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박물관에서 모네의 '수련'을 보게 될 줄이야

김석 2022. 5. 18.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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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작품은 모름지기 직접 보아야 합니다.

모네의 수련으로 가득한 프랑스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은 차치하고라도,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5층 전시실 하나를 가득 채운 <수련> 이 이 미술관의 자랑거리라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도쿄 근교의 온천마을 하코네의 숲 속에 깃든 폴라미술관에는 <수련 연못> 을 비롯해 모네의 그림만 19점이 소장돼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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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작품은 모름지기 직접 보아야 합니다. 사람을 만나야 하듯, 그림도 만나야 하죠. 제아무리 초고화질 이미지가 차고 넘쳐도, 작품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직접 대면하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법이니까요.

그림이 걸린 전시장 벽의 색깔, 그림을 비추는 조명, 전시장의 크기와 그림의 위치,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전시장의 온도, 침묵과 침묵 사이의 탄식과 웅성거림…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모든 감각의 문을 열고 그림과 마주하고 싶다는 열망. 그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면, 표를 사기까지 기다린 긴 시간과 그만큼의 조바심도 전혀 아깝지 않을 겁니다.


책에서나 보던 모네의 <수련> 앞에 섰을 때, 저도 모르게 가슴이 떨리는 건 어쩔 수가 없더군요. 이 그림의 무엇이 이토록 나를 흔드는 것일까. 뚜렷한 윤곽선 없이, 말 그대로 연못의 정경이 주는 '인상'을 그렸을 뿐인데, 저리도 많은 이의 걸음을 멈춰 세워 더없이 뜨거운 시선을 받고 있는 까닭은 뭘까. 다들 한목소리로 유명하다고들 하니까 덩달아 유별나게 보이는 건 아닌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상념들을 뒤로 한 채 지긋이 그림을 바라봅니다.

우리도 이제 모네의 수련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국내에 단 하나뿐인 모네의 <수련>이죠. 모네의 수련으로 가득한 프랑스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은 차치하고라도,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5층 전시실 하나를 가득 채운 <수련>이 이 미술관의 자랑거리라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가까운 나라 일본은 또 어떤가요. 도쿄 근교의 온천마을 하코네의 숲 속에 깃든 폴라미술관에는 <수련 연못>을 비롯해 모네의 그림만 19점이 소장돼 있다고 합니다. 당연히 모네의 작품이 이 미술관의 대표 소장품임은 말할 것도 없고요.

클로드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 1917~1920년, 캔버스에 유채, 100.0×200.5cm, 국립현대미술관


그동안 한 번도 대중에게 공개된 적이 없었기에 숱한 궁금증을 불러온 이건희 컬렉션 속 <수련>이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미술관, 박물관을 살찌우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수준 높은 소장품입니다.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는 못 견디겠는 사람들은 오로지 그림 하나 때문에 기꺼이 시간과 돈을 들여 국제선 비행기에 오르죠.

모네는 1883년 프랑스 파리 근교의 지베르니에 정착해 그곳에서 250여 점에 이르는 <수련> 연작을 그립니다. 이건희 컬렉션이 국가에 기증된 덕분에 우리 박물관은 드디어 모네의 저 유명한 수련 연작 가운데 한 점을 품게 됐습니다. <수련이 있는 연못>은 이제 명실공히 우리의 소중한 문화적 자산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을 기념해 연 특별전에 선보인 미술품 가운데 딱 한 점을 고르라면 저는 아무 주저 없이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을 선택하겠습니다. 그동안 우리 미술관, 박물관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이런 작품이 훌륭하게 메워주기 때문이죠.

물론 우리 국립현대미술관이나 리움미술관 같은 곳에 가도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얼마든지 감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십중팔구 동시대(Contemporary) 미술에 국한된 것일 뿐 우리가 흔히 근대(Modern)라 부르는 그 시기의 미술품은 극히 드물죠. 머릿속에 딱 떠오르는 작품이 마땅치 않은 이유입니다.


연못가처럼 꾸며진 전시장에서 조용히 수련이 핀 연못의 정경을 바라보는데, 누군가 옆에서 작은 소리로 탄성을 내지릅니다. "예쁘다!" 그 이상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수련이 이토록 아름다운 꽃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답니다. 그래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붙든 채로 가까이에서, 또 멀리서, 오래도록, 그림 앞에서 떠날 줄 모르는 사람들 틈에 서 있었습니다.

김석 기자 (stone2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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