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국민 눈높이와 지방시대
새 정부가 출범했다. 정부를 이끌 내각 구성을 위한 청문회를 지켜보는 국민은 피곤하고 짜증스러웠을 것이다. 입장이 바뀐 여당과 야당의 공방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국무총리 후보자를 비롯해 적지 않은 후보자가 전관예우 부모찬스 위장전입편법증여 등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역대 정부 청문회 때마다 되풀이되는 모습에 많은 국민이 무기력감에 빠지게 된다. “국민 눈높이에서 볼 때 높은 수준의 봉급을 받은 것은 송구스럽다”는 총리 후보자의 발언은 자괴감마저 들게 한다. ‘국민 눈높이’와 ‘고위직 눈높이’가 따로 있는 것인가. 그들은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그러면서 그들의 이력을 훑어본다. 역대 정부의 인사청문회 후보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이번에도 대부분의 인사가 서울을 터전으로 삼고 있다. 출신 지역과 관계없이 서울을 삶터로 하는 사실상 서울 사람들이다. 행정 권력을 가지는 고위직 공인이 사회적 경제적 이익을 위한 사적인 행위로 인해 의혹을 받고, 국민으로 하여금 괴리감을 느끼게 하는 배경에는 서울이라는 공간이 존재한다. 서울에 집중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권력과 자원을 자기화해 공적 책무와 사적인 이해가 뒤섞이는 소수의 서울 인사들이다.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 대통령 인수위원회에서 발표한 윤석열 정부의 6대 국정목표 중 하나다. “사는 곳의 차이가 기회와 생활의 격차로 이어지는 불평등을 멈추고, ‘수도권 쏠림-지방소멸’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목표”로 한다고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참 역설적이다. 이런 국정목표를 앞장서 실행해 나가야 할 총리 장관과 같은 국정 책임자들이 ‘수도권 쏠림’의 직·간접적 수혜자에 해당하는데, 과연 ‘지방소멸’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까?
공직은 유한하지만 사회경제적 자산은 무한하다는 것을 마치 교훈처럼 반복해서 보여주는 청문회가 아니던가. 물론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핵심 국정목표이므로 총리 장관이 기본적 역할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정무직 최고위 관료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 해당 업무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만이 아니라 국정 운영에 대한 미래지향적 시야가 있어야 한다. 유례없는 수도권 쏠림과 지방소멸로 인한 격차 심화, 갈등과 대립 증폭, 국민행복도 저하라는 지금, 여기, 대한민국의 위기를 직시하고 극복해나가려는 사명감이 절실히 요구된다. 지방에서 활동하고 살면서, 공직을 마치면 자기 지역으로 돌아가 봉사하며 살겠다는 총리와 장관이 많이 나와야 진정 지방시대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청문회를 거쳐 속속 부처 책임자들이 임명되는 과정에서 지방시대의 국정목표 실현에 대한 걱정을 불식하고, 역대 정부 초기에 가졌던 기대와 곧 이어지는 실망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역시 정책추진 체계가 관건이다. 나날이 확대, 심화되는 수도권 쏠림이라는 집권적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과거의 한계에서 과감히 탈피하기 위해서는 지방시대를 실현할 강력한 추진주체, 공식기구가 필수적이다. 대통령 소속의 자문위원회 형태로 20년을 운영해온 자체가 반면교사가 아닌가. 대통령과 수시로 소통하고 국정목표를 관리하고 조율해나가는 조직이 대통령실에 설치돼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단 이번 대통령 비서실 조직에서 그게 보이지 않는다. ‘분권균형수석실’같은 조직이 필요하다. 수석실 축소의 명분에 걸리는 점이 있다면 대통령실에 가칭 ‘지방분권균형발전위원회’를 설치, 위원장과 일부 상임위원 상근의 민·관위원회를 운영하는 방안을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 역대 처음으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균형발전특위를 설치, 운영한 연장선에서 상설적인 공식 조직으로 계승,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당연하다.
아울러 곧 있을 정부 부처 개편 과정에 부총리급의 가칭 ‘분권균형발전부’(또는 국가균형분권부 등)를 설치해야 한다. 부총리급이 어려우면 우선 장관급으로라도 출발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실과 정부 부처에 명실상부 지방시대로 비상할 양 날개를 달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지방시대의 실현에 걸맞은 이력과 국정철학을 지닌 인사를 배치, 제대로 날게 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더 이상 ‘국민 눈높이’와 ‘고위직 눈높이’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 청문회, 진정한 ‘지방시대’를 보고 싶다.
박재율 지방분권전국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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