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구르나 "믿기 어렵더라도 전쟁이나 폭력은 절대 합리화할 수 없어"

김용출 2022. 5. 19. 07:3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노벨문학상 자체가 하나의 글로벌 이벤트여서 많은 사람들이 저에 대해 알고 싶어 했고, 그래서 오늘처럼 여러분과 이야기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소통의 방식의 바뀐 게 가장 큰 변화 같습니다.”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탄자니아 국적의 난민 출신 소설가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자신의 장편소설 한국어판 출간을 계기로 18일 오후 줌라이브를 통해 한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노벨문학상 이후 가장 달라진 점을 묻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기자간담회는 구르나의 삶과 문학을 엿볼 수 있는 대표작 ‘바닷가에서’(2001)를 비롯해 초기작과 최신작인 ‘낙원’(1994), ‘그후의 삶’(2020·이상 문학동네) 세 작품이 동시에 번역 출간되면서 이뤄졌다.

먼저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긴 대표작인 2001년작 ‘바닷가에서’는 ‘샤반’이라는 가짜 이름으로 영국에 입국했다가 수용소에 억류된 잔지바르섬 출신 살레 오마르가 역시 잔지바르 출신인 문학교수 라티프 마흐무드와 바닷가 마을에서 만나면서 수십 년 전의 망각된 진실과 비극을 대면하며 화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94년작 ‘낙원’은 아버지의 빚 때문에 볼모로 잡혀서 상인들과 함께 성장한 12세 소년 유수프 이야기를, 가장 최근작인 ‘그후의 삶’은 20세기 초 독일이 동아프리카 일대의 저항을 진압하고 식민 지배한 이후의 삶과 식민주의의 민낯을 각각 담고 있다.

구르나는 이날 소설가와 교수라는 두 가지 삶을 살아온 것에 대해 “밸런스를 맞추는 것은 어려운 게 아니다. 왜냐하면 두 가지를 동시에 한 게 아니었다. 학기 중에는 학자로 공부했고, 방학과 안식년에는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대학에서 교수로서 활동했기 때문에 소설가로서 무슨 작품을 써야겠다고 구상할 시간은 충분했고, 오히려 리서치 페이퍼 논문을 어떤 주제로 써야 할까를 종종 고민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선 “인간은 괴물적인 면을 갖고 있어서, 아주 작은 도발에도 참지 못하고 폭력을 행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 같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은 굉장히 믿기 어렵다”면서도 “믿기 어렵더라도 전쟁이라든지 폭력이라는 것을 절대 합리화할 수 없다는 점만을 말씀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난민 문제에 폐쇄적인 한국 사회에 대해선 “삶이 전쟁이라든지 폭력 또는 많은 형태의 결핍에 의해서 위협받을 때 우리는 인류로서 환대의 의무를 있다”며 “우리가 어떤 위험에 빠진 삶,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환영하고 환대하도록 하는 가르침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우회적인 변화를 촉구했다.

구르나는 “작가로서의 정체기는 없었던 것 같고, 만약에 있었다면 모르고 넘어갈 것 같다”며 “어떤 글을 쓸 것인가를 생각하고, 노트를 조금 만든 후에는, 5~6주 정도 한 번에 이어서 글을 쓰고, 다른 업무를 하다가 다시 글쓰기로 돌아오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보만을 위한 것이라면 신문이나 다른 것을 택하겠지만, 즐거움을 얻기 위해 우리는 문학책을 든다”며 “아울러 소설을 통해 타인의 삶을 천착하고 타인이 살아가는 조건, 다른 사람이 살아가는 행동 방식을 이해하고 알아가게 된다”고 문학의 의미를 강조했다.

1948년 영국 보호령인 아프리카 잔지바르섬에서 태어난 구르나는 1964년 잔지바르 혁명으로 부족 갈등과 이슬람 박해가 격화하자 1960년대 말 난민자격으로 영국으로 이주했다. 최근까지 켄트대 교수로 영어와 탈식민주의 문학을 가르치는 한편, 21세부터 주로 난민으로서 겪은 혼란을 다룬 장편소설(10편)과 단편소설들을 써왔다.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해 구르나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식민주의 영향과 대륙 간 문화 간 격차 속에서 난민이 처한 운명을 타협 없이, 연민 어린 시선으로 통찰했다”고 평가했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문학동네 제공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