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경제 흔드는 '퍼펙트스톰'..新 통상질서에서 답 찾아야"

함정선 입력 2022. 5. 18.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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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났습니다]①조상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글로벌 위기 앞 한국 무역·통상 진단
"실물경제 흔들리며 위기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
"신 통상질서 속에서 한국만의 가치 증명해야"
조상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사진=국제무역통산연구원)
[이데일리 함정선 기자] “2008년 리먼 사태와 같은 과거 경제 위기가 지표나 그래프 수치로 주로 나타났던 금융 위기였다면, 지금은 눈으로 뚜렷하게 확인하고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는 리스크가 현실화한 상황입니다. 경제·사회 주체 중 정부와 기업뿐만 아니라 가계 역시 실질 소득 감소를 겪고 이에 따른 저축 감소, 소비 위축이 일어나는 직격탄을 맞을 수 있습니다.”

조상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현재 상황에 대해 “펀더멘털이 흔들리고 있어 상당기간 내상이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간 한국 경제의 경우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새로운 시장 수요를 창출하고, 수출과 일자리 확대 등의 전략으로 위기를 극복해왔지만 원자재와 곡물 등 물리적인 한계에 부딪힌 이상 지금까지의 방법이 통하지 않으리라는 지적이다.

조 원장은 “한국은 현재 글로벌화가 최고 지점까지 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으로, 더는 세계 시장 진출을 통해 생산을 순환할 여지도 남아 있지 않다”며 “공급망과 물류, 인플레이션, 금리 등 모든 위기에 다 노출돼 있는데 이 같은 변수가 우리의 통제 불능 영역에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조 원장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 정부의 대응, 무역의 방향을 모두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지금은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경제 상황을 수시로 살피는 것은 물론, 패스트트랙(신속처리)으로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의사결정까지 한 번에 진행할 수 있는 거버넌스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조 원장은 “또한 서로 뜻을 함께하는 국가가 모이는 새로운 통상질서가 생겨나고 있다”며 “우리는 그간 무조건 수출 실적에만 집중했던 전략을 바꿔 세계 시장에서 한국만이 할 수 있는 것, 한국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을 찾아 우리만의 가치 무역을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조 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글로벌 경제 위기가 우리나라에는 ‘퍼펙트 스톰’(복합적인 위기)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데.

△지난해부터 국내 경제 상황이 ‘삼각파도’ 앞에 놓여 있다고 얘기해왔다. 원자잿값 상승, 지정학적 이슈와 물류난 등이 순차적으로 몰아치면서다. 코로나19라는 ‘외상’으로 국가 부채를 늘린 상황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태, 미국의 긴축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며 이제는 내상이 심해진 상황이다. 금융 수치가 약해진 것이 아니라 실물경제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경제 불안, 위기 상황이 장기화할 것으로 보는가.

△이전에는 펀더멘털 위기라고 해도 오일쇼크 등과 같은 한 분야에 국한됐고 정치나 외교적 해법으로 해결이 가능했으며 몇 개월 지속하면 어느 정도 회복세를 나타냈다. 그러나 지금은 자연 발생하는 산불이라는 비교가 나온다. 특히 원자재나 곡물, 물류 등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땅한 카드가 없어 앞으로 상당기간 위기가 지속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이번 경제 위기를 단기간 내 넘길 수 있는 가능성은.

△지금도 무역수지 적자라고 하지만 수출만 보면 괜찮다. 환율 효과 때문이기도 하고 석유 정제 마진 등이 올라가다 보니 일부 지표에서는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과연 질적인 지표가 괜찮을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예를 들어 정부가 미래 신성장 사업으로 반도체와 바이오, 전기차 배터리 등을 내세우고 있는데, 모두 소재나 원료를 해외에서 들여와야 한다는 점에서 지속적으로 위험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 차원에서 여러 협의체나 태스크포스(TF) 등을 만들어 대응하고 있는데 더 필요한 것이 있는가.

△자원이나 공급망 등 실시간으로 바뀌는 경제 상황이나 환경을 지켜보는 곳은 있으나 현재 의사결정까지 시간이 걸린다. 지금은 각국이 비밀스럽게 협약을 맺는 일도 많다. 대외 경제 리스크에 초점을 맞추고 모니터링부터 관리, 의사결정까지 패스트트랙 등이라도 동원해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는 상시기구가 필요하다.

-소재나 원료 같은 경우 우리의 힘으로 풀기 어려운 숙제다. 신냉전 체제라고도 하는데.

△새로운 통상질서의 콘셉트가 ‘가치’ 중심으로 모이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마음이 맞는 국가끼리 뭉친다는 것이다. 통화 스와프처럼 경제 협력하는 국가끼리 원자재 스와프를 하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날 것으로 본다.

-이런 상황에서 통상 전략을 어떻게 짜야 할 것으로 보는가.

△마침 새 정부가 들어서며 통상 정책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는데 아무래도 한일 관계 개선이 가장 필요할 것으로 본다. 새 정부가 미국과 공조를 강화할 계획인데,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한미일 공조’에 있다. 이 때문에 한일 관계 개선은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한다.

이와 함께 새로운 파트너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우리나라가 물꼬를 튼 국가인 호주 등이 대표적이다. 호주의 경우 중국과 갈등 이후 새로운 대상을 찾고 있고, 이 같은 상황을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산업계 등에서는 중국을 아예 배척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쉽지 않은 문제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은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상시적인 레이더를 작동해 균형을 맞춰가는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미국과 중국 등 지정학적 이슈에 흔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 때문에 한국 무역의 현재를 제대로 짚어보고 미래 방향성을 재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전 세계 어느 나라와의 협상 테이블에서도 첫 번째 자료는 지난 40년간 한국이 해당 나라로부터 얼마나 흑자를 거뒀는가를 기록한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200여개 국가와 교역을 하고 있는데 중동 산유국과 일본 등을 제외하면 190여 국가에서 수십 년간 무역 흑자를 보고 있다. 자칫 한국이 일본에 이어 돈만 따르는 ‘이코노믹 애니멀’(경제적 동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경쟁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개인적인 의견이나 한국이 무역, 경제 통상 측면에서 ‘중립국’의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한국이 만들어서 전 세계인에게 공급하는 제품과 서비스, 콘텐츠가 70억 인구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공감대가 형성되면, 한국이 경제적으로 불안해지거나 문제가 생기면 세계인이 불편해지고 어려워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국을 보호하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지금 대만이 그렇다. 대만 기업인 TSMC가 국가를 지키는 경제·안보 등 보호막이 되고 있다.

-우리도 반도체, 배터리 등 기술력에서는 앞서 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부족한 부분은.

△통상질서를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 자세가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최근 통상 테이블에서는 한국의 인권, 환경, 노동 등 이야기가 나오고 이젠 한국이 글로벌 경제의 주요한 일원으로 역할을 해줄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공적개발원조(ODA)를 하더라도 ODA를 현지 시장 진출의 지렛대로 삼겠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선 당장은 나누는 데 집중해야 한다. 중국은 아프리카에서 그렇게 수십 년을 나누면서 결국 광대한 원자재를 선점해왔다.

-가치를 공유하고 선점한다는 것이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원산지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그동안 우리는 ‘메이드 인 코리아’에 집중해왔는데 이걸 ‘코리아 메이드’로 바꿔보자는 거다. ‘한국에서 만든 제품’이 아니라 ‘한국이 만든’ 제품이나 서비스, 콘텐츠라면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거다.

사실 국내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이 같은 가치를 꽤 구축해놓은 상황이지만, 개별 기업이 대응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경제위기를 논하는 시점에 새 정부가 출범했다. 새 정부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한국 무역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교롭게도 새 정부의 출범 시기와 신 통상질서라는 새로운 판이 함께 열렸다. 정부와 기업 모두 전략과 정책을 리셋해 대응할 수 있어 긍정적이라고 본다. 특히 새 정부 출범 초기에 신속하게 대응해야 놓치는 구멍이 생기지 않는다.

조상현 원장은…

△1967년 부산 출생 △부산대 경영학 학사 △한국해양대 물류시스템공학 석사 △부산대 무역학 박사 △1990년 한국무역협회 입사 △무역정책본부 신성장산업실장 △혁신성장본부 스타트업글로벌지원실장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동향분석실장 △2012년 국무총리 표창 △2019년 산업포장

함정선 (mint@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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