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과 조국과 당신의 공통점[오늘을 생각한다]

2022. 5. 18. 09:3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간경향]
한 정치인이 장애인 단체의 지하철 탑승 시위를 비난하면서 논쟁이 벌어졌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지하철이용자와 비이용자 사이에 인식 차이가 드러났다. 가수 핫펠트는 “지하철을 안 타는 네가 시민의 불편함을 뭘 아냐”는 어떤 이의 지적에 “맞습니다. 그렇다면 장애를 갖지 않은 우리는 시위에 나서야만 하는 장애인들의 고통을 뭘 알까요?”라고 되물었다. 이런 갈등이 빚어질 때 공동체의 의사결정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까? 각자의 사정이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면 잠시 모두의 사정을 알지 못한다고 가정해보면 어떨까? 내가 장애인인지 비장애인인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지하철 시위에 관해 조금 더 진지하게 고민하게 될 것이다. 내가 카페 주인인지 아이를 둔 부모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면 노키즈존에 대한 판단을 조금 더 치열하게 고민한 뒤 내릴 것이다. 이 가정은 존 롤스가 〈정의론〉에서 제안한 ‘무지의 베일’이라는 사고실험이다. 그는 구성원들이 베일로 가려진 듯 서로의 사정에 관해 알지 못할 때 자신이 사회에서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될지 알 수 없으므로 공정한 합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에 이 가정을 대입해보자. 한동훈과 조국 중 누가 더 문제인가? 혹은 둘 사이에는 얼마나 의미 있는 차이가 존재하는가? 두 사람이 어느 정파의 사람인지 내가 어떤 당의 지지자인지 모른다고 가정하고 이 문제를 들여다보자. 상대에게 패배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내가 틀렸음을 인정해야 하는 민망함도 없는 상태에서 사람들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둘 다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들을 위해 구구절절한 궤변을 늘어놓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나는 지금까지 둘 다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을 한명도 보지 못했다. 추정컨대 ‘자기편’을 향한 무리한 두둔을 제외하면 사람들은 이미 공동체의 상식에 기반을 둔 판단을 내릴 줄 안다.

한동훈과 조국은 서로의 삶을 들여다보며 정말 화가 났을까? 둘은 서로의 삶에 대한 변명이자 위안이 아닌가. 그들이 가진 특권 100분의 1도 가지지 못한 서민들이 어느 한 편에 서서 두둔하는 모습을 보며 이 오래된 사고실험을 떠올렸다. 내가 조국이나 한동훈처럼 특권을 가진 사람인지 그냥 평범한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상태라면 나를 특권층이라고 가정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이 아니라 아무런 특권도 갖지 못한 서민의 입장에서 나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안전한 판단을 내릴 것이다. 또 진짜 갈등의 전선이 한동훈과 조국 사이가 아니라 특권의 대물림을 이어가는 소수와 그들에게 열패감을 느끼는 다수 사이에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될 것이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조지 오웰은 이렇게 회고했다. “파시스트와 싸우러 참전했는데 상대 병사를 보니 나와 같이 생긴 인간이었다. 총을 쏘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한 번쯤 무지의 베일 뒤에 자신을 세워본다면 많은 사람이 이와 비슷한 회고를 하게 되지 않을까.

정주식 직썰 편집장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

인기 무료만화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