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강원 노포 탐방] 2. 춘천 종점낚시

정우진 입력 2022. 5. 19. 00:10 수정 2022. 6. 7.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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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영광 얽매이지 않고 험로 지나 '낚시의 성지' 되기까지
대나무로 낚싯대 만들던 시절 춘천 옛 터미널 앞 가게 개업
현 종점낚시까지 47년 명맥
매일낚시·유통시장 확대
1980년대 전국적 규모 성장
겨울철 빙어낚시 대중화 선봉
'춘천원자탄' 떡밥 시장 석권
사업 불황 위기 때마다 새 아이템 찾아 반등 성공
구더기 등 자체상품 개발 몰두
과거 명성 지금도 '현재진행형'

하나의 일을 40년 넘게 지속한다는 것은 꾸준함 뿐만 아닌 지속적인 발전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처음 시작했다고 해도 가장 오래된 가게가 되는 것은 어렵고 후발주자들에게 밀리지 않는 것은 더욱 힘들다. 또 50년 가까이 한 자리를 지킨 하나의 가게가 강원도의 역사를 품고 미래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오늘도 강원도 곳곳에 위치하고 있는 노포(老鋪)들은 여전히 자신만의 역사를 가지고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강원도민일보는 창간 30주년을 맞아 강원지역 노포(老鋪)를 조명해 강원도민들의 삶의 애환과 지역의 가치를 다시 되새겨보고자 한다. 노포들은 한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닌 지금도 자신만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새로운 제품을 제작해 전국에 강원도를 알리고 있다. 그저 오래된 가게가 아닌 장인이라 불릴 수 있는 그들을 만나본다.

▲ 최중환 종점낚시 대표

춘천지역 민물낚시의 성지가 있다. 47년 역사 속 가게 안은 수많은 낚싯대와 루어부터 떡밥까지 낚시를 위한 모든 제품이 있다. 전국에서 대를 잇지 않은 낚시점 중 한 자리를 가장 오래 지켜온 최중환(74) 종점낚시 대표는 편한 길을 걸어오지 않았다. 다른 회사의 제품들로 가득 찬 다른 낚시점과 달리 매장 한 자리에는 ‘종점’이라 적힌 낚싯대가 자리를 빛내고 있었다. 최 대표가 50년 가까이 되는 낚시 노하우를 바탕으로 가볍지만 강압을 제압할 수 있는 성질로 질이 우수하며, 손님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고자 5년 전만해도 중국까지 샘플을 직접 들고 찾아가 제품을 만들었다. 공간적인 낚시점이 아닌 자신의 혼이 담긴 제품들을 소개하며 47년간 춘천을 지켰다.

▲ 종점낚시에서 직접 개발한 낚싯대

종점낚시의 역사는 1975년부터 시작되며 한국 낚시의 발전 역사와 함께한다. 춘천 구터미널 앞에서 국제낚시란 이름으로 시작된 종점낚시는 현재의 낚싯대가 아닌 대나무로 된 낚싯대가 전부였던 시기부터 명맥이 이어진다. 1980년 소양호 가두리 양식장을 비롯해 양식장 3~4개가 생겨나 매일낚시의 유행기에 접어들었다. 매일낚시는 오전과 오후반으로 나눠 보트를 이용해 낚시꾼들을 낚시터로 실어 날라 낚시를 즐기게 해주는 것이다. 최 대표는 1981년 동부의 배를 빌려 춘천 부귀리, 산막골 등을 중점으로 진행했다. 처음 1년차에는 현상유지만 됐으나 2년차 전국낚시연합회에 가입한 상인들이 강원도보다 20~30% 저렴하게 낚싯대를 받고 있는 점을 파악, 새로운 유통시장을 통해 다른 가게와 달리 저렴한 가격에 동일한 낚싯대를 제공했다. 1984년 일간스포츠와 서울스포츠 돌출광고에 ‘향어 터졌다’란 작은 문구 하나가 전국 낚시꾼들에게 알려져 하루에만 오전 250명, 오후 250명이 찾아올 만큼 전국적인 낚시점으로 사업규모가 커졌다.

▲ 종점낚시에서 개발한 덕이어분과 떡밥

종점낚시의 황금기는 1983년에 찾아온다. 당시 춘천은 겨울에는 낚시를 하지 않아 낚시점들은 과일, 꽃가게 등을 겸업하고 있었으나 서울은 관광철이 아니라 값이 쌌던 관광버스로 회원을 모집하고 얼음낚시로 많은 수입을 얻고 있었다. 최 대표는 직원과 함께 도끼를 들고 얼어붙은 강가로 향했다. 당시 1m 이상 두께의 얼음을 뚫을 장비가 없어 하루에 2개밖에 구멍을 낼 수 없었으나 겨울 낚시시장 개척을 위해 의암호서부터 춘천호까지 2년 동안 구멍을 뚫고 다녔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송암리에서 붕어낚시를 시도하던 중 작은 피라미 한 마리가 올라왔고 여기서 착안해 피라미 바늘과 구더기를 사용해 빙어낚시 개발을 시작했다. 얼음낚시에 대한 준비를 마친 후 1985년 서울 기자들을 불러 빙어낚시를 전국에 알렸다. 당시 금요일에 기사가 나간 후 토요일 아침부터 100m 정도 손님들이 줄지어 서있었다고 한다. 사실 빙어를 최초로 키운 곳은 제천 의림지였으나 전국적으로 퍼져 춘천은 소양호 어촌계를 중심으로 상류에만 서식했다. 춘천 신남의 경우 1980년대 빙어를 훈제해 팔았기도 했으며 번식이 잘 돼 의암호, 춘천호, 파라호 등 전역으로 생겨났다. 빙어 낚시를 대중화 시킨 것은 종점낚시라 봐도 무방하다. 1985년 쯤 전국 최초로 춘천 칠전동에서 빙어낚시 대회를 열었고, 연이어 원평리에서도 진행했다. 아쉽게도 개인이 직접 하다 보니 자금력이 부족했고 당시 시에서도 많은 지원이 없어 중단됐으나 빙어낚시가 현재 인기를 끈 시발점으로 작용했다는 기록은 남았다. 당시 5~6곳에 불과했던 낚시점은 40곳까지 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1986년 국제낚시에서 종점낚시로 사업자 등록을 하며 이름을 바꿨고 30년 넘게 구터미널을 지키다 소양5교에서 10년, 현재 자리인 신동에서는 8년이 넘게 영업을 지속하고 있다.

▲ 종점낚시 전경

현재 낚시의 성지란 영광은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1976년 춘천원자탄이란 떡밥을 만들어 1년 만에 관련 시장을 석권해 3년 동안 시장점유율을 높였다. 하지만 고무인으로 상표를 찍고 사료봉투 같은 곳에 파는 방식이라 가짜들이 생겨났다. 그 당시 특허나 브랜드에 관한 인식이 부족했던 터라 아쉬움으로 남았다. 또 매일낚시에도 위기가 있었다. 가두리가 점차 사라지자 춘천을 찾는 인원이 적어져 사업에 불황기가 찾아왔다. 이 때 종점낚시는 멈춰서는 것이 아닌 빙어낚시로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 반등에 성공했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또 종점이란 브랜드의 낚싯대 개발과 덕이어분, 덕이떡밥 등 자체적인 상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으며 빙어낚시용 구더기 1인자로 자리매김해 현재도 낚시의 성지로 전국 낚시꾼들이 방문하고 있다.

▲ 최중환 종점낚시 대표가 자신이 개발한 구더기를 담고 있다.

현재 종점낚시는 낚싯대 뿐만 아니라 전국 최초로 빙어낚시 겨울철 구더기 저장 방식을 개발해 현재까지도 최고의 겨울 구더기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3년간의 연구를 통해 영상 3~4도 온도를 유지하는 방법을 터득했고 겨울철에도 신선한 구더기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이를 위해 구더기를 연구하는 전문가를 모셔 보름동안 생산 방식을 배워 터득할 수 있었으나 겨울철까지 유지하는 것은 도전하는 경우가 없어 자체적으로 개발에 몰두했다. 첫 해에는 50깡 정도를 저장했음에도 10깡 밖에 남지 않았으나 연구를 멈추지 않았고 끝내 성공해 전국 시장에서 인정을 받았다. 종점낚시는 과거의 영광을 가진 노포가 아닌 미래를 위해 준비하며 나아가고 있다.

정우진 jungwooji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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