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의 성인용품 시장, 역사를 돌아보자[정윤하의 러브월드]②

정윤하|칼럼니스트 2022. 5. 18. 18: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스포츠경향]

한국은 성인용품 시장의 형성이 대단히 어려웠다.

해외에서는 1950년대부터 시작된 성인용품 시장의 형성이 한국에서는 사실상 2000년대가 훌쩍 넘어서야 이뤄졌다. 정말 어렵게 쏘아 올린 출발의 공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보따리 장수가 많았다. 007 가방 하나 들고 휴게소나 고속도로를 배회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그랬다. 1990년대까지의 일이다. 국가가 성인 문화에 갖는 이미지나 정책은 굉장히 부정적이었다. 언론은 포화를 쏟아냈다. 예나 지금이나 주적이었다.

광복 후 6·25가 있었고 이후엔 기나긴 군사 독재 시절이 있었다. 제5공화국 시절 3S 정책에 의해 섹스가 부각됐으나, 이는 자유를 상징하는 문화적 흐름이라기보다 정치적인 수단에 불과했다. 성문화는 기본적으로 음지였다. 숨겨야만 했다. 옳지 않았다.


1996년, 미세스터라는 용품점이 생겼다. 울산과 서울 신촌 등 세를 확장했다. 하지만 언론과 공무원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 미풍양속을 위반하고 문란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미세스터를 가져온 백이기획의 대표가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됐다.

국내 성인용품 기업 바나나몰은 1999년 시작됐다. 마찬가지였다. 성인용품은 눈총 받고 있었고 수요는 있으나 공급이 없는 기이한 상황이 계속됐다. 다수의 대중이 성인용품에 호기심을 갖고 있었지만 풍기문란을 이유로 허용되지 않았다.

바나나몰은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 여성용에 이어 남성용 성인용품이 공식적으로 합법화된 것이 2014년, 불과 몇 년 전이다. 해외에서 열리는 성 박람회나 성교육 관련 세미나 개최도 힘들었다. 바나나몰을 비롯한 많은 업자들이 법과 싸워 기어이 불법 판례를 깼다.

당시 판시는 이랬다. “성적 흥분이나 만족을 위해 성기를 재현했다는 것만으로 음란물이라 단정할 수 없다. 개인이 이런 기구를 구매해 활용하는 것은 성적 자기결정권 또는 행복추구권 측면에서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

개개인의 자발적인 성인용품 사용, 성적인 표현 등에 제3자의 인물이 도리어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꼈다며 모든 이를 죄인으로 만들려고 했던, 몇몇 대중의 사회적 강제가 일부 깨지는 순간이었다.

정윤하|칼럼니스트

Copyright © 스포츠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