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슬픈 논문 이야기[김우재의 플라이룸](26)

2022. 5. 18.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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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누군가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논문으로 스펙을 쌓으려 발버둥을 치는데, 너무나 안온하게 세상이 알아주기만을 기다렸다. 앞으로 제자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이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고등학생이 두 달 동안 논문 5편에 전자책 4권을 발표했다고 한다. 논문 주제는 정치, 경제, 과학, 기술을 총망라한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인 그 아버지에 따르면, 논문 대부분은 습작에 불과한 에세이로, 학술지로서 문턱이 낮은 ‘오픈액세스’에 게재된 것뿐이다. 오픈액세스라는 게 발표된 논문이 모두에게 무료로 공개되는 형태를 뜻하는 용어일 뿐, 그 자체가 문턱이 낮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네이처’ 등의 거대학술출판사 역시 많은 오픈액세스 학술지를 운영하고 있다. 이 습작에 불과한 고등학교 숙제들이 부실 학술지 혹은 약탈적 학술지에 출판됐다는 점은 진짜 심각한 문제다.

가짜 학술지와 바늘도둑

몇년 전 국내 연구자들이 ‘와셋’과 ‘오믹스’ 등의 약탈적 학술지에 대규모로 논문을 출판하거나 이들이 주최하는 학술행사에 외유성 참가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서 운영하는 건전학술활동지원시스템을 보면 ‘의심 학술지’라는 분류 아래에 ‘위조 학술지’, ‘약탈적 학술지’, 그리고 ‘대량발행학술지’를 놓아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의심 학술지란 “출판 윤리를 따르지 않고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여 출판하는 학술지”를 의미한다. 이중 약탈적 학술지란 “돈만 지불하면 무조건 게재해주고 출판 윤리를 어기는 학술지”를 말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의 딸이 발표한 논문 대부분은 이런 종류의 학술지에 게재됐다.

부실 학술지 사태 당시 교육부는 100여개 대학에 약 1300명에 이르는 연구자를 모두 징계하라고 요청했지만, 대부분의 대학은 솜방망이 징계로 사태를 마무리지었다. 서울대 교수도 참석한 와셋 학회를 평범한 연구진이 어떻게 가짜인지 알았겠느냐는 변명은 물론, 심지어 해당 부실 학회가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항변까지, 부실 학술지를 근절해야 할 대학교수들은 동료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역겨운 광경을 목도한 어린 학생들이 무엇을 배웠을지 뻔한 일이다.

진영 논리에 휩싸인 한 서울대 명예교수는 의심 학술지에 내 돈을 주고 논문을 내는 게 뭐가 문제냐며 한동훈 후보자 딸의 논문을 프리프린트에 비유했다. 하지만 프리프린트는 논문이 아니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논문심사 과정 동안 동료연구자들에게 연구결과를 공유하기 위해 사용하는 프리프린트와 학술지 흉내를 내며 정식 논문인 척 위장하는 의심 학술지 논문은 완벽하게 다른 개념이다. 고등학생이 자신의 습작 에세이를 프리프린트 서버에 저장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한동훈 후보자의 딸)는 표절에 대필 의심까지 받는 습작에 불과한 에세이를 돈만 내면 논문처럼 위장해주는 약탈적 학술지에 대거 발표했다고 한다.

누군가를 속이기 위한 의도가 아니었다면 전혀 필요 없었을 행위다. 논문작성법 교육을 위해 학교 혹은 컨설턴트에 의해 추진된 것이라면 학술생태계를 교란한 비윤리적인 행위를 저지른 셈이다. 만약 논문작성법 훈련이 필요했고 그 결과물이 교육의 일부였다면, 프리프린트 서버에 올리는 것으로 충분했을 일이다. 그들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따라서 대학입시에 사용되지 않았으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후보자의 발언은 비상식적이다. 부실 학술지 게재가 심각한 문제인 이유는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되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접하니, 석사과정에 입학해 처음으로 발표했던 논문이 생각났다. 옛날 내가 공부하던 작은 학교는, 졸업여건이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박사학위를 받으려면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해외학술지에 논문을 반드시 발표해야 했고, 논문 랭킹에 따른 점수표까지 있었다. 발표된 논문에서의 역할이 제1저자인지 아닌지에 따라 점수가 반토막이 나기도 했다. 나는 그 점수에서 0.5점이 모자라 몇년 더 학교에 다녀야 했다.

나의 첫 논문은

첫 논문의 주제는 두 단백질의 결합이 가진 생리학적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나에게 분자생물학 실험을 가르쳐준 실험실 선배가 첫 삽을 뜬 연구였다. 기본적인 생물학 실험을 배우는 데만 반년이 넘게 걸렸다. 그후에도 손이 좋지 못한 나는 자주 실험을 망치며 석사과정 1년 동안 제대로 된 실험데이터조차 만들지 못했다. 1년 정도가 지나자 실험의 감각이 생기기 시작했고, 겨우겨우 데이터를 만들어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박사과정에 들어가서도 1년이 넘게 연구에 매달려서야 겨우 학술지라는 데에 논문을 심사해달라고 제출할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권위 있는 학술지의 벽은 높았다. 겨우 한 학술지에서 심사받은 논문은 심사위원들에 의해 너덜너덜해진 채 돌아왔다. 심사위원들이 요구한 실험들을 모두 수행하는 데만 3개월이 걸렸다. 그렇게 다시 제출한 논문은 최종 탈락, 그렇게 대여섯개의 학술지를 전전하던 내 논문은 처음 생각했던 학술지보다 한참 아래 학술지의 게재승인을 받았다. 이 과정에만 1년하고도 반이 걸렸다.

논문게재가 확정되자 연구를 처음 시작했던 선배가 장문의 e메일을 보내 자신의 이름이 제1저자에 공동으로 명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떠나고 2년이 넘게 혼자 했던 연구였고, 논문 작성부터 심사과정 및 논문 수정에 이르기까지 그가 기여한 바는 전혀 없었다. 심지어 그가 만든 데이터 중 단 하나도 논문에 사용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물론 그의 요구에도 수긍할 만한 점이 있었으나, 객관적인 논문기여도를 놓고 보면 그는 제2저자로 만족해야 했다. 지도교수에게 그냥 공동저자를 줘버리자고 했다. 바로 그 결정 때문에 졸업여건에서 0.5점이 모자라 몇년을 더 연구해야 했지만, 나는 당시 우울증까지 앓을 정도로 심신이 정상이 아니었다.

한국 과학자의 평균으로 계산해도 늦깎이인 나는 박사과정에 무려 8년 반이 걸렸다. 그 8년 반 동안 1저자로 발표한 논문은 겨우 두편이다. 조금만 똑똑했으면 논문 한편에 그렇게 목숨을 걸지도 않았을 테고, 공동저자 자격을 그리 쉽게 허락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논문으로 스펙을 쌓으려 발버둥을 치는데, 너무나 안온하게 세상이 알아주기만을 기다렸다. 앞으로 제자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이다. 어차피 논문은 스펙일 뿐인데, 쓸데없이 너무 열심히 세상을 살아온 건 아닐까 싶다. 그래도 세상 부끄럽지 않은 논문 몇편은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이 표절에 대필 의심까지 받는 습작에 불과한 에세이를 돈만 내면 논문처럼 위장해주는 약탈적 학술지에 대거 발표했다고 한다.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후보자의 발언은 비상식적이다. 부실 학술지 게재가 심각한 문제인 이유는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되기 때문이다.

김우재 낯선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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