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덕의 귀농연습] 텃밭과 식물재배기 사이

이재덕 산업부 기자 2022. 5. 1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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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3월 지방자치단체에서 1년 동안 빌려주는 도시 텃밭을 신청했지만 탈락했다. 대기번호 473번. 시 외곽 텃밭 단지 2곳에서 3평(9.9㎡)짜리 텃밭 630구좌를 분양하는 데 무려 4000여명이 몰렸다. 지난해 용케 텃밭을 분양받아 아이와 함께 토마토, 상추, 당근, 배추 따위를 심었는데, 그런 행복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게 됐다. 텃밭을 하겠다는 사람은 수천명이나 되는데, 정작 서울 인근의 이 도시에서는 텃밭이 사라지고 있다.

이재덕 산업부 기자

집 근처 야산에 있던 지자체 텃밭 단지는 아파트 단지 조성 계획으로 지난해 폐쇄됐고 지금은 그 자리에 ‘대토보상 상담’ 현수막만 어지럽게 걸려 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지자체 텃밭 단지에도 최근 아파트 단지 개발 승인이 떨어졌다. 시 외곽에 민간이 운영하는 텃밭 농장과 친환경 벼농사를 체험할 수 있는 논들이 일부 남아 있지만 곧 3기 신도시가 들어선다. 그곳에서 텃밭을 일구고 벼농사에 참여했던 도시농부들이 들판과 논습지의 생태적 중요성을 들며 신도시 개발에 반대했지만 수도권 아파트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정부 정책과 여론에 밀렸다.

도시 텃밭 탈락 후 아파트 베란다에 상추와 토마토, 대파, 루콜라 그리고 국화과 꽃인 마거리트를 심었다. 서향이라 그런지 상추와 마거리트가 시들시들하다. 누군가 아파트 화단에 상추 모종을 심었는데 관리사무소에서 경작을 금한다면서 모두 뽑아버렸다. 그런데도 그 자리에 또 상추 싹이 났다. 흙 만지고 채소를 키우는 경작 욕구는 누를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 아닌가 싶었다.

기업들은 돈 되는 걸 귀신같이 안다. 지난해 대파값이 뛰면서 사람들이 집에서 파를 길러 먹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가전업체들이 식물재배기까지 만들어 판다. 100만원이 훌쩍 넘는 대기업 제품은 생김새가 와인냉장고와 비슷한데, 광합성에 필요한 파장의 빛을 내보내는 식물생장용 LED 조명이 장착됐고 씨앗과 영양제가 든 ‘씨앗키트’를 구매해 청경채, 케일, 로메인 상추 따위를 재배할 수 있도록 했다.

꿀벌 사라지고 식물재배기만 늘어

시들시들한 베란다 상추 옆으로 하얗게 올라온 버섯들을 뽑아 버리며 ‘식물재배기는 버섯도 안 피고 잎도 풍성하게 달리겠지’ 생각하면서도 그리 반갑지가 않았다. 식물재배기는 나무 한 그루 없이 음침한 고층 빌딩이 가득한 영화 속 디스토피아 세계에 더 잘 어울린다. 베란다 화분에 핀 토마토 꽃을 붓으로 문질러 인공수정을 하면서 ‘텃밭에서 보던 꿀벌들이 앞으로 어디서 꿀을 따게 될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주거 본능과 경작 본능이 욕망으로 바뀐 도시에서는 꿀벌은 사라지고 식물재배기만 늘어난다.

우리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미국에서는 매년 2월이면 양봉업자들이 트럭에 벌통을 싣고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그들은 넓디넓은 아몬드 농장의 한쪽에 꿀벌을 풀어 아몬드꽃 수정 작업을 벌인다. 아몬드 외에 다른 나무는 없기에, 아몬드 수정이 끝나면 이 지역은 벌들이 살 수 없는 ‘황무지’로 변한다. 대규모 단작과 기후위기, 농약 등으로 꿀벌이 사라지는 군집붕괴현상(CCD)이 2006년 보고되면서 미국에서는 벌 대신 드론을 이용해 인공수분을 하는 기술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꽃가루를 가득 실은 드론이 아몬드 나무 위를 날아다니며 꽃가루를 뿌린다. 최대한 많은 아몬드를 생산하고 싶어 하는 농장주에게 기업들은 ‘이제 벌 대신 드론을 쓰라’고 권한다.

우리 농촌에서도 사과와 배 과수원에 드론을 이용한 인공수정 기술이 도입되고 있다. 수정용 붓을 들고 꽃마다 일일이 인공수정하는 수고도 덜고, 수정 시기도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첨단 기술이 자연과 생태를 복원하는 방향이 아닌, 이를 대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첨단기술의 자연 대체에 우려감

도시 텃밭에서는 신선하고 안전한 채소를 키워 수확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도시의 열섬 현상을 막고 토종 종자 보존과 생물다양성에도 기여할 수 있다. 도시민들이 생태적인 삶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3기 신도시 예정지에서 2년간 농사지은 경험을 했다는 한 도시 농부가 공청회에 나와 말했다. “이 도시는 짙은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은 도시같이 보입니다. 우리 가족은 자연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고 그것을 소중하게 다뤄야 하는 것을 몸으로 배웠습니다. 땅과 흙을 가까이 하니 몸도 회복되고 건강해졌습니다. 같이 농사를 지었던 저희 열 살 아들은 그냥 놔두면 안 되느냐고 말합니다.” 그의 말마따나 ‘텃밭과 식물재배기’ 혹은 ‘꿀벌과 드론’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게 아닐까.

이재덕 산업부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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