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전기 잘못 꽂았더니 전동킥보드 폭발.. "소비자 과실로 배터리 화재시 배상 못 받아"

채민석 기자 2022. 5. 1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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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규격 충전기 사용 킥보드 폭발 사고 유족, 제조사 상대 소송서 패소
속도제한 해제·전방 라이트 교체 등 '튜닝'도 폭발 위험성 키워
전문가 "전동킥보드 전용 충전기 사용하거나 70~80%만 충전해야 안전"

2019년 5월 우즈베키스탄 국적 유학생 A(23)씨와 B(22)씨는 잠을 자던 도중 충전 중이던 전동킥보드에서 화재가 발생해 화상을 입고 사망했다. 화재의 원인은 ‘리튬이온배터리’ 폭발이었다. 유족 측은 킥보드 제조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재판부는 제조사의 손을 들어줬다. 이유는 ‘A씨가 B씨의 킥보드 충전기를 사용한 것’, 즉 ‘비규격 충전기’를 이용했기 때문에 소비자의 과실이었다는 것이다.

2019년 3월 전북 전주시의 한 건물에서 전동킥보드 충전 중 배터리 과부하로 화재가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소비자에게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화재를 일으킨 전동킥보드가 후방지시등 밝기조절 및 전방라이트를 교체하는 등 소비자가 임의로 전동킥보드의 성능을 끌어올리기 위한 작업인 일명 ‘튜닝’을 했기 때문이다.

지난 4일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전동킥보드의 리튬이온배터리가 폭발해 30대 여성 1명이 화상을 입었다. 사진은 화재 현장./부산소방본부 제공

◇ 전동킥보드 배터리 폭발사고 늘어나는데… ‘비규격 충전기’ 판매 여전

최근 전동킥보드 배터리 폭발사고에 따른 인명·재산 피해 사례가 늘고 있다. 개인용 전동킥보드 보급이 확산되면서 이용자들의 고속충전기 사용 부주의나 이용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튜닝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행동은 전동킥보드 폭발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비규격 충전기를 이용해 과충전을 할 경우 열 폭주가 발생해 리튬이온배터리가 폭발할 수 있다. 튜닝을 한 경우 배터리 폭발이 일어나면 킥보드가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상태’로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법적분쟁시 배상을 받기 힘들어진다.

전동킥보드 화재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이번 달 10일 경기도 안산의 한 가정집에서 충전 중이던 전동킥보드 배터리가 폭발해 약 1564만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지난 4일에는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전동킥보드의 리튬이온배터리가 폭발해 30대 여성 1명이 화상을 입었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7년 4건에 불과했던 전동킥보드 화재 건수는 2019년 10건, 2020년 39건, 2021년 39건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소방청 관계자는 “전동킥보드의 배터리를 킥보드에서 분리해 충전하다 화재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킥보드 화재’가 아닌 일반 화재로 분류되는 경우도 있어 실제 전동킥보드 화재 건수는 더 많다”고 말했다.

온라인상에서 ‘킥보드 고속충전기’ 등을 판매한다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킥보드 이용자들이 배터리가 빠르게 닳아 고속 충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고속충전 기능이 탑재된 충전기를 따로 구매해 사용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속도제한이 걸려있는 킥보드의 제한을 풀거나 라이트 등을 임의로 개조하는 ‘튜닝’을 하기도 한다. 전동킥보드로 출퇴근을 한다는 서울 구로구의 직장인 한모(32)씨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킥보드를 이용하다보니 빨리빨리 충전되는 ‘고속충전기’를 인터넷으로 구매해 사용하고 있다”면서 “킥보드를 구매할 때 같이 딸려 오는 충전기보다 충전 속도가 확실히 빠르다”고 말했다.

그래픽=손민균

◇ 배터리 폭발해도 소비자 과실 있으면 제조사 책임 없어… 법원이 지적한 ‘정상적 상태’는?

올해 2월 서울북부지법 제11민사부(김광섭 하석찬 권원명 판사)는 2019년 5월 전동킥보드 폭발로 유학생 2명이 사망한 사고의 유족들이 ‘업체가 결함이 있는 전동킥보드를 제조한 책임이 있다’며 12억여원을 지급하라고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가 이들의 청구를 기각한 결정적인 이유는 ‘A씨가 B씨의 킥보드 충전기를 사용했다’는 점이었다. A씨와 B씨는 각각 다른 제조사에서 만든 전동킥보드를 사용했기 때문에 A씨가 ‘비규격 충전기’를 이용한 것이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상태’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다른 전동킥보드 제조사끼리 충전기 단자가 일치하는 경우가 있어 소비자들은 ‘과충전 방지장치 설치 등 대체설계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조사의 과실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충전 단자가 들어맞는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비규격 전용기의 사용을 금지하는 경고문구가 기재된 이상 대체설계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킥보드에 결함이 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해당 킥보드는 전동킥보드가 안전확인대상 생활용품에 포함되기 시작한 ‘전기생활용품안전법 시행규칙’ 개정일인 지난 2020년 7월 27일 전에 제조·판매된 제품이다. 재판부는 해당 킥보드가 ‘안전확인대상 생활용품’의 안전기준 등을 준수해야 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개정 후 추가된 ‘충전 제어가 고장날 가능성에 대비한 적합한 보호장치가 설치돼야 한다’라는 부분이 화재가 발생한 킥보드에는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전동킥보드를 자체적으로 개조하는 ‘튜닝’을 한 경우에도 배상을 받기가 힘들다. 2019년 3월 발생한 전주시 전동킥보드 화재 사건과 관련해 지난 2021년 1월 서울중앙지법 민사201단독(신현일 판사)은 킥보드가 튜닝 과정을 거쳐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 제조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 “규격 충전기 사용하고 튜닝은 자제… 충전은 70~80%만”

전문가들은 전동킥보드 충전시 반드시 규격에 맞는 충전기를 사용하기를 권장한다. 서울에서 킥보드 정비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41)씨는 “최근 튜닝으로 인한 고장이나 비규격 충전기 사용으로 인한 배터리 과열 문의가 늘고 있다”면서 “전동킥보드 발판이나 속도조절, 라이트 밝기조절 등을 요청하는 손님들이 많다. 튜닝 전에 항상 ‘사고가 발생해도 배상을 받기 힘들다’고 조언한다. 특히 속도제한 해제는 불법이라 더욱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전동킥보드 배터리 폭발사고 방지 방법에 대해 “고속충전기 등 비규격 충전기는 아주 위험하다. 급속충전하면 배터리 수명을 단축시키기도 하지만, 폭발 가능성도 높아진다”면서 “전동킥보드 제조사에서 제공하는 검증된 규격 충전기를 사용하고, 완전 충전보다는 70~80%만 충전하는 것을 권장한다. 부득이하게 충전기를 구매해야 할 때는 충전기 자체에 과충전 방지 장치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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