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노벨문학상 작가 구르나 "문학은 우릴 인간답게 만들어"
"전쟁·폭력 합리화 안돼..위협받는 삶 환대할 의무 있어"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집에 들어와 차를 만들려는 중이었죠. 처음엔 장난전화인 줄 알았어요. 믿기 어려웠죠."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탄자니아 잔지바르 출신 영국 망명 작가 압둘라자크 구르나(74)는 스웨덴 한림원으로부터 수상 소식을 듣던 당시를 이렇게 떠올렸다.
그는 대표작과 최신작 등 3권이 아시아에서는 처음 한국에서 동시에 출간되는 것을 기념해 18일 화상회의 플랫폼 줌으로 한국 취재진과 만났다.
아프리카 출신 작가로는 다섯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구르나 작가는 "노벨상의 커다란 의미 중 하나가 글로벌 이벤트란 것"이라며 "이를 통해 세계 수많은 사람이 저란 작가에게 흥미를 갖고 알고 싶어한다. 오늘 이 자리처럼 많은 사람과 교류하고, 소통하는 방식이 변화했다는 것이 노벨문학상이 준 영광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을 당시 국내에 번역 출간된 작품은 없었다. 동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낯선 문화권의 이산 문학은 한국인에게 친숙하지 않았다. 아프리카 출신 무슬림에 망명자인 그는 주변인, 경계인, 난민으로서 억압과 폭력의 시대, 상흔을 직시하며 우리 삶의 문제로 치환하는 작품 세계를 펼쳤다.
그는 "동아프리카와 유럽 식민주의의 만남에 관해 얘기하고 싶었다"며 "단순히 동아프리카에 국한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문화적, 종교적으로 다른 지역과 교류하면서 수백 년간 쌓은 역사의 다층적인 측면을 살펴보고자 했다. 동시대적 중요성도 얘기하고 싶었다"고 짚었다.
출판사 문학동네가 펴낸 세 편은 작가의 이름을 알린 대표작 '낙원'(1994), 노벨문학상 선정과 맞닿았다고 평가되는 '바닷가에서'(2001), 최신작 '그후의 삶'(2020)이다.
'낙원'과 '그후의 삶'은 약 30년의 간극이 있지만 깊이 연결돼 있다. '낙원'은 아버지가 진 빚을 대신해 볼모로 집을 떠나게 된 12세 소년 유수프의 성장기로, 제1차 세계대전 직전 벼랑에 내몰린 아프리카를 그렸다. '그후의 삶'은 전쟁과 식민주의 이후를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의 삶을 다뤘다.
구르나 작가는 "'낙원'은 1914∼1918년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전쟁,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자 했다"며 "하지만 역사적 사건에 대해 지식이 없다는 걸 깨닫고 주인공이 식민주의에 휩쓸리고 걸어가는 여정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30년 이후 쓴 '그후의 삶'에서 보다 깊이 다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닷가에서'는 잔지바르를 떠나 영국행 망명길에 오른 살레 오마르와 30여 년 앞서 영국으로 건너온 시인 겸 교수 라티프가 운명처럼 만나는 이야기다. 떠도는 두 이방인을 통해 식민주의를 비판한다.
그의 작품들을 접하면 우리 사회도 들여다보게 된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한국 역사와 4년 전 제주도로 입국한 예멘 난민을 대하던 우리 사회 정서를 반추하게 된다.
구르나 작가는 "영국도 인도, 시리아 등 그 대상은 바뀌지만 주기적으로 외국인 또는 난민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인 공황에 빠진다"며 "난민에 대한 배타성은 전반적으로 모든 사회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삶이 전쟁, 폭력, 궁핍에 의해 위협받을 때 인류로서 환대할 의무가 있다. 위험에 빠진 사람을 환영하고 환대하도록 가르침을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전쟁뿐 아니라 빈곤, 학대 등의 비극이 여전히 반복되는 데 대해서도 "인간은 괴물 같은 면을 갖고 있어 작은 도발에도 참지 못하고 폭력을 행사한다. 전쟁과 폭력은 합리화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에서 "궁극적으로 글쓰기의 관심사가 인간의 삶"이라고 밝힌 그는 "문학이 우리를 보다 인간답게 만든다"며 그 역할도 강조했다.
그는 "인류는 많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고, 그런 것들에 맞서 싸우고 해결해나가며 지금에 이르렀다"며 "무엇보다 문학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동시에 문학을 통해 인간의 관계, 타인의 삶과 행동 방식을 깊게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구르나 작가는 켄트대 영문학 및 탈식민주의문학 교수로 재직하며 작품 활동을 하다가 4년 전 은퇴했다. 1969년 영어로 습작을 한 때부터 장편과 단편 10편을 펴내는 데 50년을 보냈다. 잔지바르에서 모스크로 걸어가던 아버지의 모습,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당한 비행기, 망명 신청을 하던 승객들 등 다양한 경로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그는 "작가로서 정체기는 없었다"며 "학자로 활동하며 소설가로서 작품을 구상할 시간은 충분했고, 주제는 정해놓기보다 주변에서 눈길을 끄는 데서 얻었다. 5∼6주간 한 번에 이어서 쓰고 다른 업무를 하다가 글쓰기로 돌아오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진실한 글을 쓸 때 삶의 조건을 살펴보게 된다"며 "잔혹함, 불공정뿐 아니라 이면에 있는 따뜻한 사랑과 친절함에 관해서도 써야 한다. 인간의 삶, 인간성의 양면, 두 가지 다른 모습을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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