물을 빙 두른 18개의 돌기둥이 건물 전체를 떠받들고 있는 모양의 웅장한 건물이다. 영빈관에서는 건물 앞쪽의 돌기둥 4개를 특히 유심히 보자. 둘레 3m, 높이 13m로 건물 2층을 통째로 지탱하는 이 기둥은 단 한 곳의 이음매도 없이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전북 익산 황등에서 채굴한 돌을 깎아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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