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인권 기획 9편] 발걸음도 떼기 전에..아기들이 죽어간다

서현아 기자 2022. 5. 18. 21:5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EBS 뉴스]

어린이 인권의 현주소를 살펴보는 연속보도입니다. 


영아 사망률, 그러니까 태어나서 1년 안에 사망하는 아기들의 비율은 국민 보건 상태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입니다. 


우리나라는 단연 선진국 수준인데요. 


문제는 사망원인입니다. 


어쩔 수 없는 질병이 아니라, 가해나 타살로 숨지는 비율이 다른 연령대보다 훨씬 높습니다. 


결코, 죽지 말았어야 할 이 귀한 아이들이, 최근 한 주 사이에도 연이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서현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가로, 세로, 높이가 어른 손 한 뼘 정도 되는 이 상자엔 태어나자마자 숨진 아기가 담겨 있습니다. 


무명남 396호. 


끝내 이름조차 가져보지 못한 채, 숫자로만 세상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여기가 이 정도 높이면, 아기 엄마가 이렇게 해서 집어넣기도 힘들었을 거예요"


아기는 지난 12월, 영하의 날씨 속에 의류 수거함에 버려졌습니다. 


낳자마자 부모에게 살해된 뒤였습니다. 


경찰에 잡힌 가해자는 친권을 포기했습니다.


인터뷰: 박미순 회장 / 오산시 매화봉사단 (아기 추모행사 진행)

"무연고 처리를 하면서 장례 유골함을 넣었을 때 저희 갔던 봉사단들이 눈을 못 떴어요, 너무 속상해서. 한 줌의 재로 되어 있는 아기가 혼자서 얼마나 쓸쓸하고 아플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죠."


지난 12일엔 경기도 평택의 야산에서, 바로 다음 날엔 서울 동대문구 아파트 단지의 쓰레기 수거장에서 신생아의 사체가 발견됐습니다.


평택경찰서 관계자

"수사는 사실 다 끝났어요 끝났고, 이제 검찰로 송치를 하려고 합니다. 일단 타살로 보고 있어요"


지난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영아 사망률은 천 명당 2.5명으로 OECD 평균의 절반 정도였습니다.


의료와 보건 인프라가 그만큼 좋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사망원인을 순서대로 추렸더니, 가해나 타살로 인한 사망이 2.5%, 네 번째로 많았습니다.


10대 이상의 사망원인은 대부분 질병이나 사고사인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1세 미만 영아는 학대에도 취약합니다.


아동학대로 사망한 아동 가운데, 2019년엔 57.1%, 2020년엔 62.9%가 만 1세 미만이었습니다. 


통계 사각지대까지 고려하면, 실제 학대로 사망한 영아는 2.5배 이상 많을 거라는 추정까지 나옵니다. 


인터뷰: 고우현 매니저 / 세이브더칠드런 

"영아 같은 경우에는 취학연령 아동학대와는 다르게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발견되는 게 쉽지 않다 보니까 신고도 문제이지만 신고에 이르기 전에 중상해라든지 심하면 사망에 이르는 결과에 도달해야지 아동학대로 발견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영아 사망의 원인이 타살인 경우, 가해자는 대부분 부모입니다.


그러나, 10년 이상의 형을 내리는 살인죄는 거의 인정되지 않고, 4~7년에 이르는 아동학대치사의 기본형량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터뷰: 장윤미 변호사 /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

"일단 영아, 이렇게 아주 낮은 연령대의 피해자들은 본인의 항변을 할 수가 없습니다. 또 보살펴야 하는 가정이 있는 경우가 오히려 부모에게는 감경해서 처벌되는 사유로 적용되고 있다는 점…"


전문가들은 신고 중심의 기존 안전망으로는 영아 살해와 학대에 대처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가정을 직접 찾아 아동 상태를 확인하고, 양육자도 지원하는 체계가 보편적으로 마련돼야 한다는 겁니다.


영아 살해의 상당수가 원치 않는 임신에서 비롯되는 만큼, 임신 기간부터 상담과 지원 서비스를 확대할 필요도 있습니다.


인터뷰: 정재훈 교수 /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태어나기 전부터 개입하자, 지금 임신갈등상담이라는 건 있습니다. 있는데, 가족 상담하는 분야에서 한 부분으로 하기 때문에 

사실 비혼이라든지, 갈등을 하시는 분들이 알거나 접근하기가 어려운 구조죠."


세계적인 의료와 복지 수준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가장 기본적인 보살핌조차 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아기들.


이들을 보호하고 기억하지 못한다면, 인권 선진국의 길은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EBS 뉴스, 서현아입니다. 

Copyright © EB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