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의 시:선(詩: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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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란 붙박이가 아닐 수 없다.
트럭이나 리어카에 담겨 이동하기도 하지만 일단 자리를 잡아 펼쳐놓아야 '가게'가 되는 것이며 자리를 잡으면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
자리에 주고받을 것을 부려놓는다 하여 가게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정'이라고 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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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아 끊어질 듯 이어지는 게 정(情)의 비결이다 언틀먼틀 요철이 들락거리면서 비로소 형체라는 물컹한 감정을 일군 것이 육(肉)이요 땅에 바로 세운 채 직립한 것을 뼈(骨)라 일컫는다 그것들은 해체가 어려운 가역반응이다’
- 송재학 ‘정’(시집 ‘아침이 부탁했다, 결혼식을’)
가게란 붙박이가 아닐 수 없다. 트럭이나 리어카에 담겨 이동하기도 하지만 일단 자리를 잡아 펼쳐놓아야 ‘가게’가 되는 것이며 자리를 잡으면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 자리에 주고받을 것을 부려놓는다 하여 가게가 되는 것은 아니다. 드나드는 이들, 즉 ‘손’이 있어야 가게가 된다. 손이 없으면 가게는 사라진다. 빈자리, 공실이 된다. ‘임대 문의’라는 딱지가 붙고 고지서나 대출 전단지 같은 것들이 쌓이게 된다.
나의 서점은 여섯 해째 남아 있다. 다행히 많건 적건 손이 있다는 뜻이다. 자주 오는 이들이 있다. 단골이다. 서점의 단골들은 말수가 적은 편이다. 나는 그들의 이름도, 하고 있는 일들도 모르고 간신히 낯만 안다. 그런데도 우리 사이엔 무언가 있다. 돈을 건네고 책을 건네는 것 말고 그사이 무언가 있다. 그것을 ‘정’이라고 해도 될까. 서로에 대해 잘 몰라도 우리는 가깝다.
그들 중 몇몇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생각이 나면 걱정이 앞선다. 아픈 것은 아니려나. 그러나 연락할 방법도, 수소문할 명분도 없으니 기다릴 수밖에. 그럴 때쯤이면, 알고 있다는 듯 찾아온다. 그간 못 고른 책들을 한 아름 안아 들고 계산대로 다가온다. 오랜만이라 인사를 건네면, 웃으며 한동안 바빴노라고. 미안하다고 대답하면서 받아주는 것이다. 정이다. 지천에 서점이 있어도 여기까지 찾아오는 것도, 힘들어도 부침이 있어도 서점을 이어가는 것도 ‘그놈의 정’ 때문이다. 그것이 각자를 우리로 만든다. 서로를 살게 한다.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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