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누가 反지성주의에 맞설 건가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역사학 2022. 5. 18.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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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5월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반(反)지성주의와 투쟁을 선포했다. 지성의 힘으로 거짓을 물리치자는 취지에는 누구나 동의할 듯하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날마다 일어나는 ‘가짜 뉴스’의 폭풍과 ‘허위정보’의 해일에 맞서 싸울 수 있는가? 팬데믹보다 더 무서운 인포데믹(infodemic·전염병처럼 번지는 잘못된 정보의 확산)과의 투쟁이다. 지난 10여 년 한국 정치사를 돌아보면 IT 강국 대한민국의 인포데믹은 참담한 상황이다.

2008년 공영방송의 엉터리 탐사 보도가 광우병 파동의 불을 질렀다. 2010년 합조단은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군사 테러였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했지만, 그해 9월까지 그 조사를 신뢰하는 국민은 32.5%에 그쳤다. 2016년 탄핵 정국에서 국회는 부정확한 언론 보도를 모아 소추안을 썼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이 특검의 청와대 압수 수색을 거부했다는 이유까지 들어 “헌법을 수호할 의지”가 없다며 대통령을 파면했는데, 상식적으로 직무 정지 상태의 대통령은 압수 수색을 거부할 권한이 없다. 헌재가 어떻게 그토록 기초적인 논리적 착오를 범할 수 있는가? 이 모두가 인포데믹이 한 사회의 ‘집단 지성’을 마비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대한 사례들이다.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늘날 호모 사피엔스는 ‘탈진실(脫眞實·post-truth)’의 시대를 살고 있다. ‘탈진실’이란 과학적 진리나 역사적 사실보다 가짜 뉴스와 허위 정보가 대중의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21세기적 상황을 이른다. 인터넷 알고리즘에 따라 개개인은 미리 걸러진 정보만을 편식한다. 모두가 ‘메아리 방(echo chamber)’에 들어앉아 ‘거름 방울(filter bubble)’ 속에 갇힌 채 살고 있다. 그 결과 ‘보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는 반지성주의’의 유혹에 빠져든다.

계몽주의 시대 이래 인류는 이성의 힘으로 모순과 부조리, 미신과 맹신을 타파하고 합리의 공화국을 건설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 자유주의 사상가 밀(J.S. Mill·1806~1873)은 인류의 지성을 믿고 표현의 자유를 제창했다. 미치광이의 궤변, 음모론자의 낭설, 불온한 자의 도발일지라도 그 모든 생각들이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어야만, 인류는 정교한 반박 논리를 만들어 진리에 근접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자유민주주의는 그렇게 초창기부터 과학적 방법과 전문 지식이 지배하는 ‘진실의 정권(regime of truth)’을 지향했다. 공화국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론의 포럼이 진실을 밝히고 전파하는 ‘상식(sensus communis)’의 보루였다. 21세기 인포데믹 속에서 바로 그 진실의 정권이 붕괴 조짐을 보인다. 표현의 자유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보장한다는 빅토리아 시대의 낙관이 무너지고 있다. 오늘날 누가 인간을 합리적 존재라 단언할 수 있는가?

2018년 1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가짜 뉴스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며 강력한 제재 법안을 예고했다. 4년 후인 2022년 1월, 재선을 3개월 앞두고 마크롱 대통령은 가짜 뉴스와 허위 정보에 대한 법적 조치를 강화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정부가 인포데믹을 통제할 수 있다는 발상은 순진하게 느껴진다. 열린 사회에서 정부에 의한 가짜 뉴스의 통제는 큰 효력이 없다. 일당독재의 국가 중국처럼 인터넷 관리원 100만명을 고용하고 1000만명의 자원자를 동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짜 뉴스의 생산 주체는 단순한 일탈자가 아니라 정치적 목적에 복무하는 신념 집단이라는 점도 이 싸움을 어렵게 한다.

윤 대통령은 반지성주의와의 투쟁을 강조했지만, 여론 시장을 법적 제재로 교정할 순 없다. 결국 시민사회가 나서서 거짓과 허위에 맞서는 견고한 논리의 방화벽을 세워야만 한다. 대통령 역시 한 명 시민으로서 법이 아니라 논리의 힘으로 반지성주의와의 투쟁을 이끌어야 한다. 대변인 뒤에 숨거나 ‘A4 원고’만 읽지 말고, 국민 앞에 서서 육성으로 국정 현안을 설명하고 정부 정책을 홍보해야 한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12년 임기 내내 총 881회, 월 평균 6회의 기자회견을 했다. 험난한 반지성주의와의 투쟁을 대통령이 매월 최소 1회 이상의 기자회견으로 이끌어 달라. 대통령의 머리는 시민사회의 지성이며, 대통령의 입은 초대형 스피커다. 머리가 둔해지고 스피커가 고장 나면, 가짜 뉴스와 허위 정보가 판친다. 지난 10여 년 한국의 인포데믹이 일깨우는 섬뜩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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