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용산 민족공원, 토양오염 덮는 졸속 추진 안 된다

임삼진 한국환경조사평가원 원장 前 대통령 시민사회비서관 2022. 5. 18.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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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삼진 한국환경조사평가원 원장 前 대통령 시민사회비서관

‘출입 기자에게도 멀게만 느껴졌던 청와대’라는 어느 기자의 표현은 청와대라는 공간이 어떤 곳이었는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그렇게 느껴진 것은 두 번이나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내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윤석열 당선자의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선언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단순히 대통령이 머무는 공간의 이전이 아닌 ‘출퇴근하는 대통령’, ‘1층에 기자실을 둔 대통령 집무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정치혁명이기 때문이다.

공간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꾼다. 더 나아가 삶을 바꾼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탈권위, 비밀 공간의 해체, 소통과 통합을 위해 이보다 더 강력한 수단이 있을까? 지나치게 서두른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청와대에서 하루도 머물지 않겠다는 대통령 당선인의 단호함과 결단에 나는 박수를 보냈다.

서울 용산구 국방부청사 앞으로 반환되는 미군부대./뉴시스

그런데 더 큰 응원의 박수를 보내야 할 정부 출범 시점에 박수 자체를 망설이게 하는 일이 일어났다. 새 정부는 주한미군이 조기 반환할 국방부 남쪽 용지 약 50만㎡ 중 일부를 잔디밭과 문화·스포츠시설 등으로 조성할 계획인데, 교육생활 시설이 위치해 있던 지역이라 인체 위해성 평가만 하기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인수위 관계자는 “간략하게 인체 위해성 평가만 확인 후 이상이 없으면 우선 개방하겠다”라고 밝혔다.

‘간략한 인체 위해성 평가’나 ‘우선 개방’에는 신속한 추진 의지가 담겨 있다. 물론 용산 민족공원은 조속히 추진돼야 한다. 하지만 ‘조속’이지 ‘졸속’은 아니다. 졸속은 원칙과 상식의 파괴요,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해온 법치와 원칙의 포기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반환받는 미군 기지나 한국군 기지의 토양오염은 정밀조사(6~12개월), 오염 정화 및 검증(24~48개월), 완료검증(1~2개월)이라는 단계를 거친다. 토양오염보전법이 정한 절차다. 일부 오염이 심한 지역의 경우 시민단체의 요구로 기간이 더 늘어나기도 한다. 단축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공원화나 택지조성 이전에 토양오염조사와 정화에 걸리는 시간은 대개 5~7년 정도다. 그동안 군 기지의 토양오염 조사와 정화를 위해성 평가로 적당히 마무리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

더구나 반환된 미군기지 여러 곳에서 발암 위해성이 있다는 결과가 나와 있다. 용산은 오염 정도가 심하다. 환경부 보고서를 보면 녹사평역 부근 조사에서는 벤조피렌 4.85배, 비소 30.7배, 납 3.69배, 아연 6.28배, 국방부 부근에서는 TPH 34배, 구리 28.5배, 납 263.4배, 아연 5.6배, 다이옥신 2.5배 등 토양오염 기준치를 크게 초과하는 항목들이 다수 확인되고 있다.

이렇듯 오염이 드러난 용산 미군기지를 간략한 위해성 평가만 거쳐 공원화하겠다는 것은 자칫 윤석열 대통령 임기 내 성과를 위해 토양오염을 그대로 덮는 무모함과 과욕이 될 수 있다. 또 환경단체 등 시민사회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질 것이다.

국민 통합과 탈권위를 위해 집무실을 이전한 윤석열 대통령의 뜻깊은 결단이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졸속 공원화 추진으로 퇴색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용산 민족공원을 서두르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법과 절차, 원칙을 지키고 사회적 합의 속에 만들어 가는 과정은 더욱 소중하다. 용산 민족공원 조성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추구하는 진정한 공정을 확인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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