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4' 속 달동네, 인천 최대 신축 단지됐다.. 입주 현장 가보니

오경묵 기자 2022. 5. 1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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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도 포기한 빈민가, 6000가구 최신 아파트단지로
인천도시公, 직접 600억원 투자로 외부 투자 끌어내
승부수 던졌던 황효진 당시 사장 "감개 무량"
17일 오후 인천 부평구 십정동 부평더샵센트럴시티 단지 내에 이삿짐을 실은 차량들이 줄지어 서있는 모습. /오경묵 기자

최근 입주를 시작한 인천 부평구 십정동 더샵 부평센트럴시티 아파트는 17일 오후 활기가 넘쳤다. 총 6000가구에 육박하는 대단지에는 캠핑존, 키즈카페, 헬스장, 골프연습장, 독서실, 코인세탁실, 피아노실, 산책로 등 최신 트렌드의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단지 곳곳에 입주를 환영한다는 플래카드가 붙어있었다. 단지 정문으로는 이삿짐을 실은 대형 트럭과 전자제품 배송 트럭이 연신 드나들었다. 단주 내 간이 부스에서는 인터넷TV와 가정용 인터넷 회선 설치 상담사들이 입주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단지 인근 열우물 전통시장에서 만난 김순자(68)씨는 “큰 아파트 단지가 생기면서 동네 분위기가 바뀌었다”며 “젊은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면 더 활기가 돌 것 같다”고 했다.

원래 이곳은 ‘열우물마을’로 불리던 국내 대표적인 달동네였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속 남파 간첩(김수현 분)이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숨어 살던 동네이자,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촬영된 동네였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도 포기할 정도로 사업성이 나오지 않았다.

인천광역시 십정2구역의 2015년 모습. 당시엔 열우물마을로 불리던 달동네였다. /인천광역시 마을공동체만들기 지원센터

그랬던 곳에 인천도시공사가 부동산펀드에 직접 600여억원을 투자하는 승부수를 던졌고, 결국 인천 최대의 최신식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시켜낸 것이다. 이른바 ‘십정2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이었다.

전체 5678가구 규모 가운데 1550가구는 달동네 땅주인에게 분양됐고, 550가구는 공공임대로 입주자를 받았다. 나머지 3578가구는 박근혜 정부 당시 ‘뉴스테이’로 명명됐던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형태로 주인을 찾았다.

황효진 당시 인천도시공사 사장은 “‘빈민가 랜드마크’가 불과 5년여만에 ‘중산층의 주거 랜드마크’로 바뀐 것”이라며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인천 부평구 십정동에 있는 부평 더샵센트럴시티 전경. /오경묵 기자

◇비만 오면 물난리 겪던 달동네의 대변신

열우물마을은 인천의 대표적인 달동네였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 철거민들이 모여들어 집을 지어 살았던 곳이다. 2002년 4월 8일자 조선일보에는 “1300여가구가 다닥다닥 붙은 낡은 슬레이트 지붕 주택에 거주하는 이곳은 인천 시내의 손꼽히는 빈민가”라고 써있다. 이곳의 옛 모습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다.

이곳이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로 지정된 것은 2007년이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와 미분양 우려로 사업이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 사업시행자로 나섰던 LH는 사업성이 없다며 포기했다. 그 사이 동네는 더욱 낙후돼 갔다. 이곳에서 40년 넘게 살았다는 한 노인은 “개발이 된다, 된다 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살았던 사람들이 많았다”며 “살던 노인들 중에는 자식들이 모셔간 사람들도 있고, 집을 버리고 다른 데로 이주한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관리가 안 돼 결국 무너진 집들의 수습도 어려웠다고 한다. 골목길이 비좁았던 탓이다. 60대 주민 김영창씨는 “빈집이 늘면서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고 갔다. 고물장수가 와서 돈 될 만한 것을 (무턱대고) 가져가기도 했고, 겨울에는 노숙인들이 몰래 들어가 사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인천 부평 더샵센트럴시티가 들어선 십정2지구의 전경. /인천도시공사

동네 사람들은 장마철을 싫어했다고 한다. 상하수도 등 도시기반시설이 거의 없어 비가 오면 그야말로 ‘난리’가 났기 때문이다. 2011년에는 호우로 빈집이 무너져 잔해가 다른 집을 덮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2014년에는 2가구가 사는 집의 담벼락이 무너지는 일도 있었다. 지역주민 이영철씨는 “비만 오면 난리였다. 오래된 집들이 많아 장마철에는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다.

◇610억원 ‘마중물’ 투입이 대박으로…15년만에 숙원사업 해결

박근혜 정부이던 2015년, 인천도시공사가 이 사업 사업시행을 맡았다. 민간 건설기업이 임대아파트를 짓는 ‘뉴스테이’를 이 지역에 적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투자자 유치에 난항을 겪었다. 2016~2017년에는 민간 임대주택사업자를 선정해놓고도 사업비를 구하지 못해 위약금을 물고 계약을 해지하는 사태도 겪었다.

이후 그해 9월 이지스자산운용을 새 민간임대주택 사업자로 선정했다. 이지스자산운용이 민간임대 물량을 통으로 사들여 8년간 임대사업을 한 뒤 분양을 하는 방식이다.

그런 뒤, 인천도시공사는 2017년 10월 이지스자산운용이 설립한 부동산펀드에 610억원을 직접 출자했다. 사업 안정성에 대한 대외 신뢰도를 높여 기관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한 것이었다. 도박이란 우려가 나왔다.

황효진 전 인천도시공사 사장. /조선일보DB

하지만 황효진 전 사장은 “(사업 성공을 위해) 가보지 않은 길을 갔다”고 했다. 그는 “당시 인천도시공사는 신규 공사채를 발행할 수 없었다. 때문에 민간 자금을 조달해야만 가능한 사업이었다”며 “건축기간 4년과 임대기간 8년이 지난 후 투자자금 회수가 가능한데, 장기투자로 인한 리스크 때문에 기관투자자들이 투자에 소극적이어서 공사가 마중물을 투입한 것”이라고 했다.

작전은 적중했다. 공기업이 먼저 거액을 투자하자, 다른 투자자가 따라붙으면서 사업은 궤도에 올랐고, 2018년 11월 착공했다. 이후 3년 6개월 만인 이달 입주가 시작됐다. 15년 만에 주민들의 숙원사업이 해결된 것이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이를 놓고 “주거환경개선사업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황 전 사장은 자신과 호흡을 맞췄던 유정복 전 인천시장에게 공을 돌렸다. 그는 “유정복 (당시) 인천시장이 결단을 해줬기에 가능했던 사업”이라며 “10년이 넘은 지역의 숙원사업을 해결하기 위해 유 전 시장과 수없이 회의하고 밤을 샜다”고 했다. 그는 “사업이 실패했다면 인천도시공사가 위태로웠을 것”이라며 “실험적 접근을 통해 문제를 풀어나갔고, 사업지는 인천의 랜드마크가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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