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29] 우리나라 첫 영화해설 음반 '저 언덕을 넘어서'
무성영화 시절의 변사는 스타였다. 변사는 화면에 맞춰 혼자서 여러 역을 연기하여 관객을 웃기고 울렸다. 당대 기록에서도 “변사의 호(好), 불호(不好)는 곧 그 영화관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라고 하였으니 한창때 변사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변사가 근대의 산물이나, 그렇다고 이전에 그와 유사한 직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 후기 거리에서 소설을 읽어주며 청중을 들었다 놨다 했던 ‘전기수(傳奇叟)’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초기 변사 중에서 김덕경은 으뜸이었다. 그 이전에도 변사라 할 만한 사람들은 몇 있었으나 변사가 본격적으로 언급된 것은 김덕경부터라 할 수 있다. ‘매일신보’ 1914년 6월 9일 자에서는 ‘예단일백인(藝壇一百人)’의 98번째 인물로 그를 소개하며, “연약한 아녀자의 음성도 짓고 웅장한 대장부의 호통도 능한” 그를 “조선 변사계에 첫째 손가락”으로 꼽았다. 그때 그의 나이 24세였다.
광복 이전에 발매된 유성기 음반에는 노래뿐만 아니라 이야기도 많이 실렸다. 영화 해설 음반은 대표적인 이야기 음반이었다. 영화 해설 음반 중 현재까지 목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첫째 것은 1926년에 발매된 ‘저 언덕을 넘어서’다. 이 음반은 김덕경의 목소리가 실려 있는 유일한 음반이나 이제까지 실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이 지면 덕분에 음반의 실물을 보게 되었다. 윤심덕의 음반과 더불어 이 음반을 소장하고 계신 소장자 덕분에 김덕경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저 언덕을 넘어서’는 1920년에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Over the Hill to the Poorhouse’의 후반부 내용을 일부 담고 있다. 형이 어머니를 양로원으로 보낸 것을 알고 격분한 동생의 대사를 변사가 해설을 곁들어 연기했다. 극적인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단성사’ 극장의 관현악단이 음악을 담당했다. 앞·뒷면을 통틀어 대여섯 곡 정도가 배경음악으로 흐르는데, 그중 슈만의 ‘트로이메라이(Träumerei)’와 오펜바흐의 ‘천국과 지옥’ 중 서곡에 나오는 ‘캉캉’이 확연히 들렸다.
음반 한 장, 음악 한 곡의 역사와 정보를 확인하는 데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수십 년이 걸린다. 수많은 퍼즐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추며 그림을 완성해가는 것은 고되고 막막하면서도 재밌고 의미 있는 일이다. 이 세상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내가 연구하고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도움 덕분이다. 그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혼자 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말을 믿는다. 우리의 동행이 햇살이 되고 바람이 되고 물이 되어 저 언덕 너머에 꽃밭이 펼쳐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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