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어금니
[경향신문]
꽃밭이 소란스럽길래 물을 뿌렸다. 잠잠할까 싶었으나 웬걸 물 머금고 배나 더 웅성거림. 요샌 장미의 계절이야. 밥상처럼 수북하게 차려진 장미 넝쿨. 큼직한 장미꽃은 보리와 쌀이 반반 섞인 고봉밥을 닮았다. 저마다 한 공기씩 꿰차고서 옛 시절 토방에 앉아 밥을 먹을 때 장미꽃 냄새가 밥 냄새에 섞여 밥을 먹는지 꽃을 먹는지 모를 때가 있었지. 아버지는 목사관에 꽃밭을 배나 넓히고 계절마다 꽃을 보며 즐기셨다. 덕분에 식구들은 꽃구경을 원 없이 했고, 본받아 나도 꽃밭 가꾸기를 좋아하면서 이때껏 살고 있다. 부모가 무얼 좋아하는지에 따라 자녀 대까지 영향을 미치는 걸 보면 맹자 어머니 말씀이 하나 틀린 말 아니야. 부모님은 동산에다 염소와 토끼, 닭도 길렀다. 닭은 알을 낳아주었는데, 답례로 퇴비 거름더미를 뒤져 지렁이를 잡아다가 던져주곤 했다. 지렁이를 많이 캐면 미끼 삼아 낚싯대를 만들어 강가로 나가기도 했어. 장미 향기와 통통 살 오른 붕어 비린내가 섞인 봄날 풍경도 아스라한 기억이다.
누가 권하길래 인기 드라마 하날 몰아보기. 주구장창 온 식구들 모여 밥 먹는 신. 새참 포함 다섯 끼니 이상 먹는 집 같더군. 시장에 가보면 보따리 가득 장을 보는 사람들. 옛날식 튀김 통닭을 사가는 할매도 보여. 영감이랑 새참 안주인가. 어젠 수박 사러 농협 마트에 들렀는데 바리바리 음식 장만들. 다 먹자고 사는 인생이라는데, 장만하여 요리하고 둘러앉아 먹는 일이 간단치만은 않아. 그러니 밥상의 결속도와 결의가 높아지는 법. 밥심으로 산다는데, 한솥밥 식구들 단결력으로 또 산다.
정치에 과몰입했나 급기야 어금니가 흔들리고 깍두기에도 시큰. 병원 갔덩만 얼른 빼자고 한다. 어릴 때처럼 다시 돋냐 물으니 미쳤냐는 표정. 엑스레이 화면에 뜬 내 나이를 보고 두 번 울었음. 생선 대가리까지 씹던 이가 빠지고, 같이 밥상을 나누던 식구들 다 떠난 혼밥족이 되고 나니 권투경기에서 작은 잽에도 케이오패 당할 거 같아. 어금니를 꽉 물고 살아도 간당간당한 인생아. 마우스피스라도 장만해야 할 거 아니냐며 친구가 놀렸다. 어금니의 어자 빼면 금니가 남는데, 금니는 봉투에 담아 챙겨주덩만. 그것도 금이라고 들고나왔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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