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손주는 누구인가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 2022. 5. 1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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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얼마 전 딸아이가 임신 소식을 알려왔다. 기다렸던 일이라 기쁘지만 얼떨떨하기도 하다. 이제 할아버지가 되면 노년에 확실하게 입문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돌봄의 무게가 가중되는 것이 더 구체적인 삶의 변화로 다가올 듯하다. 손주를 키우는 일은 큰 즐거움이지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 고역이 된다. 주변에는 조부모가 ‘독박’으로 육아를 하면서 사실상 ‘조손 가정’으로 지내는 집이 적지 않고, 그 경우 양육 방식을 둘러싸고 아이 부모와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

조카가 자기 친구의 경험이라면서 들려준 이야기인데, 친정어머니에게 맡긴 아이의 언어 발달이 너무 늦었다고 한다. 웬일인가 들여다보니, 어머니는 식사와 기저귀 갈이 등 최소한의 보살핌만 해주었을 뿐 눈을 맞추며 놀아주는 상호작용은 거의 하지 않았다. 본인이 스마트폰에 빠져 아이를 방치했던 것이다. 딸은 문제를 제기하지만 어머니는 아이는 내버려두어도 저절로 큰다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사실 예전에는 그러했다. 집안에 형제자매가 많았고, 동네 아이들과 어울렸기에 자연스럽게 말을 배우고 사회성도 익혔다.

지금은 환경이 달라졌다. 거의 외둥이인 데다가 골목과 이웃이 사라져 아이는 고립된 공간에서 대개 한 명의 양육자와 지낸다. 이런 형편에서 아이를 ‘제대로’ 돌보아주려면 대단한 정성과 체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동화책 읽기나 숨바꼭질 놀이가 아무리 즐거워도 몇십 분을 계속하기는 어렵다. 아이가 더 해달라고 계속 조르면, 인내심을 발휘할지 스마트폰을 열어줄지 갈등에 빠지게 된다. 아무래도 혼자서는 버거운 일이다. 물론 조부와 조모가 양육을 분담하면 좀 수월해지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마을로 시야를 넓히면 어떨까. 만일 아이가 집 바깥에서 뛰어놀거나 또래들과 어울릴 수 있다면 데리고 나가서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어른들이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는 평상에 아이가 함께 머물면서 여러 어른과 대면할 수도 있다. 그러한 사회적 공간을 빚어내면서 ‘공동육아’를 병행한다면 돌봄의 부담이 줄어들 뿐 아니라 아이도 더욱 활달하게 자라날 수 있다.

양육의 힘겨움을 덜어내는 또 다른 길은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이다. 손주 돌봄을 노동으로만 여기지 않고 노년에 찾아온 선물로 받아들여보자. 인간의 성장이 드러내는 경이로움을 느끼면서 그 과정에 참여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아이를 마주하면서 자기 안에 숨어 있는 동심을 만나고 존재의 경쾌함으로 노년을 쇄신한다면 육아는 놀이가 될 수도 있다. 그러한 기운생동은 돌봄을 둘러싼 갈등도 완충시켜준다.

몇 달 후 손주가 태어난다고 생각하니, 여기저기에서 마주치는 꼬마들이 새삼 눈에 들어온다. 그들의 미래를 상상하면서, 오늘의 현실을 둘러본다. 100년 뒤의 지구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건너간 세월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은 그들을 축복하는 기도가 되리라. 생애의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하면서 일상과 사회의 연결고리를 점검해본다. 세대를 건너 이어지는 생명의 물줄기를 바라보면서 마음의 옷깃을 여민다. 손주의 삶은 나와 시대의 자화상을 비춰보는 거울이 될 것이다.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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