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예능 이을 전수관에 내 모든 것 내어주니 여한이 없어" [나의 삶 나의 길]
음악·춤에 이끌렸던 막내딸
예인 많아 풍류 넘쳤던 군산 번화가서 태어나
명기와 퇴기의 춤을 보고 승무·살풀이 등 배워
가야금은 이덕열·이운조·김윤덕 등에 사사
대학 사회학과 진학한 국악인
원하는 대학에 국악과 없어 명인 찾아서 배워
국악예술학교 교사로 취업하면서 음악 확장
20년간 교편 기간이 지금 자신을 만든 원동력
국악 알리기·후학 양성에 매진
박범훈·김덕수 등 국악계 명사 제자로 길러내
국악협회 이끌며 12년간 전통예술 발전 이뤄
마지막으로 200억대 집·토지 아낌없이 기부
아무리 기운이 없어 발발거리다가도 가야금을 안고 타기 시작하면 기가 팔팔 나는, 쥐어짜낸 힘으로 타는 게 아니라 몸 자체 에너지로 타는 이치를 알기까지 30년 가까이 걸렸다. 어느덧 나이 쉰셋에 국가무형문화재 가야금산조 및 병창 보유자가 됐다. 가야금산조는 가야금 독주 음악이고, 가야금병창은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판소리 한 대목이나 단가를 부르는 음악이다. 국보급 연주자가 됐지만 안주할 수 없었다. 갈수록 위상이 쪼그라들고 배우겠다는 젊은이가 줄어드는 국악계 앞날이 염려돼서다. 나이 예순둘에는 국악 연주자 권익 보호와 전통문화 발전 기여를 위해 설립된 한국국악협회를 맡아 12년간 이끌며 명실상부한 국악계 대표 조직으로 성장시켰다. 협회를 나와서도 사재를 털어가며 후학 양성 등 국악 발전에 매진하고 있다.
이제 어느덧 여든넷 할머니가 된 올해는 200억원 상당의 자택과 토지 5474㎡(약 1656평)를 문화재청에 기부했다. 독신으로 살면서 스스로에겐 휴지 한 장 허투루 안 쓸 만큼 근검절약해 모은 재산이다. 이는 국가무형문화재 예능전수교육관 건립에 쓰인다. 이영희 명인의 삶 이야기다. “살아온 길이 그렇게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자랑 세울 만한 발걸음이 아니었다”고 하는 이 명인을 지난 9일 경기 성남 금토동 자택에서 만났다.
―예인 집안도 아닌데 어려서부터 음악에 소질이 있었나 봅니다.
“아니야. 어머니가 상업을 해서 그런지 좀 깬 분이었고, 내가 하고 싶다는 건 다 하게 하셨어. 또래 둘이 김향초에게 승무 배우는 것 알고 ‘나도 배우고 싶다’고 하니 어머니가 당장 승무 출 때 필요한 장삼(품과 소매가 넓고 길이가 긴 웃옷)을 만들어 주고 돈도 주면서 ‘가서 배워라’ 하시더라고. 다른 사람들은 ‘부모가 말려서 못 했다’, ‘부모한테서 도망 나왔다’고도 하는데 우리 어머니한테 감사하지. 김향초가 춤뿐 아니라 가야금과 기타, 노래도 잘했는데 가야금을 하고 싶더라고. 그래서 (중학생 때) 풍류객 이덕열에게 가야금과 단소, 양금, 풍류를 배웠고, (고등학생 때) 이운조(가야금·거문고 명인)에게 가야금산조를 배웠지.”
―그런데 이화여대 사회학과로 진학한 이유는 뭡니까.
“당시 콩쿠르 심사를 맡았던 국악예술학교(1960년 5월 개교) 박헌봉 초대 교장이 권유해 대학 졸업하고 1962년 바로 취업했어. 학교에 부임하니 국악계 유명한 사람들은 다 거기 계시더라고. 판소리 김소희·박녹주·박초월, 가야금 성금연·박귀희, 거문고 신쾌동, 민요 이창배, 시조 홍원기, 무용 한영숙 등 50명 정도 됐나. 방과 후에 그 어른들한테 찾아가 다양한 악기와 소리, 무용을 배웠어. 학생들한테는 가야금과 아쟁에다 국어까지 가르쳤어. 문·이과 교사가 부족하니 대학 졸업한 나에게 국어 교사를 맡긴 거지. 암튼 그런 대단한 분들 속에 살면서 용광로 같은 시간을 보내며 (나도) 익지 않았나 싶어. 학생들도 만능 인재가 될 수밖에 없었고. 학년당 한 반밖에 없었는데 학생보다 더 많은 당대 최고 (국악 분야) 명인들에게서 교육을 받았으니까.”
“가장 먼저 시작하고 오래 한 것이 가야금이어서 그랬을 뿐이야. 김윤덕류 가야금산조를 하게 된 것도 김윤덕 선생에게 먼저 배운 영향이 커. 아마 성금연 선생을 먼저 만났으면 성금연류 가야금산조를 했을 거야.”(웃음)
“당시 예술인 중에선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드물었는데 박귀희, 김초희 선생 등 이사들이 대학 나온 나를 적임자로 지목하고 국악계 여론을 조성해 자연스레 맡게 됐지. 2000년부터 4년씩 3연임 해서 12년간. 국악 전공자들을 초·중학교에 시간강사로 파견하는 ‘강사풀’ 제도를 도입하고 여기저기 도움을 요청해 해외 입양인 대상 국악 교육사업도 펼쳤어.”
―후학 양성과 국악 알리기를 위해서라면 사재도 아끼지 않으신다고.
“무형문화재 전수회관(교육관)이 서울 삼성동에 하나 있는데 단체 종목·기능 부문 보유자들이 주로 사용해. (음악과 무용 등) 예능 부문 보유자들은 전승교육을 할 공간이 마땅한 데가 없어 집에서 가르치기도 하는데 (소음과 이웃 민원 등 탓에) 여의치가 않아. 그래서 이 집을 헐고 개인 종목·예능 부문 보유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전수관을 지어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부했지. 나를 위해 돈 쓰는 건 아깝지만 이런 일에 쓰려고 아껴 모은 거라 전혀 아깝지 않아. 더 이상 여한이 없네.”
문화재청은 이 명인이 기부한 토지에 문화재보호기금 약 200억원을 투입해 연면적 8246㎡ 규모의 예능전수교육관을 지을 계획이다. 완공 예상 시점은 2027년이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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