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뺏은 인간들의 고민..돌고래들은 어디로 가야할까?

[애니멀피플]퍼시픽 리솜 돌고래 3마리 보호 어떻게?
업체에 홀로 남은 비봉이, 체험 시설로 간 태지·아랑이
전문가들 "방류는 신중히, 쉼터 건립 전까지 복지 챙겨야"

제주 동물쇼 체험시설 ‘퍼시픽 리솜’이 최근 보유 중이던 돌고래 2마리를 경남 거제 ‘씨월드’로 반출하며 돌고래들의 보호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핫핑크돌핀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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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관에서 태어난 돌고래는 야생 바다를 꿈꿀까? 수족관에서 십수 년을 산 돌고래를 야생으로 돌려보내면 적응할 수 있을까? 감금 상태의 돌고래들에게 더 나은 환경과 삶을 조성해주는 방법은 없을까? 인간처럼 자의식이 발달해있고 고도의 사회적 관계를 맺는 고래류를 수족관에 감금한 뒤 우리는 이런 질문에 직면하게 됐다.

돌고래 ‘처분’한 퍼시픽 리솜, 협의도 거부

최선의 방안 마련을 위해 국내외 전문가들이 머리를 모았다. 17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수족관 고래류 보호·관리방안 국회토론회’에서는 비봉이, 태지, 아랑이를 비롯한 국내 수족관 고래들의 적절한 보호방안과 바다쉼터(생크추어리) 건립 필요성이 논의됐다. 토론회는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동물자유연대, 동물을위한행동이 공동주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국제적 고래류 연구자인 동물복지연구소(Animal Welfare Institute) 나오미 로즈 박사와 고래 생크추어리 프로젝트(Whale Sactuary Projet) 대표 로리 마리노 박사가 발제자로 참여했다.

시민사회단체는 그동안 퍼시픽 리솜의 소유주인 호반건설에 바다쉼터 건립, 야생 방류 검토 등을 촉구해왔다. 사진은 돌고래쇼 중간에 사육사의 지시를 거부하는 ‘비봉이’. 핫핑크돌핀스 제공

제주의 동물쇼체험시설 ‘퍼시픽 리솜’(구 퍼시픽랜드)이 지난해 돌고래 방류를 발표하며 사육 상태의 고래들을 추후 어떻게 보호해야 할 지가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단체들간 크고 작은 이견은 있었지만 주로 수족관 고래의 야생 방류 혹은 바다쉼터 건립 등이 거론됐다. 퍼시픽 리솜이 당시 보유한 돌고래는 비봉이(남방큰돌고래·24~28살 추정), 태지(큰돌고래·22살 추정), 아랑이(큰돌고래) 세 마리였다.

지난 2월 시민사회단체들은 비봉이는 충분한 야생 적응 훈련을 거쳐 야생 방류하고, 태지와 아랑이는 국내 적합지에 바다쉼터를 건설해 보호하는 방안 등을 제시하며 퍼시픽 리솜에 대화를 촉구했으나, 그간 업체는 답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 4월말 퍼시픽 리솜이 담당 기관에 신고도 하지 않은 채 큰돌고래 태지, 아랑이를 또 다른 체험 시설인 경남 거제의 ‘거제씨월드’로 무단반출 한 일이 드러났다. 현재 퍼시픽 리솜에는 비봉이만 홀로 남겨진 상태다. 시설을 옮긴 태지, 아랑이는 건강상태나 적응 상황 등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서식지 방류가 가장 중요…성공은 담보 못해”

이날 토론회는 퍼시픽 리솜의 돌고래 3마리가 과연 야생 방류가 가능할지, 바다쉼터 건립 전 고려해야 할 것 들은 무엇인지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어졌다.

첫 발제자로 나선 나오미 로즈 박사는 수족관 고래류를 방류하려면 먼저 각 개체의 삶과 생태, 역사를 자세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즈 박사는 “수족관 돌고래의 방류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원 서식지에 방류하는 것이다. 한국에도 일본에서 수입한 큰돌고래들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런 돌고래들의 한국 해역 방류는 절대로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태지, 아랑이의 야생 방류 가능성을 이야기 한 일부 단체의 주장에 반대 의견을 표한 것이다.

17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수족관 고래류 보호·관리방안 국회토론회’에서는 비봉이, 태지, 아랑이를 비롯한 국내 수족관 고래들의 적절한 보호방안과 바다쉼터 건립 필요성이 논의됐다. 화면 갈무리

남방큰돌고래 비봉이의 방류에도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로즈 박사는 야생 적응의 관건은 포획 당시 고래의 나이와 수족관 생활 기간이라며 “성체가 된 뒤 포획됐다면 이미 생존기술을 갖고 있지만, 어린 시기 잡혔다면 사냥이나 의사소통 기술을 갖추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성체 때 포획됐더라도 10년 이상 수족관 생활을 했다면 야생의 기억이 희미할 수 있다”고 했다. 비봉이의 경우 2005년 제주 비양도 인근에서 6~10살 때 포획돼 17년간 수족관에서 생활했다.

그는 방류를 추진하더라도 전후 모니터링이 중요하다며 적응이 어려울 때에는 재포획도 염두에 둬야한다고 했다. 로즈 박사는 “야생 적응 훈련장(가두리)에 점차 적응시킨 뒤 활어 사냥 능력을 평가해야 한다. 야생에 나가서도 모니터링 할 수 있도록 지피에스(GPS)를 부착해 최소 3개월에서 1년을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악의 경우로 돌고래가 야생에서 사라져 생존 여부를 알 수 없는 상황을 꼽았다.

방류 어려운 고래들을 위한 ‘바다쉼터’

바다쉼터(생크추어리)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고래 생크추어리 프로젝트 대표 로리 마리노 박사는 “생크추어리는 방류가 어려운 고래들을 위한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다”면서 “진정한 생크추어리는 단순하게 동물들이 생존하는 것뿐 아니라 자율성을 보장하고 번영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라 말했다.

마리노 박사는 생크추어리 적합지 선정을 위해서는 적당한 기온과 날씨, 해양환경 등 물리적 측면과 지역 주민의 지지 등 사회적 측면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대표로 있는 고래 생크추어리 프로젝트는 현재 캐나다 남동부 노바스코샤주 포트 힐포드만에 벨루가·범고래 생크추어리를 건립 중이며 내년 중 오픈할 예정이다. 이들은 한국에 남아있는 두 마리의 벨루가 루비(한화 아쿠아플라넷 여수)와 벨라(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의 시설 입주도 논의 중이다.

고래 생크추어리 프로젝트(Whale Sactuary Projet)는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포트 힐포드만에 벨루가·범고래를 위한 바다쉼터를 건립 중이다. 고래 생크추어리 프로젝트 누리집

토론자들은 국내에도 바다쉼터가 건립되어야 한다는데 공감했다. 육근형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양연구본부 실장은 “바다쉼터 건립 매우 동의한다. 다만 현재 바다쉼터를 건립할 기준이나 근거, 운영 지원이나 자금조달 계획이 없어서 차근히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해양수산부 해양생태과 최재용 사무관은 “지난 3년 간 바다쉼터 대상지를 검토했으나 적정지를 선정하지 못했다. 올해 별도의 연구과제를 통해 바다쉼터 적합지 선정이나 예산 반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야생 방류나 바다쉼터 건립에 면밀한 검토나 시일이 걸리는만큼 현재 수족관 시설의 복지를 평가하고 돌고래들을 더 나은 시설에서 보호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경리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 연구사는 “별도 이관은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대가 많은 것은 알고 있지만 바다쉼터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라도 고래류를 더 나은 시설로 옮겨 적응 훈련을 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먼저 수족관 복지 개선부터…

현실적인 복지와 시설 관리를 위해서는 관련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조응찬 사무관은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동물원수족관법 개정안이 통과 되면 돌고래 체험과 새로운 개체 도입을 법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재용 사무관도 “현재 법적으로 수족관 관련 기준은 최초 등록 때 시설과 인력에 대한 등록 조건만 갖추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법 개정 필요성에 공감했다.

현재 국회에는 더불어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지난해 7월 대표발의한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동물원 수족관법) 전부개정안이 발의돼 있으나 통과가 늦어지고 있다. 개정안은 동물원과 수족관의 등록제를 허가제로 바꾸고, 전문검사관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