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그럴 때가 있다』 이정록 "어떻게 하면 살림의 언어 쪽에서 일할 수 있을까가 시론"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김용출 2022. 5. 18.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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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어느 봄날,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홍성군 용봉사 마애불의 머리 위에 진달래꽃이 피어 있는 것을 봤다. 마애불을 좋아했던 시인은 이때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서 오래 전에 시를 짓기도 했다.

“천이백세 살 먹은/ 내 애인 용봉사 마애불은/ 천 년 넘게 돌이끼를 입고 서 있다/ 돌이끼의 수명이 삼천 살 정도라니/ 내 생애에 옷 한 벌 해 입히기는 글렀다// 저 돌이끼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나만큼이나 장난기 실한 녀석이 있다/ 내 애인의 실소를 꼭 봐야겠다고/ 콧구멍에다가 터를 잡은 것이다/ 재채기 소리 한 번 들으려고, 천 년 넘게/ 코딱지를 간질이고 있는 것이다”(「애인」 부문)

한참의 세월이 흘러 마애불을 다시 찾아가보니, 마애불 머리 위에 있던 진달래꽃이 감쪽같이 사라진 게 아닌가. 관리를 위해 정리된 것이었다. 그는 이때 망치로 끌을 탕탕 때리던 고통을 이겨내고 미소를 피워내듯 뿌리가 머리를 파고드는 고통을 딛고 진달래꽃을 피워낸 마애불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럭저럭 사는 거지./ 저 절벽 돌부처가/ 망치 소리를 다 쟁여두었다면/ 어찌 요리 곱게 웃을 수 있겠어./ 그냥저냥 살다보면 저렇게/ 머리에 진달래꽃도 피겠지.”(「진달래꽃」 전문)

걸쭉하면서도 선한 해학과 세상을 바라보는 너른 시선으로 주목을 받아온 이정록 시인이 「진달래꽃」을 비롯해 시 60편을 묶어서 신작 시집 『그럴 때가 있다』(창비)를 펴냈다. 사전 형식의 독특한 시집 『동심언어사전』 이후 4년 만에 펴내는 그의 11번째 시집이다.

시집에는 가족과 이웃은 물론, 자연과 사물, 삶과 죽음이 한데 모여 그윽한 아름다움과 중후한 활력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작품들이 다수 담겨 있다. 그가 「시인의 말」에서 “얼음 속에서라도 질문이 살아 있으니 아직은 파멸이 아니다. 답은 하나”라며 “앞뒤가 아니라, 옆이다. 당신 곁”이라고 말한 이유다.

이정록 시인은 꾸준히 발신해온 생명과 살림 이야기를 이번 시집에서 어떻게 혁신했을까. 이정록의 시 세계는 앞으로 어디로 향해 나아갈까. 이 시인은 지난 11일 서울역 근처 커피숍에서 만났다. 입담은 그의 시처럼 거침없고 구수했다.

―시 「진달래꽃」은 어떻게 쓰게 된 것인지.

“처음 바위에 끌을 대고 망치로 때렸을 것이다. 그런데 탕탕탕탕, 울린 고통의 소리는 가고 미소만 남는다. 우리 역시 일생을 살면서 수도 없이 삶이라는 고통의 망치질을 당한다. 그래도 그럭저럭 세월이 지나고 보면, 고통을 잊고 환하게 웃는 미소만 남는다. 부처의 머리도 어느 순간 쪼개지기도 할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진달래꽃 뿌리가 자리 잡아서, 망치를 맞을 때보다 더 큰 고통이 온 뒤, 자기의 삶을 승화시키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럭저럭 대충 시간만 지나면 고통이 잊혀지는 게 아닌, 아예 꽃을 피워 버리는 것 말이다. 사실 진달래꽃이라는 제목은 이미 한으로 규정한 김소월의 명시 「진달래꽃」이 있어서 무조건 백전백패하는 제목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한이 아니라, 한이 승화된, 한을 풀어버리고 꽃을 피워버리는, 체념의 상태를 넘어서버린 지점을 짧고도 강렬하게 한번 써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다른 시 「무지개」는 낙담과 절망, 비방이 넘쳐나는 시대에 모든 존재는 각자의 존재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그래서 겉만 보지 말고 각자의 진면목을 보자고, 어미가 넉넉하게 다독이는 형식의 작품이다. “슬몃 자개농짝을 어루만지는 걸 보니/ 너도 이제 제법 나이를 먹었는가보다/ 어미가 저 전복 패한테 배운 게 있다/ 무엇이든 겉만 보고 가름하지 말거라/ 누구나 무지개는 가슴 안쪽에 둔단다”(「무지개」 전문)

―「무지개」는 사람들의 희망이나 꿈을 가르키는 것일까.

“희망이나 꿈으로 보는 건 일부분인 것 같다. 각자 나름대로 가진 어떤 아름다운 세계, 남들과 다른 자기만의 세계가 있을 것이고, 이것은 자신의 가슴 안쪽에 둘 것이다. 외모, 말투, 출신 성분, 종교만 보고 차별의 대상이나 상하 개념으로 하면 안된다. 마지막 어머니 화자가 나오는 게 중요한데, 수평적으로 다독이고 감싸고 편안하게 등을 두드리면서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 속에 담긴 의미를 천천히 발굴해온 시인은 우주의 모든 존재가 서로 연관돼 있다고, 너와 내가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표제시 「그럴 때가 있다」는 그러한 우주적 관계성이 이뤄지는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매끄러운 길인데/ 핸들이 덜컹할 때가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누군가/ 눈물로 제 발등을 찍을 때다.// 탁자에 놓인 소주잔이/ 저 혼자 떨릴 때가 있다./ 총소리 잦아든 어딘가에서/ 오래도록 노을을 바라보던 젖은 눈망울이/ 어린 입술을 깨물며 가슴을 칠 때다.//그럴 때가 있다.//...촛불이 깜빡,/ 까만 심지를 보여주었다가/ 다시 살아날 때가 있다./ 순간, 아득히 먼 곳에/ 불씨를 건네주고 온 거다.”(「그럴 때가 있다」 부문)

―표제시는 우주 만유의 관계성이 드러나는 어느 순간을 포착한 것 같은데.

“우리는 관계의 인디라망 속에서 존재한다. 여기에서 깜빡 숨넘어갈 때 저쪽에서는 살짝 빛이 피어나듯이 일출하고 일몰하는 것이 같은 길이다. 고통과 기쁨 역시 딱 잘라서 특정 국가나 사회, 특정 종교만의 것이 아니다. 고통과 슬픔이 한 개의 선으로 연결돼 있고, 그것을 단절시키거나 놓치거나 무시하거나 그렇게 보면 안 된다. 여기에서 작은 기미와 조짐조차도 저쪽에서는 엄청난 어떤 슬픔의 기척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지금 너와 내가 너무 명확하게 단절되어 있고, 배척하고, 무시하고, 조롱하는 것에 관해 한번 생각해 보고 싶었다.”

시가 안 써지면 버스 기사와 할머니가 유쾌한 대거리를 하는 시내버스에 탄다는 시인이 어느 날 버스에 앉아 있었는데, 한 팔순의 할머니가 올라탔다. 버스 기사는 무릎수술을 하고 오랜만에 나타난 할머니에게 서른이 아니냐고, ‘성장판 수술’을 한 게 아니냐고 농을 건네자, 할머니는 “사타구니에 숨긴 민증 좀 까봐”라고 몰아붙이는데.

“기사 양반, 잘 지내셨남?/ 무릎 수술한 사이에/ 버스가 많이 컸네./ 북망산보다 높구먼.// 한참 만이유./ 올해 연세가 어찌 되셨대유?/ 여드름이 거뭇거뭇 잘 익은 걸 보니께/ 서른은 넘었쥬?// 운전대 놓고 점집 차려야겄네./ 민증은 집에 두고 왔는디/ 골다공증이라도 보여줄까?// 안 봐도 다 알유./ 눈감아드릴 테니께/ 오늘은 그냥 경로석에 앉어유./ 성장판 수술했다맨서유.// 등 뒤에 바짝/ 젊은 여자 앉히려는 수작이/ 꾼 중에서도 웃질이구먼./ 오빠 후딱 달려.// 인생 뭐 있슈?/ 다 짝 찾는 일이쥬./ 달리다보면 금방 종점이유.// 근디 내 나이 서른에/ 그짝이 지나치게 연상 아녀?/ 사타구니에 숨긴 민증 좀 까봐./ 거시기 골다공증인가 보게.”(「팔순」 전문)

―그야말로 이정록 해학의 결정판 같다.

“「팔순」과 비슷한 시로, 시집 『어머니학교』에 담긴 시 「짐」과 「청양행 버스 기사와 할머니의 독한 농담」 등이 있다. 지금 시골에선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해서 운전면허를 딸 수 없는 시골의 어르신들이 장에 가거나 어디 나오려면 이동 수단은 버스밖에 없다. 승객은 아저씨들이 일찍 떠난 여성들이 대부분이고, 버스 기사는 대부분 남자다. 오십대 중후반의 남자 버스 기사와 칠십대 이상의 어르신들의 대화만으로 채우는 연작 시집을 준비 중이다. 농촌의 환경 문제나 노동 문제, 의료 문제 등 여러 문제들이 다 드러내는 시집을 만들고 이를 그대로 연극이 되게 구성할 생각이다.”

특히 이번 시집에는 지금 한국 문단에서 가장 핫한 나태주 시인과 아름답게 얽힌 시 한 편도 담겨 있다. 그러니까, 나 시인은 투병 중이던 2007년 고생하는 아내를 생각하며 시를 한편 썼다.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저에게가 아니에요. 저의 아내 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달라는 말씀이에요. 이 여자는 젊어서부터 병과 더불어 약과 더불어 산 여자예요. 세상에 대한 꿈도 없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죄를 안 만든 여자예요. 신장에 구두도 많지 않은 여자구요, 장롱에 비싸고 좋은 옷도 여러 벌 가지지 못한 여자예요.”(「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부문)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나 시인의 이 시를 읽고 쾌유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썼던 화답시 「너무 고마워요」를 이번 시집에 넣은 것이다.

“남편의 병상 밑에서 잠을 청하며 사랑의 낮은 자리를 깨우쳐주신 하나님, 이제는 저이를 다시는 아프게 하지 마시어요.//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죄로 한 번의 고통이 더 남아 있다면, 그게 피할 수 없는 우리의 것이라면, 이제는 제가 병상에 누울게요.// 하나님, 저 남자는 젊어서부터 분필과 함께 몽당연필과 함께 산, 시골 초등학교 선생이었어요. 시에 대한 꿈 하나만으로 염소와 노을과 풀꽃만 욕심내온 남자예요.//...하나님, 저의 남편 나태주 시인에게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좀만 시간을 더 주시면 아름다운 시로 당신 사랑을 꼭 갚을 사람이예요.”(「너무 고마워요」 부문)

마치 나 시인의 아내가 빙의해서 쓴 것 같은 형식이어서 아직도 인터넷에선 나 시인의 아내가 쓴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심지어 나 시인이 직접 아내가 아닌 이 시인이 썼다고 극구 밝혔음에도.

―아직도 인터넷에선 창작자가 잘못 알려져 있더라.

“대학교 3학년 문학회모임 때 나태주 선생님을 처음 뵀다. 자전거를 타고 오셨더라. 당시는 1980년대여서 리얼리티가 강한 시를 쓸 때였지만, 가끔 선생님을 찾아뵀다. 2007년 무렵 나 선생님의 시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를 읽고 선생님의 아픔도 아픔이지만, 사모님의 아픔도 고스란히 전해오더라. 만약 사모님이 간절하게 하나님에게 기도한다면 어떻게 할까, 하고 시를 써서 발표했다. 당시 제 마음이 너무 아팠기 때문에 쓴 것이다. 나중에 나 선생님께서 사모님이 아닌 제가 쓴 것으로 바로 잡아줬는데도, 여전히 인터넷에선 사모님이 쓴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더라.”

―이번 시집의 가장 큰 특징이나 의미는.

“지금은 시가 책으로만 읽히는 게 아니라 무대에 올려져서 시극이나 시노래 등으로 수용되고 있다. 이번 시집이 이전과 달라진 건 시극이나 시 노래를 염두에 두고 쓰여진 시가 있다는 점이다. 작가의 자기중심적 시 세계에서 좀더 대중과 현장, 무대 낭독이나 시극 등 다른 장르로 소통 교류하려고 노력했다. 국악이나 관현악의 연주 속에서 노래, 큰 북, 암전, 침묵 등 여러 생각을 하고 배치했다. 퓨전 국악단체 ‘풍류’의 작곡가와 이야기해 시집 가운데 시 두 편이 벌써 노래로 만들어졌다. 현재 시노래 가수 박경하가 잘 부르고 있다.”

알 수 없는 운명은 마구처럼 한꺼번에 쏟아지고 태풍처럼 몰아쳐서 번호가 늘 1번이던 고교 2학년 이정록을 순식간에 글쓰는 자의 세계로, 시인의 길로 이끌고야 말았다. 그러니까 고교 2학년으로 진급하면서 문과와 이과, 상과를 선택해야 했는데, 그는 처음에는 직업반인 ‘상과’를 선택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대학을 보낼 줄 수 없다며 공무원 시험이나 보라고 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문과를 택했던 한 친구가 다가와서 자기는 꼭 은행시험을 봐야 한다며 사정했고, 애초 상과를 선택했던 그는 친구와 맞바꿔 ‘문과’로 옮겼다. 그런데 다시 얼마 뒤, 이과를 선택했다가 눈이 나빠서 다시 문과로 옮겨야 한다는 친구가 쥐포 세 마리를 사주며 과를 맞바꾸자고 해서, 그는 또다시 ‘이과’로 옮겨갔다. 뜻하지 않게 상과와 문과를 거쳐 이과생이 된 그는 문과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얼떨결에 반의 글쓰기 대표선수가 돼 글쓰기의 세계에 첫 발을 들여놔야 했다.

이즈음, 그는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 누나에게서 만해 한용운의 시와 한시, 산문이 골고루 담긴 『한용운의 명시』를 선물로 받은 뒤 시에 꽂히게 됐다. 즉, 자신보다 세 살이 많았던 누나는 그가 두 살 일찍 학교에 들어가는 바람에 고등학교를 함께 다녔는데, 아버지가 고등학교에 둘을 한꺼번에 못보낸다고 하면서 취직해야 했다. 동화전자에 입사한 누나는 첫 월급으로 열 권짜리 『한국여류수필문학대계』를 구입하면서 받은 보너스 책 『한용운의 명시』를 그에게 툭 던졌다. 정록이 너, 이거 가져. 그때 상고에 다니던 여학생을 짝사랑하던 때여서 님을 정려하게 노래한 만해의 시들은 그대로 그의 심장에 꽂혔다. 그는 만해의 시를 패러디하거나 고쳐 쓰면서 자신이 시를 잘 쓴다고 생각했다. 내가 더 잘 쓰는 것 같은데, 이참에 시인이 돼볼까.

여기에 하나 더. 그해 10월16일 학급당 한 편씩 의무적으로 무궁화 사랑 산문 원고를 내야 하는 사실을 깜빡 잊었던 담임선생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다짜고짜 돗자리가 깔려 있던 학교 무궁화동산에 그를 데려간 뒤 우유와 빵을 주면서 말했다. 너는 오늘 수업에 들어오지 말고 여기에서 무궁화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만 써. 반마다 글을 하나씩 내야 하는데, 이것을 내지 않으면 큰일 나. 이정록은 당황했다. 왜냐하면 그는 잡지 『새농민』이나 『교련』, 『국민윤리』 책들을 보며 글짓기를 해왔는데, 이번에는 아무 자료도 없이 10매가 넘는 글을 쓰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원고지 10매가 넘는 글을 혼자 써서 완성하면서 글쓰기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

1964년 홍성에 태어난 이정록은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와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신춘문예를 여러 군데 당선됐는데.

“군대에 가기 전부터 신춘문예에 응모를 했고, 1985년 군에 입대한 뒤에도 신춘문예에 꾸준히 응모를 했다. 심지어 군대 안에서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제대 후에는 동화를 쓰던 아내와 함께 신춘문예를 함께 응모했다가 1989년 저만 당선됐다.”

등단 이후 시집 『의자』, 『정말』, 『어머니학교』, 『아버지학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동심언어사전』 등과 동시집 『콧구멍만 바쁘다』, 『저 많이 컸죠』, 『지구의 맛』 등을 펴냈다.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박재삼문학상, 한성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공주사범대학 한문교육과를 졸업한 뒤 천안중앙고 등에서 37년간 교사로 일하다가 지난 2월 퇴직했다.

―시 세계에 대해 조금 설명해 달라.

“작가는 평생 한 권의 시집, 전집을 쓴다. 전체를 꿰뚫는 게 하나 있을 것이고, 나이나 때에 따라서 조금씩 태도나 형태 등이 달라질 것이다. 시 세계를 1기, 2기, 3기로 나뉘려면 종교가 바뀌거나 자식이 죽거나 아니면 큰 시대적 사건 등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나 사회 외피는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여전히 분단국에서 살고 있다. 저는 죽을 때까지 생명과 살림의 문제에 천착할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고 싶은지.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

“지금 제가 쓰고 있는 것은 시극(시골 할머니와 버스 기사의 유쾌한 대거리를 담은 연작시집) 외에도 시로 쓰는 사전을 쓰고 있다. 국어사전이나 원예사전, 식물사전에 설명된 감나무는 모두 같지만, 개인이 경험하는 감나무는 다 다르다. 감나무 밑에서 연애한 사람도 있고, 감나무 위에 올라갔다가 떨어진 사람도 있고. 이정록의 감나무를 쓰는 거다. 600편 정도를 쓰려고 하고 있고, 지금 한 3분의 2 지점을 지나고 있다. 또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도 각자의 사전을 쓰게 하고 싶다.”

―하루 일상은 어떤지.

“에너지를 조금 많이 쓰는 스타일이다. 한참 글을 열심히 쓸 때는 새벽 4시 반에서 5시쯤 일어나서 2, 3시간 정도 글을 쓰고 출근한다. 낮에는 주로 천안 시내의 아트센터에 있는 사무실 ‘이정록 시인의 이발소: 이야기발명연구소’에서 논다. 교편을 놓은 뒤부터 강연도 열심히 다닌다. 얼마 전부터 좋은 화가에게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제가 그린 그림이 담긴 글 그림책을 펴내고 싶다.”

시인은 “제 언어가 어떻게 하면 살림의 언어 쪽에서 일을 할 수 있느냐가 제 시론”이라며 오늘도 죽임의 언어가 아닌 살림의 언어를, 살림의 시를 쓰기 위해 펜을 든다. 어둠의 언어가 아니라 촛불을 건네주고 밝히고 꽃피우는 살림의 언어야지,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는 존재에게 다시 가시로 찌르고 포탄을 쏘는 것이라면 차라리 시를 쓰지 않는 게 낫다고 다짐하면서.

그리하여 시인 이정록은 “때로는 분노나 아쉬움, 서글픔 때문에 시가 탄생된다면, 그것을 노래하는 절망과 아픔의 순간 사이사이에 어떻게 하면 살림의 언어를 박아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여전히 주위를 두리번거릴 것이다. 검정 고무신을 꺾어서 자동차 놀이를 할 때 흙탕물을 채우고 소방차를 몰다가 중학교 때 저수지에서 익사한 초등학교 동창 기활이가 혹시 홍수에 떠내려가는 암소의 마른 등에 앉아 있는지 살피듯.

“흙탕물 채우고 소방차를 몰던 기활이는 저수지에 들어간 뒤 쉰 넘어까지 나오질 않는다. 시란 걸 쓰고 읽을 때마다 나는 행간에 구명조끼가 있는지 두리번거린다. 홍수에 떠내려가는 암소의 마른 등, 그 등짝에 기활이가 앉아 있는지를.”(「구명조끼」 부문)

글∙사진=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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