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기업 세일즈맨 대통령... “실리콘밸리 가서 투자유치를”[특파원 리포트]

김성민 실리콘밸리 특파원 2022. 5. 1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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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인도네시아 대통령궁은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나란히 앉아 박장대소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미·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하러 미국을 방문한 조코위 대통령이 텍사스에 있는 우주 탐사 기업 스페이스X 발사장을 찾아 머스크를 만난 것이다. 조코위 대통령은 인도네시아의 풍부한 니켈과 코발트 매장량을 언급하며 테슬라의 인도네시아 투자를 요청했고 머스크는 “11월 인도네시아를 방문하겠다”고 화답했다. 니켈과 코발트는 전기차 배터리를 만드는 데 쓰이는 핵심 소재다.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뉴스1

한국에선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방한 중 열릴 기업인 미팅 준비가 한창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삼성·SK·현대차·LG 등 한국의 주요 대기업 총수들을 만나 미국 내 투자 확대와 협력을 요구할 예정이다. 투자에 따른 지원책을 제시하고, 미국 주도의 반도체·배터리·의약품 공급망 재편에 협조해달라고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국가의 수장인 대통령이 기업인을 만난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기업이 투자하면 해당 국가 내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겠다는 상징이다. 자칫 잘못하면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는 협박으로 들릴 때도 있다. 그만큼 가장 센 강도의 유치전이다.

나라의 산업과 경제는 이제 국가 주도로만 발전할 순 없다. 자유로운 시장경제와 투자에 따른 산업 발전이 규모와 속도 측면에서 훨씬 크고 빠르다. 각 나라 정상들이 자국이 가진 자원과 기술, 시장과 노동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뛰는 이유다.

2000년대 초반까진 한국 대통령들이 애플·구글·메타(페이스북)·인텔·엔비디아 등 전 세계 유명 테크 기업들이 즐비한 실리콘밸리를 찾았다.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HP를 방문했고,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텔을 방문해 아시아 지역 생산라인을 한국에 건설해달라고 요청했다. “장애가 되는 정부 규제를 과감히 폐지하겠다”고 했다. 비록 받아들이진 않았지만 공격적인 투자 유치 노력이었다. 이후 실리콘밸리를 찾은 한국 대통령은 없다. 정치인이나 공무원이 실리콘밸리를 오가지만 대부분 한인 기업 몇 군데를 돌아보거나 구글·애플·테슬라 앞에서 사진을 찍고 가는 수준에 그친다.

실리콘밸리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한국 내 실리콘밸리를 만들겠다’는 대통령이 실리콘밸리에 오지도 않는 건 직무유기”라고 말한다. 한국 대통령도 실리콘밸리에 와서 첨단 테크 기업 대표를 만나 “한국에 투자해라. 우리가 지원하겠다”고 해야 한다. 그래야 현재 전 세계를 대상으로 개발되고 적용되는 기술이 무엇인지, 이 기술이 그리는 미래가 무엇이고 이 흐름 속에 한국이 차지할 부분은 없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자신 있게 나라를 세일즈하고 성장시키는 대통령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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