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총선, '경제 무능' 심판..집권 헤즈볼라 동맹 과반 잃어
[경향신문]
4년 만에 128석 중 61석 그쳐
친사우디 정파·무소속 선전
종파별 권력 분점…정쟁 예고
정부 구성 난항 땐 경제 타격
레바논 총선에서 집권 세력이자 이란의 지원을 받는 이슬람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동맹 정당들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고 무소속 의원들이 대거 당선됐다고 17일(현지시간) AP통신 등이 전했다. 사상 최악 경제난과 ‘종파 간 나눠 먹기’ 정치에 대한 심판으로 해석된다. 모든 정파가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정부 구성이 늦어지고 경제난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레바논 정부가 이날 발표한 총선 결과에 따르면 헤즈볼라 동맹 정당들은 전체 128석 중 61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받으며 헤즈볼라와 맞서 온 극우성향의 기독교 정당 레바논의힘은 21석을 얻으며 원내 최대 정당으로 올라섰다.
이번 총선 결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등 최악의 경제난을 초래한 현 집권 세력에 대한 심판으로 해석된다. 레바논 화폐인 파운드화 가치는 2년여 만에 90% 이상 폭락했고, 연료와 의약품 등의 필수품목 수입도 어려워졌다. 주민들은 만성적인 전기 및 연료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생필품도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IMF는 레바논이 코로나19 대유행에 이어 2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2020년 베이루트 항구 대폭발 사고까지 겪으면서 빈곤 확대, 대규모 실업, 주민 이탈 등 전례 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지적했다.
레바논의 독특한 정치제도에 대한 개혁 요구가 반영된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레바논은 1975년부터 1990년까지 이어진 내전 이후 평화 유지 방안으로 종파별로 권력을 분점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대통령, 총리, 국회의장은 각각 기독교 마론파, 이슬람 수니파, 이슬람 시아파만 맡을 수 있다. 특히 이란이 지원하는 헤즈볼라는 레바논 정치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하지만 베이루트 항구 대폭발 사고 이후 능력과 상관없는 권력 분점이 정치권 부패와 무능을 초래하며 이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기득권 정치 세력에 대한 반감은 무소속 의원 대거 당선으로 나타났다. 총 14명의 무소속 의원이 당선됐는데 주로 베이루트 항구 대폭발 사고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던 인사들이다.
하지만 어느 정파도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정부 구성은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 마하 야히아 카네기 중동센터 소장은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하면서 “결과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새로운 정치 지형에서 누가 국회의장을 맡느냐를 두고 한바탕 싸움이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요 친헤즈볼라 정치인이자 1992년부터 국회의장을 맡아 온 나비 베리가 물러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새 의회는 차기 총리는 물론 오는 10월 미셸 아운 대통령 퇴임 이후 임무를 수행할 새 대통령도 선출해야 한다.
각 정파 간 대립이 격화될수록 경제난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IMF는 지난달 레바논에 30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제공하기로 실무 합의했다. 구제금융 자금은 은행 부문 정비, 채무 조정, 정부 지출 합리화 등 레바논 정부의 개혁 성과에 따라 지급되는데 그에 앞서 관련 법안 통과조차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이전부터 헤즈볼라가 통제하는 레바논에 자금을 대는 것을 주저해 온 프랑스, 사우디를 비롯해 국제사회의 원조 약속이 정부 구성 지연으로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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