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일기-연필로 그려낸 전쟁의 참혹함[만화로 본 세상]

2022. 5. 18.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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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대학가에서 운영하는 매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거기는 만화책이 많이 있는데, 한 대학생 손님이 책들을 구경하다가 왜 만화가 흑백이냐고 물어왔다. 잠시 당황했는데, 생각해보니 웹툰으로 만화라는 매체를 접하기 시작한 세대에게 ‘컬러’는 작품의 필수 구성요소였다. 게다가 우철(右綴)로 편집된 일본만화의 컷과 대사는 읽는 순서를 모르겠다고 했다. 내가 사랑하는 작품들이 갑자기 과거의 유산이 돼버린 것 같아 잠시 울먹거렸다.

올가 그레벤니크의 <전쟁일기> 한 장면 / 이야기장수


최근 우크라이나 그림동화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의 〈전쟁일기〉를 구입했다. 우연히 소셜미디어의 광고를 통해 책을 발견했다.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의 기록이라는 사실이 기억에 남았다. 이 책의 출판사 수익금 일부와 번역료 전액을 우크라이나 적십자에 기부한다고 했다. 부끄럽지만 나는 전쟁의 피해자를 돕는다는 얄팍한 만족감을 얻으려고 가장 손쉬운 방법을 선택했다(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이 책을 구매했으면 한다).

〈전쟁일기〉를 보면 전쟁이라는 참혹한 환경이 작가의 예술 스타일을 기존과 달리 오히려 반대의 시간으로 흐르게 했음을 알 수 있다. 갑작스레 다가온 폭격을 피해 지하로 숨어든 작가가 챙길 수 있었던 건 겨우 연필과 종이였다. 그는 이것들로 자신과 평범한 우크라이나 국민이 처한 상황을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국내에 소개된 적은 없었지만,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는 촘촘하고 꼼꼼하게 캔버스를 채우고 색채를 대단히 아름답게 사용해 우크라이나에서는 유명한 그림책 작가다. 하지만 전쟁은 화려한 색을 띠지 않는다. 오랫동안 발전해 온 수많은 미술도구는 전쟁 앞에서 짐이 됐다.

내용 면에서도 〈전쟁일기〉는 작가가 기존에 그려왔던 그림책과 다르다. 올가 그레벤니크는 많은 동화를 그려왔다. 천사와 의인화된 동물들과 알록달록한 건물과 꽃들로 상상을 구체화하던 작가였다. 갑자기 전쟁의 피해를 거칠고 빠르게 담아야 했다. 글과 그림이 상상을 저장하기 이전에 실제를 기록하기 위해 생겨났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전쟁이 벌어진 첫날, 그가 펜으로 가장 먼저 한 일은 딸과 아들 그리고 자기 팔에 이름과 생년월일, 전화번호를 쓴 것이었다. 혹시나 사망 후 식별을 위해서.

전쟁이라는 극한의 조건마저 예술가에게서 기록과 창작을 향한 욕구를 빼앗아가지는 못했다. 올가 그레벤니크는 틈이 날 때마다 크로키에 가까운 러프한 스케치와 상황을 담은 짧은 메모를 남겼고, 다행히 작동하는 네트워크를 이용해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업로드했다. 이를 발견한 몇분의 노력과 헌신으로 매우 빠르게 우리는 미디어에서 보지 못하는 전쟁의 진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우크라이나 현지에서는 출판조차 안 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다행(이라는 말이 미안하지만)스럽게도 올가 그레벤니크는 안전한 곳에서 다시 채색을 시작했다. 우리가 아는 예술의 형태가 물질적 풍요와 과학기술 발전에 의해 변화해왔음을 확인한 사건이었다. 사람들의 안전과 더욱 풍요로운 예술을 위해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길 소원한다.

황순욱 초영세 만화플랫폼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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