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어떤 '자유'를 말하는가?

한겨레 2022. 5. 1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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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박복영 | 경희대 교수·전 청와대 경제보좌관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사의 키워드는 단연 ‘자유’였다. 시종일관 자유를 얘기해 무려 35번이나 언급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자유’를 통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기 어렵고, 또 공허하게 들렸다는 것이 세간의 대체적 평가다. 자유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보다 자유의 반대편에 서 있는 부자유가 무엇인지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누가 어떤 부자유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지 청중의 머리에 들어와야 대통령이 어떤 자유를 추구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이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추측건대, 우리 신임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는 적어도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소위 ‘신자유주의 사상’에서 말하는 자유라고 이해했다. 정부가 경제에서 최소한의 역할만 하는 상태가 곧 자유라는 뜻이다. 그는 부친이 권한 책을 읽고 밀턴 프리드먼과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사상에 깊이 공감하게 됐다고 말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읽었다는 <선택할 자유>라는 책에서 프리드먼이 말한 자유는, 한마디로 ‘정부에 세금을 내지 않는 자유’였다. 세금은 개인에게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뺏어 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세금을 내지 않게 되는 날이 곧 해방의 날이라고까지 주장했다. 극단적인 보수주의 경제관이다. 미제스는 프리드먼보다 더 극단적이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매카시즘이 판치던 시대에, 그는 사회보장과 경제 안정을 위한 정부 개입이 결국은 사회주의와 전체주의의 길로 가게 된다고 주장했다.

길게는 80년, 짧게는 40년 전 냉전 시대에 유행했던 경제관이다. 1980년대에 미국 등 몇몇 나라에서 이런 보수주의 이론을 근거로 경제정책을 펼쳤지만, 그 성과는 실망스러웠다. 경제적 불평등은 유례없이 심화됐고, 성장률마저도 신통치 않았다. 그 뒤 세상은 개인의 역량 증진, 불평등 축소, 복지 확대, 기술 개발을 위해 정부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최근에 경제위기는 더 빈발하고 불평등은 한층 심화되며 또 공급망마저 위태로워지자, 정부 역할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 신임 대통령이 유물과 같은 이념으로서의 ‘자유’에 사로잡힌 것은 아닌지, 많은 사람이 염려하고 있다.

그런데 취임사를 찬찬히 뜯어보면 사실 다른 의미의 ‘자유’도 읽힌다. 대통령은 “자유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경제적 기초, 그리고 공정한 교육과 문화의 접근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때의 자유는 프리드먼이 말한 정부의 개입과 세금이 없는 ‘소극적’ 의미의 자유가 아니다. 개인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조건이 충족되지 못하면, 사회가 연대해서 도와야 한다고도 언급했다. 이런 자유는 개인이 정부와 사회로부터 보장받아야 하는 ‘적극적’ 자유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이 주창한 자유다. 이 자유의 실현을 위해서는 프리드먼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정부의 적극적인 복지 확대와 개인의 역량 개발 지원이 필요하다. 센은 경제적 능력이 수반되지 않는 투표의 자유, 빈곤의 문턱을 넘지 못한 상태에서의 일할 자유 같은 것은 공허할 뿐이라고 했다.

두가지 자유는 분명히 다른 자유이며, 상반된 정책적 함의를 가진다. 대통령이 직접 가필을 해가며 취임사를 다듬었다고 한다. 취임사에 담긴 자유가 과거 자신이 말한 낡은 유물 같은 보수주의적 자유가 아님을 이해하고 있기를 기대한다. 민주주의를 달성한 지 수십년이 된 나라에서 독재와 전체주의를 언급하며 정치적 자유를 말하고,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번듯한 선진국이 된 나라에서 자유시장을 외치는 것은 아무런 울림이 없다. 형식적 자유는 있지만, 빈곤과 불평등, 차별 때문에 실질적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지적할 때, 대통령의 ‘자유’는 큰 울림을 만들 것이다. 1980년대 젊은 시절에 읽은 프리드먼의 자유는 이제 잊으시고, 센의 자유를 읽으시길 기대한다. 취임사에서 대통령은 ‘경제성장이 바로 자유의 확대’라고 말했다. 이 역시 현재 대한민국에 걸맞지 않은 성장지상주의다. 센은 반대로 얘기했다. 모든 인간이 빈곤, 불안, 차별에서 벗어나 실질적 자유가 확대되는 것이 바로 성장이라고. 이런 자유의 확대를 보장하는 것이 바로 이 시대 국가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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