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 대혼돈의 멀미버스

이용욱 논설위원 2022. 5. 1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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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포스터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코로나19로 인한 극장가 침체에도 흥행한 마블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선 ‘멀티버스’(다중우주)라는 개념이 나온다. 서로 다른 일이 일어나는 여러 개의 우주가 존재하고 있으며, 모든 사람은 다른 우주에 분신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분신의 성격과 환경, 선택은 다르다는 전제하에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를 보면서 직업병이 도졌다. 실제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면 그곳의 정치권은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해봤다. 영화 속 다른 차원이 실제와 달랐듯 다른 차원의 정치권 모습도 현실과 다르지 않을까.

#인재를 널리 구한 윤 대통령

이용욱 논설위원

예컨대 다른 차원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신중하다. ‘요리하는 남자’인 윤 대통령은 국정이 고난도 요리와 비슷하다고 여긴다. 요리에서 그랬듯 국정에서도 손맛을 발휘하겠다고 다짐한다. 온도, 습도, 불의 세기 등의 미묘한 차이가 맛을 좌우하듯 정책도 이해관계, 추진시기, 파급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 반대 여론에 부딪히자, 공청회 및 여론조사를 통해 찬반을 먼저 묻겠다고 했다. 임기는 청와대에서 시작했다. 국정 부담감에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지고 있지만 출근시간은 엄격하게 지킨다. 지각은 없다.

인사에선 대선 때 약속처럼 널리 인재를 구했다. 점심 자장면, 저녁 폭탄주를 함께하며 도원결의를 했던 검찰 식구들이 아른거렸지만, 피했다. 한동훈 검사장을 법무부 장관에 앉히자는 참모진에게 ‘검찰공화국 논란을 부를 일 있냐’며 경을 쳤다. 40년 지기 정호영 경북대 의대 교수를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검토했지만, 딸·아들의 경북대 의대 편입을 검증 과정에서 발견하고 포기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게 덧씌워진 내로남불 프레임이 되돌아올까 걱정됐다. 측근은 가려 썼다. 이명박계 인사들이 모여들었지만, 평판 조회 후 멀리했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를 방문했지만, 의례적 인사만 건넸다. ‘면목없다. 죄송했다’ 등 ‘가오가 없는’ 말을 하는 것은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취임사에선 통합만 35차례 외쳤다. 0.73% 차의 대선 결과를 반대편을 품으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상대를 겨냥한 듯한 어퍼컷 세리머니는 사절이다.

#반성, 또 반성하는 민주당

다른 세계의 더불어민주당은 위선과 오만, 내로남불, 편가르기 등을 반성했다. 많은 의원들은 “나와 생각이, 성별이, 세대가, 출신 지역이 다르다고 서로 편을 가르고, 적으로 돌리는 이런 공동체에는 국민 모두가 주인인 민주주의, 더불어 살아가는 공화주의가 설 자리가 없다” “부모님들과 형제자매들 앞에서 참으로 부끄럽고 죄송하다”는 김부겸 전 국무총리 이임사를 SNS에 공유했다. 일부에서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를 외쳤지만 ‘정신 승리’ 비판에 꼬리를 내렸다. 강경파 의원들이 검수완박 입법 통과를 주장했지만, “개혁에도 때가 있다”는 다수 의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물러섰다.

지도부는 사퇴했다. 송영길 전 대표는 의원직 사퇴와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강경 발언, 입법 강행 등으로 ‘오만한 민주당’ 이미지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윤호중 전 원내대표는 패배 후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당을 수습하겠다고 했으나, 대다수 의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주저앉았다. 의원총회에서 눈물까지 흘렸건만, 의원들은 “온정주의가 당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며 외면했다. 6·1 지방선거 후보로 정치개혁과 기득권 타파를 내세운 신진 인사들을 대거 공천했다. 송 전 대표의 정계은퇴로 공석이 된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이재명 전 대선 후보를 내보내자고 일부 이재명계 의원들이 주장했지만, 이 전 후보는 “국회의원 한번 하고, 정치 그만하라는 거냐’며 거부했다.

#대혼돈의 멀미버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반대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이전을 강행했고, 아는 사람을 중용한 인사는 참사로 이어졌다. ‘대통령이 국정을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보수층도 걱정한다. 민주당은 대선에서 진 정당 같지 않다. ‘검수완박’ 법안을 일방 통과시켰고, 송 전 대표는 서울시장, 이 전 후보는 인천 계양을 후보로 공천했다. 유인태 전 의원은 양측을 두고 “못하기 경쟁하느냐”고 했다. 영화 제목을 비트니, 현실과 들어맞았다. ‘대혼돈의 멀미버스’. 정치권을 볼수록, 난폭 운전자의 버스에 탄 듯 멀미가 난다. 이 대환장 버스에서 탈출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용욱 논설위원 woo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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