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주석 칼럼] 두 전임 대통령의 낙향

노주석 2022. 5. 18.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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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사회에서 낙향(落鄕)은 지조 있는 선비의 기본 미덕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퇴임 대통령으론 두 번째 낙향했다.

나머지 지방 출신 대통령 모두 퇴임 후 서울에 머물렀다.

낙향한 문재인·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은 부디 현실정치에 휘말리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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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사회에서 낙향(落鄕)은 지조 있는 선비의 기본 미덕이었다. 성리학의 비조 퇴계 이황은 20여 차례 관직에서 물러나거나 임금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학문에 매진했다. 안동 토계(兎溪) 시냇가에 살고자 아예 퇴계(退溪)를 아호로 삼았다. 이순신 장군을 천거한 서애 류성룡도 임란 이후 벼슬길을 떠나 고향 하회에서 5년에 걸쳐 '징비록'을 썼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 서울 가는 것을 상경(上京)이라고 하고, 귀향하는 것을 낙향(落鄕)이라고 부를 정도로 '서울 일극주의'가 판을 쳤다. 사대부가 서울 밖에 사는 걸 일종의 형벌로 여겼다. 유배길 다산 정약용은 아들에게 "너는 사정이 어지간만 하면 한양 사대문 밖에 살지 말고 어떻게 해서든 사대문 안에서 살아라"라는 편지를 보낼 정도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퇴임 대통령으론 두 번째 낙향했다. 노무현은 태어나 자란 곳으로, 문재인은 제2의 고향으로 갔다. 역대 대통령 13명 중 서울 출신은 연희동에서 태어난 윤석열 대통령이 유일하다. 나머지 지방 출신 대통령 모두 퇴임 후 서울에 머물렀다.

제5공화국 이후 전두환·노태우는 서울 연희동, 김영삼·김대중은 상도동과 동교동 자택에서 각각 살았다. 복역 중인 이명박은 서울 내곡동에 사저를 잡았다가 문제가 되자 서울 논현동 자택에 눌러앉았다. 서울 내곡동에 사저를 마련했던 박근혜는 특별사면 이후 '자의 반 타의 반' 대구 달성군 쌍계리로 내려갔다.

지난 10일 퇴임한 문재인 전 대통령이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에 도착해 내뱉은 일성은 "저는 이제 완전히 해방됐습니다. 자유인입니다"였다. 14년 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로 낙향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야, 기분 좋다!"면서 아이처럼 외치던 순간과 묘하게 오버랩됐다.

사람들은 두 사람을 시도 때도 없이 옭아맨다. 최근 구글트렌드 검색어 분석을 보면 평산마을과 봉하마을에 대한 검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문재인 사저, 평산마을에 대한 검색량은 물론 노무현 사저, 봉하마을도 덩달아 늘었다. 부산을 끼고 60여㎞ 떨어진 두 작은 마을은 자동차로 50여분 거리에 불과하다. 지지자들 사이에서 두 마을을 연결하는 순례코스 조성 얘기도 들린다.

빌붙는 정치인, 행사꾼들이 꼬이는 게 왠지 꺼림칙하다. 잊힌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자연인 문재인의 소망을 지지한다. 낙향한 지 불과 15개월 만에 불귀의 객이 돼버린 친구 노무현의 그림자를 떠올리고 싶지 않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 41명 중 40명이 근거지에 도서관이나 연구센터를 세워 나름 의미있는 일을 했다고 하지 않는가.

낙향한 문재인·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은 부디 현실정치에 휘말리지 말았으면 한다. 오로지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남기기 바란다. 퇴계와 서애처럼. 대통령 임기 중 공과를 떠나 퇴임 후 여생으로 평가받는 새로운 대통령 문화가 자리잡을 때가 됐다. 정치가 전직 대통령을 불러내는 불행한 사태는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발 좀 내버려둬라.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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