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위기 극복하고 창업 5년만에 100억 매출로 '우뚝'

2022. 5. 19.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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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도매업 태조상사 이완종 대표

“성공이라니 부끄럽습니다. 좋은 제품을 공급해주고, 믿고 구매해준 거래처의 모든 분에게 고개 숙여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분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거래처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더 공부하고 더 땀나게 뛰겠습니다.”

식품 도매업 회사인 태조상사의 이완종 대표는 연간 매출 100억 원 달성의 공을 거래처에 돌렸다. 업계 관계자들은 사업을 시작한 지 5년 만에 100억 매출을 돌파한 것은 매우 드문 경우라고 입을 모은다. 더구나 지난 2년은 코로나19로 소비가 위축되고 경기가 가라앉은 시기였기에 태조상사의 폭발적 매출 신장은 부러움을 넘어 경이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태조상사는 프랜차이즈 본사와 대형마트 중심의 식자재 유통회사 50여 곳을 거래처로 두고 있다. 이 대표는 꼼꼼하고 촘촘하게 발품을 팔아 거래처를 관리하는 거로 유명하다. 한데, 거래처를 한 달에 한 번만 방문한다 해도 하루에 2곳은 들러야 한다. 게다가 생산 및 공급 업체 관리도 이 대표 몫이다.

이 대표의 하루를 따라가 보자. 오늘도 아침 6시에 어김없이 일어나 새벽바람을 가르며 출근한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배송일정을 확인하다 보면 시간은 금세 흘러 직원들이 출근 인사를 한다. 오늘 납품할 물건을 하나둘 확인하고, 직원들과 배송업무를 챙긴다. 전년도 오늘 날짜 매출과 매입도 꼼꼼하게 살피고 소홀함이 없는지 점검하는 것도 일과의 하나다. 직원들이 배송을 나가면 거래처를 직접 방문해 물건에 대한 평가와 주문 사항 등을 듣는다. 서류 마감을 끝으로 일과를 마무리하면 어느새 하루해가 저문다. 웬만한 부지런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오늘 같은 일정이 일 년 내내 반복된다.

이 대표는 어려서부터 근면과 성실이 몸에 뱄다. 남양주에 있는 작은 마을 막작골에서 태어나 어려운 가정형편에 고생이 많았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읜 탓에 어머니를 도우며 또래보다 일찍 철이 들어야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신문 배달도 하고, 철근이나 구리를 모아 고물상에 팔아 용돈도 벌고 살림에 보탰다.

학교생활은 즐겁고 씩씩하게 해냈다. 친구들에게 리더십을 인정받아 초등학교 6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내내 반장을 도맡았다. 공부에도 재미가 붙어 고등학교를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고교생활 마무리가 순탄치만은 않았다.

한동안 방황하던 이 대표는 군 제대와 함께 마음을 다잡았다. 중소기업 배송기사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해 특유의 근면과 성실로 사장의 인정을 받았다. 재래시장에 새벽배송을 하는 일이었다. 당시 재래시장은 허허벌판이나 다름없어 새벽에 차가운 눈비를 맞으면 일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어려움을 이겨내며 일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의 힘’이었다.

이 대표 곁에는 당시 스무 살에 만나 4년 후에 결혼하자고 약속한 여인이 있었다. 아내와의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4년 동안 하루 서너 시간만 잠을 자며 열심히 일한 덕에 스물네 살이 되던 해에 지역소사장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참으로 열심히 살고 돈도 제법 벌며 행복한 시절이었지만, 다시 돌아가겠냐는 물음에는 고객을 내젓는다. 그만큼 힘들었기 때문이다.

위기는 시대변화와 함께 찾아왔다. 재래시장이 대기업 할인마트에 밀려 수입이 뚝뚝 떨어졌다. 그때 무리하게 투자해 사업을 벌였다가 쫄딱 망했다. 길바닥에 나앉을 정도였고, 술에 빠지면서 상황은 더 나빠졌다. 이때도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킨 것은 아내였다. 사랑하는 아내의 간절한 응원에 심기일전해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식품 도매업에 뛰어들었다. 오늘의 이 대표를 있게 한 제2의 인생이 펼쳐졌다.

물론 우여곡절이 많았고 여러 크고 작은 시행착오도 수없이 겪었다. 도매업은 재래시장에 납품하던 영업과는 차원이 달랐다. 물량도 많은 데다 수시로 변하는 식품시장 트렌드를 예측해 미리 준비하고, 품질은 매일매일 확인해야 했다. 식자재·급식·외식 프랜차이즈 등 각각의 유통경로가 다르고 각각에 맞는 상품도 다르니 밤잠을 줄여가며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태조상사는 남양주시 유통업체 중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성장했다. 이 대표도 식품유통과 관련해 전문가의 식견을 갖추게 되었다. 일견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항상 경청과 겸손을 모토로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채우고 있다. 오늘 같은 하루하루가 쌓이고 쌓여 더 도약의 디딤돌이 됨은 자명한 세상 이치다.

이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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