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연료난 스리랑카 "전쟁 때보다 더해"..저소득 10개국 디폴트 경고등[돌아온 인플레이션 ②]

박채영 기자 c0c0@kyunghyang.com;최희진 기자 2022. 5. 18.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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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사이 환율 80% 폭등
거의 모든 물건 수입에 의존
물가에 ‘고스란히’ 반영돼
세계은행, 가나·페루 등 지목
“1년 내 부채상환 실패 가능성”

“작년에는 계란 10알을 220스리랑카루피면 샀던 것 같은데, 이번달 들어서는 420~460루피까지 올랐어요.”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는 스리랑카는 고물가에 계란부터 기름까지 모든 것이 연초보다 2~3배 올랐다. 비싸기만 하면 다행인데 외화 부족으로 수입을 못하면서 물건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 사는 교민 강경애씨(55)는 지난 11일 기자와 통화하며 “우유를 몇달 만에 봤다. 물가가 오른 것도 오른 거지만, 없어서 못 산다”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

인플레이션과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비롯된 공급망 교란은 경제 기반이 불안정한 저소득 국가에 가장 먼저, 가장 큰 타격을 입히고 있다.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까지 몰린 스리랑카는 환율 폭등에 외화 부족이 겹치면서 종이를 수입하지 못해 학생들의 시험이 미뤄지고 있다. 세계은행은 향후 1년간 10개 국가가 부채 상환에 실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17일 기준 스리랑카 중앙은행 고시환율은 1달러당 359.75루피다. 올해 3월 초까지만 해도 달러당 200루피 안팎에서 유지되던 환율이 불과 두 달 사이 80%가량 오른 것이다. 급격한 환율 상승은 거의 모든 물건을 수입에 의존하는 스리랑카 물가에 그대로 반영됐다. 지난 4월 스리랑카의 전년 동기 대비 물가 상승률은 29.8%에 달했다.

가장 급한 것은 연료다. 기름값이 2배 넘게 올랐는데도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 앞에 늘어선 줄은 흔한 풍경이 됐다. 발전소를 돌릴 수 없어 콜롬보는 구역을 나누어 매일 3시간씩 돌아가며 정전을 시키고 있다. 라닐 위크레마싱헤 신임 총리는 17일 “휘발유 재고가 하루치밖에 남지 않았다”며 “앞으로 몇달간 가장 힘든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사람들이 전쟁 때는 기름이랑 가스는 있었다면서 전쟁 때보다도 더하다고 한다”고 전했다.

관광산업 의존도가 높은 스리랑카는 코로나19와 2019년 부활절 테러를 기점으로 관광객이 끊기면서 국가 수입이 줄었다.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하면서 대외부채가 쌓였고, 여기에 정부의 지나친 감세와 화폐 발행 확대 등 정책 실패가 더해졌다. 2019년 말 79억달러(약 9조6000억원)에 달했던 스리랑카 외환보유액은 3월 말 기준 19억달러(2조4000억원)까지 줄었다. 스리랑카는 지난달 12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을 때까지 510억달러(약 64조원)의 대외부채 상환을 유예하겠다며 일시적 디폴트를 선언한 상태다. 최악의 경제난에 반정부 시위도 계속되고 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식품 가격 상승, 에너지 가격 상승, 재정 긴축이라는 세 가지 위기 중 적어도 하나 이상을 겪고 있는 나라는 107개국에 달한다. 세 가지 위기가 모두 중첩된 국가는 69개국이다.

지난 10일 영국 가디언은 “스리랑카 사태는 글로벌 부채위기 도미노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은행은 연내 10여개 국가가 부채 상환에 실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파키스탄, 이집트, 튀니지 등이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상태다. 가나, 케냐, 남아프리카공화국, 에티오피아, 페루, 엘살바도르 등도 디폴트 우려가 큰 국가로 언급되고 있다.

박채영·최희진 기자 c0c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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