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4개 대문 현판은 왜 무관이 썼을까

이한나 입력 2022. 5. 18.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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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궁중 현판 81점 총출동
고궁박물관 특별전 8월 15일까지
건물 정체성 알리고 공고문 역할까지
위계별로 현판 색깔 구분도
경복궁 4개 대문 현판은
무관 글씨로 왕실안전 중시
고궁박물관 소장품 중 가장 큰 현판인 대안문(현 덕수궁 동쪽 정문) 현판 [사진 제공 = 국립고궁박물관]
가로 374㎝, 세로 124㎝의 거대한 목판에 '대안문(大安門)'이 새겨졌다. '크게 편안함'을 기원하며 1902년 경운궁(현 덕수궁)의 동쪽 정문 처마 아래 중심에 걸렸으나 1904년 큰 화재가 난후 고종의 명으로 '대한문(大漢門·한양이 창대해진다)' 현판으로 교체됐다.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한 현판 775점 중에서 가장 크다.

경복궁의 4개 대문인 광화문, 건춘문, 영추문, 신무문은 이례적으로 모두 무신이 썼다. 궁궐과 왕실을 안전하게 보호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추정된다. 창덕궁 대의원 현판은 내관이 글을 짓고 쓴 것이 확인돼 상당히 다양한 이들이 현판을 작성했음을 알 수 있다.

재위기간이 52년으로 가장 길었던 영조는 무려 85점의 현판을 남겼다. 30대와 80대 현판 글씨와 내용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1744년 영조가 국가재정을 관리한 관청인 호조에 걸었던 어제어필 현판에는 '均貢愛民 節用蓄力(균공애민 절용축력·조세를 고르게 하여 백성을 사랑하고 씀씀이를 절약해 힘을 축적하라'는 지침이 담겼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19일부터 8월 15일까지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조선의 이상을 걸다, 궁중 현판' 특별전을 개최한다. 옛 건축물 처마 아래 중심에 걸려 공간의 정체성은 물론 그곳에 머무르는 사람들에게 의미를 전달하는 게시판 역할을 했던 현판을 통해 조선이 지향한 이상을 살피기 좋은 기회다.

`국보` 기해기사계첩, 경현당석연도 [사진 제공 = 국립고궁박물관]
이번 특별전에는 지난 2018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목록'에 등재됐던 궁중 현판 81점과 이해를 돕는 국보 '기사계첩(耆社契帖·숙종이 1719년에 숙종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것을 기념해 만든 책)', 국가무형문화재 각자장(刻字匠)의 도구 등 총 100여점을 선보인다. 나무판에 글자를 새기는 각자장과 색칠을 하는 단청장 등 장인들의 전통적인 제작 방식도 영상으로 볼 수 있다.
가장 오래된 현판으로 1582년 당대 명필가 석봉 한호 글씨 새겨진 `의열사기 현판` [사진 제공 = 고궁박물관]
특히 당대 명필인 석봉 한호(韓濩, 1543~1605년)가 쓴 '의열사기(義烈祠記) 현판은 1582년 제작돼 박물관 소장 현판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 현판은 백제 의자왕 때와 고려 공민왕 때 충신을 모신 사당인 의열사의 내력을 새긴 것이다.

현판에는 왕도 정치의 이념이 담겼다. '성군의 도리를 담다'는 성군(聖君)이 되고자 학문에 매진하는 왕과 세자의 모습, '백성을 위한 마음을 담다'에서는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인륜을 가르치기 위한 교화(敎化)의 노력, '신하와의 어울림을 담다'에서는 왕권(王權)과 신권(臣權) 사이의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자 한 왕의 노력, '효를 담다'에서는 효(孝) 사상을 담은 부모에 대한 효심과 추모 등의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숙종이 경현당에서 기로소의 여러 신하에게 연회를 베풀고 지은 시를 새긴 현판 [사진 제공 = 국립고궁박물관]
왕이 신하에게 내린 명령과 지침, 관청의 업무 정보와 규칙, 소속 관리 명단과 업무 분장, 국가 행사 날짜를 새긴 현판 등은 당시에 게시판이나 공문서 기능을 했다. 또 왕의 개인적인 감회나 경험을 읊은 시를 새긴 현판도 볼 수 있다. 영친왕이 6세때 쓴 글씨로 만든 '만수무강(萬壽無疆)' 현판을 보면 일종의 액자 기능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19일 개막하는 궁중현판 특별전 전시 전경 [사진 제공 = 국립고궁박물관]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나오는 '홍화문사미도(弘化門賜米圖)'그림과 관련 문헌기록을 바탕으로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 앞에서 왕이 백성에게 쌀을 나눠주던 장면 등을 만화영상으로 보여준다. 관람객에게 '홍화(덕을 넓혀 백성을 감화시키고 넓힘)'의 뜻을 쉽게 알려 상당히 높이 달려 있던 현판을 현대인 눈높이에 맞게 낮춘 전시 취지와 통한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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