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K] "산업기술 중국에 넘겨도 솜방망이 처벌"..왜?

임주현 입력 2022. 5. 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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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반도체 핵심기술이 중국으로 넘어간 정황이 최근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액체도 기체도 아닌 상태의 '초임계 이산화탄소'로 반도체 기판을 세정해 불량률을 최소화하는 기술입니다.

삼성전자 자회사인 '세메스'가 2018년 세계 최초로 개발해 관련 장비를 삼성전자에만 납품해왔는데, 세메스를 퇴직한 연구원들이 협력사 관계자들과 함께 초임계 세정 장비를 만들어 중국에 넘긴 정황이 적발된 겁니다. 이들은 그 대가로 총 800억 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 연관 기사 보기: [단독] ‘세계 최초 개발’ 반도체 장비 중국으로…4명 기소(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464012)

정부는 우리 반도체의 경쟁력을 담보하는 첨단 기술이라는 점을 인정해 지난해 해당 기술을 '국가 핵심 기술'로 지정했습니다. 국가 핵심 기술은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민경제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어 특별한 보안이 필요한 기술을 뜻합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기전자 등 12개 분야 73개 기술이 지정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기술을 유출해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 관련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이번 사건을 전한 인터넷 기사에도 댓글 수천 개가 달렸는데 태반이 그런 반응이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필수 전략 기술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작 핵심 기술력 유출에 대해선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는 주장인데요. 사실인지 따져봤습니다.

인터넷 기사 댓글 재구성


■ 천문학적 규모의 기술 유출, 3분의 1이 '국가 핵심 기술'

우선 산업기술 유출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되는지 살펴봤습니다. 핵심 산업기술 유출이 어제오늘 일은 아닌데요. 술 유출 사례 3분의 1 정도가 '국가 핵심 기술'이라는 점은 문제의 심각성을 더합니다.

더불어민주당 김경만 의원이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6~2021년 8월) 총 112건의 산업기술이 해외로 유출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중 국가 핵심기술은 35건이었습니다. 업종별로는 반도체·전기전자 분야가 42건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산업기술 유출을 기업별로 보면 중소기업에서 절반이 넘게(67건) 발생했고 대기업(36건), 대학·연구소(9건)가 뒤를 이었습니다.

국가정보원이 지난달 밝힌 내용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습니다. 국정원이 2017년부터 올해 2월까지 5년간 적발한 산업기술 해외 유출 사건은 99건이었는데, 3분의 1정도가 국가 핵심기술 유출 사건이었습니다. 역시 반도체·전기전자 분야가 34건으로 가장 많았고 절반이 넘는 59건이 중소기업에서 유출됐습니다.

국정원은 "산업기술 유출이 대한민국 주력 산업에 집중돼 있다"면서 "유출 적발로 기업들 자체 추산 결과 22조 원대 피해를 예방했다"고 밝혔습니다.

자료: 국가정보원 (단위: 건)


산업기술 유출에 따른 경제적 피해는 천문학적입니다. 특허청은 지난해 국내 영업비밀 유출에 따른 피해 규모가 연간 최대 58조 원으로 추산된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미국, 영국 등 주요 선진국들의 영업비밀 유출에 따른 피해 규모가 GDP의 1~3%를 차지한다는 점을 토대로 추산한 결과입니다.

■ 국가 핵심 기술 유출 시 3년 이상 징역…현실은?

그렇다면 이런 천문학적인 규모의 산업기술 유출이 적발되면 어떤 처벌을 받을까요?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르면 보호해야 할 산업기술을 해외에 유출할 경우 징역 15년 이하 또는 벌금 15억 원 이하의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국가 핵심 기술의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과 함께 15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합니다.


처벌의 근거는 또 있습니다. 부정경쟁방지법은 영업비밀을 해외에 유출하면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게 했습니다.

처벌 규정이 강한지 약한지는 개개인마다 판단이 다를 겁니다. 그런데 단적인 예로 앞서 언급한 '초임계 세정기술' 유출을 한 일당이 대가로 800억 원을 받은 게 맞다면 위 처벌 규정에 대한 각자의 판단은 또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떨까요? 실제로 법 조항에 명시해 놓은 만큼의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을까요? 법원행정처가 매년 발간하는 사법연감 통계로 실제 집행된 처벌의 수위를 살펴봤습니다.

지난해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산업기술보호법에 저촉돼 1심 법원에서 처리된 사건은 총 14건이었습니다. 그 중 집행유예가 10건, 벌금형 1건, 무죄 3건으로 실형을 받은 경우는 없었습니다.

범위를 최근 5년(2016~2020년)치로 넓혀봐도 1심 재판에서 실형을 받은 경우는 49건 중 3건으로 6.1%에 불과했습니다. 집행유예는 모두 24건, 벌금형이 5건이었고 무죄도 8건으로 집계됐습니다. 같은 기간 항소심과 상고심을 합쳐서 봐도 실형은 2건에 불과했습니다.


국정원은 산업기술 유출 사건이 유죄로 인정돼 받을 수 있는 실제 최대 형량은 6년으로, 법정형 최고인 15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솜방망이 처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데요. 이런 결과가 나오는 이유가 뭘까요?

■ 법정형과 따로 가는 양형기준 '불협화음'

산업기술 유출에 따른 국가적 피해가 커지면서 지난 2019년 관련법 처벌 조항이 지금 수준으로 강화됐지만 2017년 수정된 양형기준은 아직 바뀌지 않았습니다.

양형기준은 법관이 형을 정할 때 참고하는 기준입니다. 원칙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양형기준을 벗어나는 판결을 할 경우 그 이유를 기재해야 하기 때문에 합리적 이유 없이 위반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현 양형기준에 따르면 해외 유출 시 기본 1년에서 3년 6개월까지 징역형을 내릴 수 있습니다. 계획적·조직적 범행 등의 가중요소가 적용돼도 최고 6년형입니다. 국내 유출 시 형량은 더 줄어듭니다. 그나마 이것도 해당 양형기준이 처음으로 마련된 2012년 기준보다 6개월~1년 정도 형량이 늘어난 것입니다.

2017년 양형기준


2012년 양형기준


양형위원회 관계자는 양형기준이 법정형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 "법률 개정 전에 만든 양형 기준과 현실적 격차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아직 예정돼 있는 건 없지만, 앞으로 차차 보완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 "양형기준 높여야 실질적 처벌 가능"

이런 이유로 산업보안 전문가들은 실제 처벌을 강화하려면 법원의 양형기준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조용순 한세대학교 산업보안학과 교수는 한국산업보안연구학회와 공동 기획한 기고문에서 "기술보호 관련 법률의 형량이 상향조정됐다면 실제 처벌도 강화돼야 하는데 양형기준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면서 "현재 양형 규정으로는 산업기술 등의 유출사건에서 범죄 억지 효과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창무 중앙대학교 보안대학원장은 "솜방망이 처벌도 범죄를 부추기는 기회 요인으로 작용한다. 산업기술유출 사범의 경우 최대 15년 이하 징역형이라는 강력한 처벌규정이 있음에도 작량감경 규정 등으로 인해 실형 선고가 극소수에 불과하다"면서 처벌의 확실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학영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도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열린 '기술유출범죄와 양형기준 학술 세미나'에서 "형사처벌을 강화한 법 개정 취지를 달성하기 위해 양형기준도 그에 맞게 조정돼야 할 것"이라면서 "국회도 그에 맞는 법과 제도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국회에는 손해배상액과 징역형 한도를 높이고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의 신상을 공개하는 등의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이 여럿 발의된 상태입니다.

국회에 계류된 관련 법들


※ 취재지원: 최유리 팩트체크 인턴기자 ilyouch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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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현 기자 (le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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