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천국으로 그분은 떠나고, 유채꽃이 활짝 피었어요

권오균 입력 2022. 5. 18. 17:24 수정 2022. 5. 2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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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청준의 고향 장흥기행
생가, 천관문학관, 영화 세트장
봄엔 선학동 마을 유채꽃 만발
장흥삼합, 갑오징어 등 식도락
우드랜드 편백 숲에서 숙박도
장흥군 선학동 유채꽃밭.
장흥군 선학동 유채꽃밭.

봄 꽃, 여름 물, 가을 억새, 겨울 눈길.

장흥여행의 주제를 계절별로 꼽자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봄에는 제암산 철쭉, 선학동 유채꽃이 핀다. 여름에는 매년 군에서 물 축제를 연다. 가을에는 천관산 억새가 유혹한다. 겨울은 이청준 작가의 자전적 단편소설 눈길을 따라 발길을 줄 수 있겠다. 지금은 봄과 여름의 사이다. 늦은가 싶었는데 아직은 노란 꽃이 남아있었다. 제암산 철쭉은 거의 졌지만, 선학동 유채꽃만은 아직 노란 빛을 발했다. 소설가 이청준이 뿌린 문학의 향 역시 여전했다.

▷ 나그네 발길 붙잡는 선학동 유채꽃

선학동 유채꽃밭.

선학동은 원래 산 밑에 있다 하여 산저마을이었다. 장흥 출신 이청준의 소설인 ‘선학동 나그네’의 배경이다. 소설은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2007년 개봉)’의 원작이기도 하다. 인근에 영화 세트장이 있고, 이청준이 유년기를 보낸 생가도 있다.

이청준이 떠난 자리에는 노란 유채꽃이 펼쳐져 있다. 처음부터 꽃밭은 아니었다. 소설과 영화를 보고 감동한 이들이 마을로 찾아들자, 너무 볼거리가 없다고 생각한 산저마을 사람들이 2007년경부터 유채와 메밀을 심어 봄에는 노란 유채꽃밭, 가을에는 하얀 메밀밭을 조성했다. 그 대신에 보리와 콩 재배를 포기했다. 2011년에는 아예 마을 이름을 산저마을에서 선학동으로 바꿨다. 완연한 봄에 찾은 선학동엔 노랗게 물든 유채가 바람에 흩날렸다. 예년보다 작황이 좋지 않다고 하였지만, 이만하면 발걸음이 아깝지 않았다.

▷ 영화 천년학 세트장

천년학 세트장. <제공 = 장흥군>
천년학 세트장 내부. <제공 = 장흥군>

임권택 감독의 대표작인 영화 서편제 역시 이청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영화가 끝나고 스크린에 엔딩 크레딧이 흘러내려도 뭉클한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 마지막 롱테이크 장면을 찍은 장소는 임권택 감독과 이청준 작가가 함께 골랐다. 이청준 작가가 어린 시절 거닐었던 길게 이어진 돌담길을 찾다 보니 장흥군을 벗어나 인근 완도군의 청산도까지 가버렸다. 장흥군 입장에서는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었다. 이청준 작가의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한 천년학은 서편제의 후속편 격으로,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주인공 동호가 이복 누이를 찾는 이야기다. 주요장면을 촬영한 세트장이 장흥군에 남아있다. 영화 속에서 동호(조재현 역)와 주인장(류승룡 역)이 막걸리를 마시며 옛 추억을 회상하는 장소다.

▷ 이청준 자전 소설 ‘눈길’ 속 생가

이청준 생가.

이청준에게 고향은 소설의 젖줄이 되었다. 그는 “나는 늘 고향이 부끄러웠고 그 고향에서 쫓겨난 꼴이 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라고 했다. 그 부끄러움을 잊지 않고 고향을 소설에 등장시켰다. 그의 작품에 고향마을을 비롯해 장흥군과 그 주변이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소설 눈길은 이청준이 K고등학교(광주일고)를 다니던 시절 집이 팔렸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귀향했을 때의 일을 바탕으로 한다. 어머니는 아들이 상심할까 팔린 집의 주인에게 사정해 원래 집에서 따듯한 밥을 해먹이고 하룻밤을 재운다. 이튿날 새벽 둘은 눈길을 미끄러지면서 넘어지고, 서로를 일으켜주며 사거리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간다. 아들은 버스를 타고 떠난다. 배웅을 마친 어머니는 혼자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서 자신과 아들의 발자국만 남은 길을 걷게 된다. 어머니는 눈길에 남은 아들 발자국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들은 수십 년 지나고서야 아내와 어머니의 대화를 통해 엿듣게 된다. 뜨거운 것이 앞을 가려 자는 척하는 아들을 며느리가 깨우려 하자 어머니는 피곤하겠다며 두라고 한다.

눈길 속에 등장하는 이청준이 살았던 집은 다른 이에게 팔렸다가 현재 장흥군이 매입해 관리하고 있다. 소설 눈길 속 어머니의 기억에는 “다섯 칸 겹집에다 앞뒤 터가 운동장이었더니라”라고 꽤 큰 집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마당에 장독대가 있는 아담한 기와집이다. 내부에는 이청준의 유년기 사진이나 소설집이 진열되어 있다. 방명록에는 천관산에 올랐다가 소설 눈길이 생각나 방문했다는 글귀가 남아있었다.

생가 내부 사진.
방명록.

▷ 등단 작가만 60여 명 장흥군 천관문학관

천관문학관.
천관문학관 내부.

“여수에서 돈 자랑 말고, 순천에서 인물 자랑 말고, 벌교에서 주먹 자랑 말라”는 구절은 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한다. 호남의 내로라하는 도시를 특징지어진다. 전라도청 문화해설사인 이혜순 씨는 “장흥에서는 글자랑 말라”는 말을 추가할 수 있다고 했다. 장흥의 학교 교가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천관산에서 이름을 따온 천관문학관에 가면 장흥이 배출한 문인 목록을 일일이 확인할 수 있다. 이청준뿐 아니라, 동갑내기 친구 한승원을 비롯해 60여 명의 등단 문인의 대표작과 약력을 볼 수 있다. 참고로 한승원은 2016년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의 아버지다. ‘녹두장군’을 쓴 송기숙, ‘생의 이면’을 쓴 이승우 등 한국 현대문학을 빛낸 문인들 역시 장흥 출신이다. 시인으로는 김영남, 이성관, 이한성, 박순길이 있다.

◇ 장흥군에서 뭐 먹지?

장흥삼합.

남도에는 어딜 가도 맛있는 음식 많다. 웬만해서는 음식 자랑하기가 쉽지 않다. 장흥군에서 세 가지만 꼽자면 한우, 키조개, 표고버섯이다. 질은 양에서 나오는 법이다. 일단 생산량에서 압도한다. 한우는 장흥군이 지방자치단체 중 생산량이 2위다. 1위는 강원도 횡성. 육질이 우수하여 장흥토요시장에는 한우를 취급하는 식당이 여럿이다. 소고기와 표고버섯, 키조개를 별도 구매해서 함께 먹으면 장흥삼합이다.

키조개.

표고버섯은 해풍과 탐진강의 아침 안개를 먹고 자란다. 토종 소나무에서 키우는 옛날 방식 그대로 생산된다고 장흥군은 자부한다. 키조개는 장흥군이 전국 생산의 84%를 차지한다. 영양분이 풍부한 개펄에서 자랐기 때문에 부드럽고 향긋하며 살이 연하다. 패주의 크기도 다른 지역의 키조개보다 월등히 큰 편이다. 키조개는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하고, 불판에 살짝 굽거나 회무침으로도 즐겨 먹는다.

먹 갑오징어 찜.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갑오징어다. 미식가들에게 인기 만점인 봄철 별미다. 갑오징어가 살이 통통하게 오른 제철이기 때문에 지금 먹으면 딱 좋다. 탱글탱글한 갑오징어는 다른 오징어에 비교해 식감이 매우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고 영양성분도 풍부해 신선한 회로도 좋다. 진한 먹물과 함께 먹는 먹찜도 일품이다. 갑오징어 먹물은 약으로도 쓰인다. 고소함도 영양도 두 배가 된다.

◇ 어디서 자고 갈까?

편백나무는 건강에 좋은 피톤치드와 음이온을 가장 많이 내뿜는다. 전남 장흥군에는 100ha에 40년생 이상의 아름드리 편백나무 숲이 조성돼 있다.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

이런 편백 숲속에서 낭만적인 하룻밤을 보낼 수 있으니 바로 우드랜드 편백숲이다. 불멍이나 캠프 파이어는 불가능하다. 대신 숲의 향기와 운치가 아쉬움을 상쇄시킨다. 장흥군에서 운영하여 저렴하다. 단, 예약은 서둘러야 한다.

우드랜드 편백숲에는 통나무주택, 황토주택, 한옥 등 숲속에서 건강 체험을 할 수 있는 숙박시설이 17개 동 있다. 이외에 생태건축을 체험할 수 있는 목재문화체험관, 목공 및 생태건축 체험장, 숲 치유의 장, 산야초단지, 말레길 등이 조성돼 있다. 오전 8시부터 밤 12시(일~목, 금/토 24시간 운영)까지 편백소금찜질방에서 여독을 풀 수도 있다.

[장흥(전남) = 권오균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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