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의 '슬기로운 이동수단'

한겨레 2022. 5. 1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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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열차 온실가스 배출량은 비행기 77분의 1
탄소중립 시대로 가면서 철도 교통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국가철도공단 제공

[왜냐면] 이성현 | 충남대 철학과 1학년

우리 모두 알다시피, 기후위기는 더는 막연한 걱정거리가 아니다. 이 시대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생존의 문제다.

기후위기의 가장 주요한 원인은 과다한 탄소배출이다.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받은 열에너지를 다시 우주로 방출한다. 그런데 탄소배출로 인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 열에너지 방출을 방해해 마치 온실처럼 열을 대기 중에 가두게 된다. 이런 온실효과로 지구 평균기온이 올라가면,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녹고, 이는 해수면 상승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우리나라 부산, 인천을 비롯해 세계 주요 도시 상당수가 바다를 통해 외국과 교역하기에 편리한 해안가에 있다. 해수면이 상승해 이 도시들이 물에 잠기기 시작하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기후난민이 쏟아질 수도 있다. 기후위기는 잦은 폭염과 가뭄, 홍수 등을 일으켜 인간이 살기 힘든 환경을 조성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후위기를 막아야 할까. 인공림을 조성하는 등 이미 배출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일반 시민들로서는 생활 속에서 탄소배출을 줄이는 게 우선일 것이다. 가까운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에너지나 물자를 아껴 쓰고, 집에 소규모 태양광발전 시설을 설치하는 것 등이 이에 포함된다. 그런데 비행기 대신 기차를 타는 것 또한 탄소배출을 줄이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실제 프랑스소비자협회는 같은 거리를 이동할 때 고속철도가 배출하는 탄소량은 비행기의 77분의 1에 불과하다며, 비행기 대신 기차 이용을 적극 권고했다.

실제 주요 선진국들은 이런 이유로 단거리 국내선 항공편 감축·폐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고속철도로 2시간3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지역 간 항공편 취항을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애초 ‘편도 4시간 이내 거리 항공편 취항 금지’가 추진됐지만, 항공업계 반발로 범위가 축소됐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사민당·자유당과 함께 여당을 구성하는 ‘동맹90/녹색당’이 2035년까지 국내선 항공편을 모두 없애는 계획을 세웠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직선거리 약 250㎞ 거리인 수도 빈과 서부지역 잘츠부르크 사이 항공편을 폐지하고 해당 노선에 고속철도를 증편했다.

그런데 프랑스 의회는 왜 하필이면 국내선 항공편 폐지 기준을 철도로 4시간 이내에 도달 가능한 거리로 정하려 했을까? 일본 철도업계에는 ‘4시간의 벽’이라는 용어가 있다고 한다. 고속철도로 4시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다면, 항공편보다 경쟁력이 있다는 의미다. 항공편 폐지를 고속철도 증편으로 무리 없이 대응할 수 있는 범위인 셈이다. 이 기준에서 보자면 2004년 케이티엑스(KTX)가 도입된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에서 3시간 이내에 닿을 수 있는 김해, 광주, 포항, 울산, 여수까지 노선은 폐지해도 큰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실제 이런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시민들 스스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깨닫고 자발적으로 기차를 이용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물론 시민의 자발성만으로는 안 되고, 고속철도 이용객의 편의를 보장해줘야 한다. 그 핵심은 고속철도를 증편해 자주 운행하도록 하고 승차권 가격을 항공편보다 저렴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기차 등 탄소배출량이 적은 이동수단에는 세금을 거의 부과하지 않되, 비행기처럼 탄소배출량이 많은 교통수단에는 환경세를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이해관계 조정을 수반하는 개혁에는 반대 목소리도 나오기 마련이다. 항공 수요를 철도로 대체하는 정책이 시행된다면 당장 밥그릇이 달린 항공업계는 크게 반발할 것이다. 항공업계와 그 종사자들 또한 대한민국 산업생태계와 국민의 일부인 만큼, 그들의 목소리도 경청해야 한다. 항공업계 손실을 보상해주거나, 항공사 직원들의 이직을 지원해주는 당근책을 마련해봄 직하다. 손실보상의 경우, 항공업계가 철도나 자전거 같은 친환경 산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과 연계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환경 선진국인 독일에서는 온실가스를 과다 배출하는 비행기 이용을 수치스럽게 여긴다는 뜻의 신조어 ‘플루크샴’(Flugscham)까지 만들어졌다고 한다. 비행기 여행을 뜻하는 ‘플루크’(Flug)와 수치심을 뜻하는 ‘샴’(Scham)을 합성한 단어다.그런데 우리나라는 정권 교체기를 맞아 여러 지역에서 공항 건설과 항공기 취항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만 높은 것 같아 우려가 크다.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된 ‘환경’을 중심에 둔 정책 검토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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