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나토 가입 선택한 핀란드 국민의 역사의식에서 배울 점

조동성 핀란드 명예영사·서울대 명예교수 2022. 5. 1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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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성 핀란드 명예영사·서울대 명예교수

지난 17일 핀란드 의회는 총 200석 가운데 188표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정부의 나토(NATO) 가입 신청 결정을 승인했다. 러시아와 1300㎞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핀란드가 1948년 이후 74년간 지켜온 중립국 지위를 포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만난 페카 멧초 주한 핀란드 대사에게 “러시아가 나토에 가입하겠다고 선언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듯이, 나토에 가입하려는 핀란드를 침공한다면 많은 핀란드 군인과 무고한 국민들이 목숨을 잃지 않겠는가”라고 우려하니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전쟁에서 10만명이 희생되는 것이 두려워 러시아 눈치를 본다면, 550만 국민이 러시아의 지배 하에 더 큰 희생을 당할 것 아닌가.”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18일 브뤼셀에서 핀란드와 스웨덴이 제출한 나토 가입 신청서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핀란드는 1917년 소비에트 혁명과 함께 제정러시아로부터 독립했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대전이 시작되자, 소련은 핀란드를 다시 합병할 목적으로 침공했다. 핀란드는 독일편에 가담해 소련과 전쟁을 벌였다가, 당시 국민 380만 명의 6% 가까운 22만1000명의 사상자를 낸 끝에 결국 전쟁에서 지고 말았다.

그러나 핀란드를 본격적으로 지배하러 온 소련은 당황했다. 핀란드 국민들이 모두 숲으로 들어가서 숨고, 도시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속수무책이 된 소련 정부는 독립을 인정하는 대가로 전쟁배상금 3억달러를 요구했다. 농업 국가 핀란드는 이 배상금을 갚기 위해 제지·기계·조선 등 제조업을 키웠고, 8년에 걸쳐 배상금을 갚고 난 후 제조업을 통해 세계 10대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섰다.

반면 폴란드는 국민이 똘똘 뭉쳐 소련을 거부한 핀란드와는 달리 정치인들이 독일 편과 소련 편으로 나뉘었고, 이를 이용해 소련은 손쉽게 괴뢰정부를 만들었다. 이후 폴란드는 소련의 위성국가로 전락했다. 핀란드와 발틱해를 사이에 둔 에스토니아는 1940년 소련의 침략을 받았다. 이때 에스토니아가 선택한 길 역시 핀란드와 달랐다. 전면적인 독립전쟁을 벌이지도 않았고, 전쟁 배상금을 내지도 않았다. 그 결과는 혹독했다. 소련은 1944~1955년 에스토니아 국민 110만 명의 11%에 달하는 정치인들과 사회 지도자 12만4000명을 ‘인민의 적’으로 규정하고 시베리아로 추방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죽음을 맞이했다. 에스토니아는 전쟁을 회피하고 군인들을 아낀 대신 민간인들을 희생시킨 것이다.

핀란드, 폴란드, 에스토니아의 역사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폴란드처럼 국민이 두 갈래로 분열되고 한쪽이 지배자의 통치 수단이 될 때 식민지가 된다는 것이다. 또 국가가 전쟁을 회피하고 군인이 목숨으로 국민을 지키지 않으면 국가가 무너지고 선량한 국민이 희생된다는 점이다. 이번에 핀란드 국민들은 러시아와의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확실하게 국가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나토에 가입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위기관리의 핵심은 사전 준비와 예방이다. 우리나라는 우크라이나, 핀란드와 지정학적으로 비슷한 위치에 있다. 우리도 안보 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준비할 일이 있다.

정치인들은 평소 여야로 나뉘어 대립하다가도 위기 시에는 국가 지도자를 중심으로 하나로 뭉쳐 외세에 맞서는 거국적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 군인들은 철저한 준비를 통해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전쟁에서 국가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교육자들은 독립운동가와 군인들의 희생으로 이룩한 평화와 번영의 가치를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MZ세대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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