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밉보여 거래 끊길라..원가 뛰어도 납품가 반영 못해

이후섭 2022. 5. 18. 22: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원자잿값 급등, 위기의 중기]②
자고 일어나면 가격 올라..대출 받아 원자재 확보
중기 80% 수익성 악화..적자만 쌓여
수출 중기도 울상..물류비 상승 부담 떠안아
납품가격 조정협의제 '유명무실'..연동제 법제화 필요
뿌리기업 공장 내부 모습 (출처=이데일리 DB)
[이데일리 이후섭 기자] “알루미늄, 폴리염화비닐(PVC) 등 원자잿값이 너무 올라 모터 등 부품가격도 많이 뛰었습니다. 결국 거래처에 3년여 만에 납품단가를 올려달라고 했는데 쉽지 않을 듯합니다.”(산업용 펌프업체 A사 대표)

지난해부터 이어진 원자재 가격 고공 행진에 국내 산업계 전반이 흔들리고 있다. 특히 영세한 중소기업들은 급격한 가격 변동에 대응하기 쉽지 않아 수익성에 큰 타격을 입고 존폐 위기에 내몰렸다. 이들 업체는 원자재 가격 인상분만큼 추가 대금을 받는 것이 유일한 살 길이라며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을 요구한다.

자고 일어나면 또…대출 받아 원자재 확보 나서

18일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중소기업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원자재 가격은 2020년 대비 평균 51.2% 상승했다. 알루미늄 원소재 가격은 2020년 4월 ㎏당 평균가 1937원에서 올 4월 기준 4279원으로 2배 넘게 급등했다. 같은 기간 니켈은 5배 가까이 올랐다.

제품이나 공사를 수주할 당시와 비교해 몇개월새 급격히 오른 원자재 가격을 중소기업은 감당하기 힘든 실정이다. 가격 결정력이 약할뿐더러 금리 인상 등으로 자금 확보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경기 용인에 본사를 둔 산업용 펌프업체 A사 대표는 “지난해 글로벌 공급망 문제가 불거지면서 부품을 1년치 미리 구매해놨는데, 상황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재고가 벌써 바닥났다”며 “결국 30% 이상 오른 가격에 부품을 구입하지만, 거래처에 판매하는 단가는 10%도 올리지 못해 팔수록 손해”라고 하소연했다.

화스너(볼트·너트) 제조업체 B사 대표는 “사업을 계속하려면 원자재 확보가 관건이라 사방팔방으로 구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며 “구입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최근 은행에서 50억원을 대출받았는데, 금리가 1%포인트 이상 올라 대출이자 부담도 커졌다”고 말했다.

10곳 중 8곳 수익성에 ‘부정적’…수출기업도 울상

결국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원자재 가격 상승분만큼을 납품대금에 반영해 올려받아야 그나마 숨통이 트일 수 있다. 중소제조업의 42.1%가 대기업에 납품하고, 대기업에 대한 중소기업 매출의존도가 83%에 달하는 만큼 대기업에 중소기업의 생사여탈권이 달렸다.

하지만 중기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응답률이 절반(49.2%)에 달했고, 전부 반영한 곳은 단 4.6%에 그쳤다. 중소기업 10곳 중 8곳이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해 수익성이 악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납품단가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면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원자재 가격 상승이 중소기업의 영업이익에 미치는 영향 정도는 ‘10~30% 하락’을 예상한 기업이 33.2%로 가장 많았다.

경기도 화성에서 알루미늄 섀시를 제작하는 C사 대표는 “올해만 이미 적자가 5억원 이상 쌓여 은행에서 대출도 받고 집도 매물로 내놓은 상황”이라며 “현재 20명 내외의 직원들 인건비도 어떻게 마련할지 걱정이 크다”며 한숨을 쉬었다.

해외로 수출하는 기업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납품대금을 제대로 못 받거나 물류비 상승으로 인해 수익이 나질 않고 있다. 천안 주물업체 D사 대표는 “유럽으로 수출하는 물량 중 일부에 대해 올해부터 제품가격을 계속 올려달라고 했는데, 받아주지 않아 우리가 당분간 물량을 발주하지 말라고까지 했다”고 말했다.

납품가격 조정협의제 ‘유명무실’…연동제 법제화 필요

중소기업계는 원자재 수급난 해소에 정부가 적극 나서주길 바라고 있다. 특히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을 통해 ‘제값받기’ 환경만 조성해줘도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4월 상생협력법 개정을 통해 납품가격 조정협의제가 시행됐지만 실효성에 한계가 있는 만큼 연동제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수급사업자의 납품단가 조정요청에 원사업자의 48.8%는 협의를 개시하지 않거나 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기중앙회 및 협동조합에 협상을 대신해 달라는 신청은 한 건도 없었다.

양찬회 중기중앙회 혁신성장본부장은 “조정협의제는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조정 내지 협의를 한다는 한계가 있지만, 연동제는 사건 발생 이전에 단가 조정에 대한 부분을 표준계약서에 포함시키는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등한 위치에서 협상하기는 불가능하기에 연동제로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물류비 상승과 관련해서는 중소기업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정부 주도 물류 플랫폼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수출기업 관계자는 “대기업은 자체 해결이 가능한 인프라가 있지만, 중소기업은 대응하기에 너무 힘들다”며 “수출 비중이 높은 북미나 유럽에 정부와 업계가 함께 공동으로 물류단지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이후섭 (dlgntjq@edaily.co.kr)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