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보다 깊은 추앙' 보여준 그.. 이러니 구씨에게 빠질 수밖에

박세희 기자 2022. 5. 1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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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해방일지’ 11화 속 ‘추앙’ 고백 장면. “날 추앙해요”라는 미정의 말로 시작한 구씨와 미정의 관계는 이날 구씨의 “추앙한다”라는 진심 어린 고백으로 완성됐다. JTBC 제공

■ JTBC ‘나의 해방일지’- 구씨 ‘추앙일지’

늘 침묵하던 미스터리 외지인

富·완력 가진 반전실체 드러내

여주인공 아빠에 딸 번호 묻고

직설적 표현 해주는 ‘직진남’

버려진 개 먹이 챙겨주는 남자

거친 모습 지닌 여린 사람일 뿐

“구씨 때문에 밤에 잠을 못 잡니다.” “누구에게도 못 받는 위로를 구씨에게 받다니.”

터졌다. 구멍 나고 허름한 티셔츠에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싱크대를 만드는, 매일 저녁 소주 딱 두 병씩을 마시는 구씨(손석구 분). 이제 네 편만을 남겨둔 박해영 작가의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속 구씨를 향한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다. 각종 커뮤니티에 “손석‘구씨’를 추앙한다”는 고백이 넘쳐난다. 시작은 구씨의 ‘멀리뛰기’부터일 것이다. 4화에서 구씨는 바람에 날아간 염미정의 모자를 줍기 위해 논두렁 위를 뛰어넘는다. 그 전까지 염제호의 싱크대 만드는 일을 돕는 한 외지인였던 구씨는 이 장면부터 드러나기 시작한다. 염미정이 그토록 원했던 ‘사랑’보다 더 깊은, 존재를 충만하게 하는 ‘추앙’의 시작이기도 했다. 우리는, 나는 왜 구씨를 추앙(推仰)하는가. 구씨의 매력이 빛났던 네 장면을 쫓아가며 구씨 ‘추앙 일지’를 쓴다.

# 1. “막내따님 전화번호 좀”

미정을 추앙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머뭇대지 않는다. 보통의 남자라면 미정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전화번호를 물어봤을 거다. 아니면 자신에게 호감을 갖는 미정의 오빠 창희를 통해 알아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미정의 아버지인 제호에게 물었다. “저, 막내따님 전화번호 좀.” 어느 누가 좋아하는 여자 아버지로부터 여자의 전화번호를 얻어낼까. 미정을 향한 구씨의 ‘직진’은 미정의 말대로 “거칠고 투명하다”. 미정을 향한 구씨의 위로도 직설적이다.

돈을 뜯어간 전 남자친구 때문에 힘들어하는 미정에게 구씨는 “나 진짜 무서운 놈이거든? 옆구리에 칼이 들어와도 꿈쩍 안 해. 근데 넌 날 쫄게 해. 좀 알아라. 너 자신을 알라고”라고 말한다. 미정이 얼마나 매력 있는지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위로 같지 않은 위로도 없다. “날 쫄게 한다”는 직설적인 한마디로 미정의 자존감을 가득 채운다.

# 2. “조용히 기다려”

자신의 라이벌이자 옛 연인의 오빠인 백 사장이 접근해오자 구씨는 바로 백 사장을 찾아갔다. 적진의 중심부지만 ‘쫄지’ 않았다. 그리고 백 사장에게 자신의 결정을 기다리라고 말했다. “‘싱크대가 좋다. 이 세계 접을란다’ 아니면 ‘이 세계다. 내가 씹어 먹어야겠다’ 둘 중 하나인데 내가 결정 갖고 올 테니까 기다려”라는 경고는 구씨가 모든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저 그런 한량이 아닌, 이 세계를 씹어 먹어야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씹어먹을 수 있는 남자인 구씨가 후줄근한 티셔츠를 입고 제호 곁에서 싱크대를 만들고 있다. 5억 원이 넘는 롤스로이스 차키를 화장실에 아무렇게나 놓는 남자인 그를 창희는 동경한다.

그의 정체 밝히기는 구씨가 말 한마디 안 했던 1화부터 12화까지 계속돼왔다. 12화가 돼서야 그가 호스트바 마담 출신이라는 그림이 맞춰졌다. 그 전까지 시청자들은 구씨의 정체가 뭔지 궁금해했고 드라마 속 주변 인물도 마찬가지였다. 말없이 싱크대 일을 돕고 하루 두 병의 소주를 마치 ‘의식’처럼 마시던 미스터리한 외지인인 그가 사실 어마어마한 부자이고 어둠의 세계에서 잘나가는 사람이었다는 ‘반전’은 구씨의 매력을 배가시켰다.

# 3. “추앙한다”

‘나의 해방일지’를 정주행하며 구씨와 미정의 관계를 지켜봐온 이들은 11화에서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미정이 그토록 바라던 추앙을 구씨가 진심으로 고백한 그때 말이다. 강가에서 함께 노을을 바라보다, 미정을 바라보다 그렇게 툭, 고백했다. 결국 구씨는 미정이 원하던 걸 준 것이다. “날 추앙해요”라는 미정의 말로 시작한 둘의 관계는 구씨의 “추앙한다”라는 고백으로 완성됐다. “모든 관계가 노동”이라고 말하는 미정을 ‘해방’시키는 순간이기도 하다. ‘사랑’보다 깊은 ‘추앙’이다. “추앙 어떻게 하는 건데”라는 구씨의 물음에 미정은 “절대적인 응원”이라고 답했다. ‘지겨운 얘기를 정성스럽게 하는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15년을 살았던 구씨는 ‘너무 본능적인 인간’인 미정에게 추앙, 절대적인 응원을 보낸다. 그렇게 서로를 향한 응원은 서로에 대한 위로가 되는 동시에 이들을 보는 우리에게도 위로가 된다.

# 4. “누가 죽는 게 이렇게 시원하다”

경찰에 쫓기다 죽은 백 사장의 장례식장에서 구씨는 웃으며 “나는 누가 죽는 게 이렇게 시원하다”고 말한다. 잔인한 말이지만 그의 떨리는 손은 가까이 클로즈업됐다. 허공을 보는 그의 눈빛은 공허했다. 사랑했던 여자에 이어 그의 오빠이자 믿고 따랐던 형(마지막엔 자신을 뒤통수쳤지만) 백 사장마저 연이어 세상을 떠났다. 여기에 추앙했던 미정의 곁도 떠나온 상황이다. 장례식장에서마저 위악(僞惡)을 부리는 그의 모습은 제호가 받지 못한 싱크대 값을 대신 받아주고 버려진 개들에게 먹이를 던져주는 여린 심성의 그가 지금까지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12화까지 공개된 지금, 그는 “행복한 게 무서워 도망친 인간”이다. 죽는 게 시원하다고 말하면서도 손을 떠는 그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도망치는 한 인간일 뿐이다. 그렇기에, 그럼에도 우리는 당신을 추앙한다, 구씨.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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