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기 연예톡톡]'나의 해방일지'는 어떻게 추앙받는 드라마가 됐을까
JTBC '나의 해방일지'
반복되는 출퇴근..식사·술자리
평범한 일상속 공감 자극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응원 '추앙'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JTBC 주말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대단하다. ‘추앙커플’ 김지원-손석구 얘기를 따라가다가 어느새 박해영 작가를 추앙하게 됐다.
박해영 작가는 평범한 현상과 상황을 통해 진리를 캐내 시청자를 뼈때린다. 그건 삶의 보석이라할만하다. 삶에 대한 통찰과 관조의 경지가 느껴지며 따스한 위로와 힐링이 되기도 한다.
‘나의 해방일지’는 경기도 남쪽 수원 근처, 당미 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들어가는 산포 농촌마을에 사는 염씨 가족 삼남매의 행복소생기다. 드라마 장면이라야 지하철과 마을버스를 타고오가며 반복되는 출퇴근, 1톤트럭을 몰고 싱크대를 설치해주는 일을 하러 가며 이동하기, 둘러앉은 식사자리와 술자리, 사무실과 회식 등이 대부분이지만, 엄청난 세계관이 만들어졌다.
삶과 사람에 관한 깊이 있는 통찰과 따뜻하면서 때로는 냉소적인 시선에서 대사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역량이 대단하다는 증거다. 특히 11회는 작가의 명대사가 쏟아져나왔다.
여기에 이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다 들어와 염씨 집에서 말없이 일만 하고 소주로 시간을 죽이는 외지인 구씨(손석구)의 영화 같은 이야기가 있다. 또한, 염미정(김지원)에 대한 구씨의 추앙을 증명하는 결정적 장면인 4회의 멀리뛰기 선수 같은 점프 엔딩과, 구씨의 롤스로이스 차를 몰고 다니다 범퍼를 긁은 염창희(이민기)가 구씨에게 이실직고하면서 시작된 좇고 좇는 레이스가 구씨가 서울까지 가버리는 장면으로 연결되면서 추앙커플의 이별(?)이 돼버리는 장면 등은 압권이다.
처음에는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직장 생활만 해온 내가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삶이 저렇게까지 고단할까라고 생각했다. 리서치 회사 팀장인 첫째딸 염기정(이엘)은 “내가 죽으면 서울로 출퇴근 하다 죽은지 알어”라고 하고, 편의점 본사 대리 둘째 염창희(이민기)는 “경기도는 서울이라는 노른자를 둘러싸는 계란 흰자”라고 서울로 출근하는 사람의 거주지로서의 소외를 말했다.
카드회사에 계약직으로 다니는 막내 염미정(김지원)은 “모든 (인간)관계가 노동”이라며, “지쳤다”고 말한다. 그는 돈을 빌려준 좋아하는 남자선배에게 돈을 떼이고 신용불량자가 될 처지이며, 직장에서는 능력 없는 팀장으로 부터 업무적으로 괴롭힘을 당한다.
미정의 회사에서는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만들어진 사내 동호회 활동을 적극 권장하지만, 기존 동호회에 들어갈 생각은 조금도 없다. 지겨운 인간에게서 조금이라고 해방되고 싶어 박상민 전략기획실 부장과 싱글대디 조태훈 과장(이기우) 등 다른 두 직원과 ‘해방클럽’ 동호회를 만들고, 결국 동호회 담당 직원인 행복지원센터 소향기 팀장까지 회원으로 들어오게 한다. 고참직원 박상민 부장은 애초에 “딴거 없어 해방하려면 퇴사하고, 이혼하는 수밖에”라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니 해방클럽에는 “행복한 척 하지 않겠다. 불행한 척 하지 않겠다. 정직하게 해보겠다”라는 3가지 수칙이 있다. 구씨는 이런 미정에게 “연기 아닌 인생이 어디있냐. 엄청 (연기)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런 특이하면서도 정상적인 염미정의 눈에 거칠고 투명한 손씨가 들어오는 것은 우연이 아닐 터. 염미정은 인생의 진리 같은데도 사람들이 잘 표현하지 않는 어색한 말을 스스로 해도 좋고 구씨에게 해도 무척 자연스럽다.
“인간은 쓸쓸할 때가 제일 제정신 같다. 그래서 밤이 더 제정신 같애.”
“죽어서 가는 천국 따위 필요 없어. 살아서 천국을 볼 거야.”
“좋기만 한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 같은 사람들도 다 불편한 구석이 있어요. 실제로는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혹시 그게 내가 점점 조용히 지쳐가는 이유 아닐까요. 늘 혼자라는 느낌에 시달리고 버려지는 느낌에 시달리는 이유 아닐까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 하루하루를 견디듯 살아온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닮은 점을 발견했고, ‘썸’이나 사랑을 갈구하기 보다는 서로를 응원하는 ‘추앙’으로 서로를 채워나갔다. 존재의 빈 곳을 가득 채워주는 미정과 구씨의 사랑 방식은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다. 사랑보다 더한 감정이어야만 공허를 채울 수 있다고 믿은 염미정. 무엇도 따지지 않고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는 ‘추앙’의 의미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서울로 가버린 구씨를 미정은 “너라는 인간은 거칠고 투명해…애는 업을 거야. 한 살짜리 당신을 업고 싶어”라고 말한다.
짝사랑하던 조태훈에게 용기있는 고백으로 결국 연애를 시작한 ‘금사빠’ 염기정은 남자를 좀 기다리게 해보라는 주변의 말에 “애 타는 게 좋은 거에요. 익는 것도 아니고, 타는데, 마음이 막. 남녀가 사귀는 데 가득 충만하게 채워져야지. 왜 애정을 그렇게 얄밉게 줘야 해요?”라고 직장상사인 이사에게 얘기하자, 남자 이사는 “난 왜 이 감정을 유쾌라고 생각했지”라고 한다. 한번쯤 곱씹어볼만한 대사들이다. 가진 것이 없어 슬픈 남자 염창희도 매번 좌절하면서도 자신만의 길을 씩씩하게 찾아 나가고 있다.
사람들이 결혼해 자신과 비슷한 아이를 낳고 고생하며 기르는 모습에 대해 아내에게 아이를 낳지 말자고 말하는 게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 게 아니다”는 걸 여자들이 잘 알아듣게 해라는 창희 친구의 말도 공감이 간다.
이들이 각자의 인생에서 도모하는 ‘작은 해방’은 시청자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그 자체로 위로가 됐다. 특별하지도, 빛나지도 않는 보통의 삶을 담아내는 따스한 시선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특히 전반부가 삼 남매가 각각 이루고자 하는 해방이 화두로 던져졌다면, 후반부에서는 각자 어떻게 현실을 극복하고 해방을 찾아 나갈지의 과정을 보는 맛이 있다.
출퇴근 서너 시간을 버티는 지긋지긋한 일상, 사랑이 없는 삶, 사람들 사이에서 묘하게 소외되는 주변인의 하루, 모든 관계가 노동인 인생 등 이들 삶의 일상에는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가 숨어져 있었다. 인물 하나하나가 전하는 평범하고도 ‘웃픈’ 이야기에 스며들었다. 코미디 같을 때도 있지만 결코 그냥 웃어넘길 수 없다. 콘텐츠진흥원 김일중 방송산업팀 부장은 SNS에 “비현실적인 상황과 설정, 인물 없이 그냥 내 주변 사람들이 지지고 볶는 일상으로도 충분히 말이 되고 얘기가 되는 드라마”라고 썼다.
‘가짜 행복’과 ‘가짜 위안’에 갇혀사는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삶을 뚫고나가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게 한 것만으로도 ‘나의 해방일지’는 가치가 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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