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잠재적 인간의 역지사지(易地思之)

조철현 세종충남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022. 5. 19.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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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현 세종충남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스위스 출신의 심리학자 피아제(1896-1980)는 심리학 분야에서 지대한 공헌을 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동의 정신이 일련의 정해진 단계를 거쳐 성숙하고 성장한다는 이른바 '유전인식론'이다. 피아제는 감각운동기(Sensory-motor stage), 전조작기(Preoperational stage), 구체적 조작기(Concrete operational stage), 형식적 조작기(Formal operational stage)의 4단계를 제시하고 각 단계를 지날 때마다 아이는 독자적으로 개념들을 통합하고 상위 수준의 개념으로 조직화함으로써 정신적으로 성장한다고 주장했다. 유전인식론에서 인지적 성숙이 핵심이지만 태생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인간이 점차 사회화를 이루어가는 단계적 발전을 설명하기도 한다. 피아제는 전조작기에 있는 아이는 자기중심적(egocentric)이기 때문에 타인의 내적 상태 즉, 타인의 마음이 자신의 상태와 다를 수 있다는 점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다고 했다. 타인의 상태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 등의 관찰에 의해 파악이 되고 추정을 할 수가 있는데 전조작기에 있는 아이는 이것이 어렵기 때문에 자기중심적 행동을 하게 된다.

피아제의 사회화에 대한 설명과 같은 맥락에서 발전한 것이 '마음 이론'(theory of mind)이다. 마음 이론은 타인이 자신과는 다른 욕구, 의도, 관점, 그리고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으로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 능력의 정도를 평가할 때 사용되는 개념이다. 펜실베니아 대학의 데이비드 프레맥(David Premack)과 가이 우드러프(Guy Woodruff)의 1978년 논문 '침팬지는 마음이론이 있는가?'에서 침팬지도 공감과 이해 능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보고하고 있으나 마음 이론은 여전히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특별하고도 고유한 능력이라 여길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 능력은 성장과 발달의 단계가 필요한 것이다.

일생에 걸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 몇 살까지 살 수 있을지, 어떤 직업을 가질지, 소득 수준은 어떻게 될지, 결혼은 할 수 있을지, 배우자는 누가 될지 등등 보편적인 이슈조차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모두가 '잠재적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긍정적 부정적 가능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잠재적 인간이다. 부와 명예, 업적, 행복 등과 같은 긍정적 측면의 잠재적 인간이기도 하지만 가난과 치욕, 전쟁, 사고, 장애, 소수자, 죽음 등과 같은 부정적 측면의 잠재적 인간이기도 하다. 이 모든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이기에 우리는 희망을 품을 수도 있고 예방할 수도 있으며 겸손할 수도 있다.

마음 이론은 역지사지(易地思之)와 일맥상통한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위해서는 타인이 자신과는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아제의 이론에 따르면 역지사지는 인간 본연의 특성이지만 태생적인 것이 아니라 성장과 발달이 필요한 능력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역지사지는커녕 아전인수(我田引水)를 많이 보게 된다. 관점의 차이일 수도 있고, 교육의 부족일 수도 있고, 성장과 발달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우리는 '잠재적 인간'이다. 마음 이론의 부재를 굳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나 자신이나 가족 또한 그 입장과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잠재적' 가능성만 생각해보자. 지금은 가능성이 낮아 보여도 우리는 언제 불의의 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될지, 가족과 사별할지, 소수자가 될지 알 수가 없다. 대부분은 자발적 선택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이런 '잠재적 인간'인 우리가 다분히 이기적 관점에서 근래 사회적 논쟁의 지점과 의견 갈등 현장을 들여다보면 좋겠다. 나와 가족이 겪을 수도 있는 그 잠재성을 고려해서 바라보면 좋겠다. 도덕과 윤리, 이념의 차원에서 평행선을 걷고 있다면 '잠재적 인간의 역지사지' 수준에서 다시 문제를 바라보고, 태도를 정하고, 갈등을 조율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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