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쪽지·환불..혐오가 우리를 괴롭힐 때 "뭐라도 해"
혐오 발언 접할 때 바로 의사 표현
"장애인 혐오 보일 때마다 단체에 기부"
서울에 사는 직장인 박서희(30)씨는 지난 10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이동권 시위를 ‘열차운행 방해 불법시위’라고 표현한 서울교통공사 앱에 올라온 공지글을 보고 화가 났다. 전날(9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 지하철역인 4호선 삼각지역에서 장애인 활동가들이 휠체어에서 내려 기어서 지하철을 타며 이동권 보장 요구 시위를 벌인 것을 두고 서울교통공사가 ‘불법시위하는 장애인’으로 규정한 것에 장애인 혐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화만 내지 않기로 했다. 에스엔에스(SNS)에서 펼쳐지고 있는 장애인단체 기부 릴레이가 눈에 들어왔다. 서울교통공사의 공지글에 기부 인증 사진을 더해 마지막엔 전장연의 계좌번호를 덧붙였다. “장애인 혐오 발언 보고 열 받아서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기부하고 옴”이라는 글도 남겼다. 그러자 박씨에게 공감한 트친(트위터 친구)들의 리트윗과 함께 기부 동참 행렬이 순식간에 이어졌다. “괴로울 때면 푼돈이나마 기부를 해. 물론 계속 괴로워 그래도 뭐라도 해” 등의 글이 속속 올라왔다. 박씨는 “장애인 혐오의 목소리가 클수록, 그들을 응원하고 연대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져야 한다는 마음으로 참여했다”고 했다.
정치권이나 주변 일상에서 터져 나오는 혐오 발언을 목격하면 박씨처럼 소수자 단체에 기부하거나, 쪽지를 남기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혐오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표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대학원생인 이아무개(25)씨도 18일 <한겨레>에 “장애인 혐오 발언이나 시위에 대한 불만 글이 보일 때마다 소액 기부하고 있는데 벌써 이달 들어서만 세 번째”라며 “더이상 기부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3월25일부터 ‘비문명적인 관점으로 불법 시위를 지속’ 등의 발언을 하며 장애인 시위를 공격한 뒤 전장연의 일시후원도 크게 늘었고, 정기후원자 역시 최근까지 200여명 증가했다고 한다. 전장연은 이 대표가 발언을 하거나, 티브이(TV) 토론이 열리는 날 등에 후원이나 편지 등 응원이 쇄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필순 전장연 기획실장은 “한 달에 10∼20명도 늘기 어려운 정기후원자가 두 달도 채 안 되는 기간에 200명 넘게 증가한 점은 장애인 혐오에 맞서라고 많이 연대해주시는 것으로 본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활 속에서 목격하는 아동 혐오에 ‘반대’를 외치는 움직임도 있다. 지난 14일 아기를 동반한 가족이 입장을 거부당한 걸 본 배우 김꽃비(36)씨는 해당 카페 주인에게 ‘자주 오고 싶었는데 노키즈 정책 철회하시기 전까지는 다시 못 올 것 같습니다. 어린이도 환영해주세요’라는 쪽지를 남긴 사진을 트위터에 공유했다. “당장 정책을 바꾸지 않더라도, 어린이 입장 거부에 반대하는 의견을 가진 손님이 많다는 걸 알게 되면 업주 입장에서도 더 적극적으로 정책 고민을 하지 않을까요. 말하지 않으면 모르니까, 일단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씨의 글은 1만2300여회 리트윗됐다. “나도 용기를 내기로 했다”는 ‘노키즈존 반대’ 연대 글도 나흘 사이 1000건 넘게 올라오고 있다.
게임 업계에서 계속되는 ‘여성 혐오’에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있다. 최근 한 게임 유튜버가 광고를 의뢰받은 게임사로부터 ‘메갈 이슈 관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강조해달라’는 주문을 들었다는 내용을 자신의 방송에서 말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여성 유저들은 6년 전 폐쇄된 ‘메갈리아(여성 혐오를 그대로 남성에게 돌려준다는 미러링을 전략으로 삼은 커뮤니티 사이트)’를 거론해 관리의 대상으로 언급하는 등 잘못된 젠더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며 게임사의 공식 입장을 요구하고 있다. 정액권 환불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게임 유저인 정아무개(34)씨는 “게임사 문의 글을 올려 항의하고 사과를 요구했지만 결국 사과는 없었다”며 “비슷한 생각을 가진 유저들과 함께 정액권과 아이템을 모두 환불하며 여성 혐오 발언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해 글을 남기는 방식으로 집단 항의했다”고 말했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푸틴’ 때문에 ‘삼겹살’ 귀해질 줄이야…20% 비싸진 이유
- WHO “북한, 새 코로나 변이 나올 위험…도울 준비 돼 있다”
- 윤 대통령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시민들 “진정성 꾸준히 보여달라”
- ‘대선 전 봉하마을행’ 윤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 안 간다
- 차별은 여성이 당하고 판단은 남성이? ‘차별시정위원’ 여성 25%뿐
- 떡볶이에도 와인 곁들이는 MZ세대…와인장터서 뭘 ‘득템’했나
- ‘무지개’ 유니폼 거부한 축구선수, 명단 제외…영국서는 커밍아웃
- [단독] 대통령실 “한-중 공급망 협력 방안 마련하라” 산업부에 지시
- 밀가루 공장은 “출하량 늘었다”, 판매상은 “물량 없다”…범인은?
- 5월만 되면 울던 스님…무등산 군왕봉 ‘무명묘’ 16기의 사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